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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공감

조식예찬 朝食禮饌

작가공감

조식예찬 朝食禮饌

박윤주²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 TV조선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 MBN <로또싱어>

박윤주²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 TV조선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 MBN <로또싱어>

“아침은 무야지.”

태어나서 4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아침을 안 먹은 날은 열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아주 어릴 땐 아침밥상에 앉아서 밥을 먹는 것이 당연한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아침밥 따위는 안 먹겠다고 반항할 만한 사춘기 때도 어김없이 온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아 아침밥을 먹었다. 혹시라도 아침을 못 먹고 나가는 날엔 내 도시락통에는 아침밥 도시락이 있었다. 대학교를 다닐 때도, 일을 시작했을 때도, 아침밥으로 대동단결하는 우리 집 가풍은 시들지 않았더랬다.
그렇다. 아침밥은 무조건 함께 먹어야 하는 집에서 자랐다. 한 지붕 아래 같이 사는 ‘식구’인데 세 끼 중에 한 끼는 모두 모여 밥을 먹어야 한다는 ‘엄빠’의 확고한 의지 때문이었다. 그 세 끼 중에 한 끼가 아침밥일 뿐이었다.

습관은 무섭다. 아침밥 먹여주는 부모님 덕에 나는 아침밥을 반드시 챙겨 먹는 옛날 사람이 됐다. 아침에 일어나기 바쁜데, 아침에 출근하기 바쁜데, 아침이니까 간단히, 아침이니까 대충… 이런 말은 내게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아침이니까 제대로, 아침이니까 풍성하게, 아침이니까 훌륭하게! 이런 말이 나의 아침밥상에 적당한 말이다. 나의 하루는 아침밥을 위해 열리고 아침밥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칠십 넘은 할머니처럼 거의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부엌에 선다.

아침밥 메뉴는 전날 저녁에 대부분 결정된다. 먹고 있어도 먹고 싶은 게 머릿속에 있는 인간인지라 여러 가지 먹고 싶은 것 중에 냉장고에 재료가 있는 어떤 무엇이 다음 날 아침 메뉴로 낙찰되면 아주 편안하게 잠을 청한다. 한때는 잠이 오지 않아 수면제 처방도 받았던 때가 있었는데 머리만 대면 잘 수 있다. 이유라 치면 부모님 품을 떠나 혼자 지내기 시작하면서 아침밥을 ‘제대로’ 먹기 위해 새벽 5시 언저리에 일어나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일어나자마자 침대 위에서 아침밥 메뉴를 상상하고 혼자 신나 한다. 몸을 움직이기 좋은 상태로 만들기 위해 스트레칭을 한판 하고 화장실을 다녀와 나의 작은 조리대 앞에 선다. 약 5시 40분,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 이놈들을 키워주고 유통해서 부엌에 이르기까지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의 기도를 하고 오늘도 나의 일용할 양식이 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식재료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재료를 손질하고 지지고 볶고 아침을 만들면서 오늘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X시에 OOO를 만나는 날이구나!’
‘오늘 최대 과제는 ###이구나!’
‘어제 그건 왜 안됐지? 어떻게 하면 해결될까?’
그러는 사이에 아침상은 완성된다.

박윤주 작가의 아침상. 아침밥을 차린다는 것은 일종의 기도이자 명상과 같은 것이다.
박윤주 작가의 아침상.
아침밥을 차린다는 것은 일종의 기도이자 명상과 같은 것이다.

어떤 날은 일본 여행이 가고 싶어서 일본식 밥상을 차리고 크리스마스에는 서양 음식 먹겠다고 파스타를 아침밥으로 먹었다. 술 마신 다음 날엔 해장을 위해 황태 순두부 탕을 끓여 해장 상을 차리기도 하고 간단하게 생선이나 구워 먹을까 하다가 냉장고에서 시들어가는 채소를 몽땅 볶아 근사한 아침상을 만들기도 하며 낚시에 일가견이 있는 지인이 큰 물고기를 선물로 준 날엔 특별히 생선 스테이크 같은 것도 해 먹는다.
제철 식재료에 관심이 많았던 부모님 덕에 어느 계절에 어떤 식재료가 맛있는지, 어느 지역의 식재료가 좋은지, 어떻게 먹으면 더 맛있는지…에 대해 웬만한 정보 프로그램 작가만큼이나 데이터 확보를 하고 있는 나는 무슨 음식을 해 먹을까, 어떻게 해 먹을까를 그다지 고민하지 않는다. 늘 내가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아침밥 메뉴가 된다. 그리고 매일 그 메뉴는 달라진다.

매일 다른 메뉴로 만드는 밥상이 귀찮고 힘들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 아침밥을 차린다는 것은 일종의 기도이자 명상 같은 것이다. 음식에 대한 탐닉을 돈으로 지불하고 간단하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탐닉한 대가를 감사함과 노동으로 지불하며 이른 아침, 나만의 루틴으로 하루를 살아내는 힘을 얻는 행위다.
어느 누구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해 만드는 아침밥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타인의 생각을 읽고 타인을 설득하고 타인의 취향을 이해하며 마치 남을 위해 살아가는 듯한 나로서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중요하다. 매일 아침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보는 시간, 그래서 타인의 하루도 나의 하루만큼이나 소중할 것이라는 배려를 키우는 시간이다.

오늘은 비가 온다. 이런 날은 향이 강한 음식이 좋다. 냉장고에 있는 가지와 토마토를 꺼내 카레를 해야겠다. 그리고 신이 나에게 주신 아름다운 오늘을 즐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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