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인생 2막

언론도 법도 믿어요!

박지영 변호사

김윤양 책임 편집위원     사진 김선미     장소 법무법인 주원

인생 2막

언론도 법도 믿어요!

박지영 변호사

김윤양 책임 편집위원
사진 김선미
장소 법무법인 주원

“관념적인 말, 추상적인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구체적이고자 노력했고, 고객을 전문용어로 얼떨떨하게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경청이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다 문득 건축가의 일이 방송과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구체적이어야 하고, 쉬워야 하고, 설득해야 하고, 그 모든 것에 선행하는 건 경청. 비단 방송뿐이겠는가. 관통하는 핵심이 비슷한 일이 많다. 그럼에도 방송작가의 인생 2막이 변호사라는 사실은 여전히 낯설다. 올해 4년 차인 박지영 변호사를 만나고 방송작가와 변호사가 많이 다를 거라는 편견이 깨졌다.

박지영이라는 이름 석 자 뒤에 ‘작가’가 붙게 된 건 스물아홉 살 되던 해였다.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프로그램 MBC <시사매거진 2580>이었다. 제목 그대로 보도국에서 제작하던 시사프로그램이었다.

2, 3주에 한 편씩 제작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오디오 감독, 카메라 기자와 기자, 작가가 한팀이었어요. 아이템을 잡고, 인터뷰할 분들을 섭외하고, 그분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죠. 때로 몰래카메라로 촬영하는 일도 있었고, 섭외가 된 상태에서 촬영 직전에 거절하는 분들이 생기면 또 다른 분들을 섭외하고요. 시사프로그램이니까 방송 나갈 때까지 조마조마한 일도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 일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럴 만했다. 방송 일은 그녀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영문학도로 대학에 입학하면서 그녀의 꿈은 내내 방송기자였다. 대학 학보사에서 활동하며 기자가 되는 꿈을 키웠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의 사도는 아니었지만, 누군가 억울한 상황에 몰리면 힘을 보태줘야 속이 시원한 ‘오지라퍼’였고, 리더십도 있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면 나서서 싸워주는 ‘왕언니’였다. 모범생이었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이만하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언론고시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아버지가 지방 방송사 기자셨어요. 그러다 보니 TV 뉴스에 나오는 아버지 모습을 보며 저도 방송기자의 꿈을 키웠던 것 같아요. 대학 졸업 후 국제학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하면서도 계속 방송기자 시험을 쳤는데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더 나이 들기 전에 방송일에 도전해보고 싶어 방송작가를 지망하게 됐죠.
기억나는 아이템은 ‘가난의 대물림’에 대한 것이었어요. 경제적 여유가 충분한 부잣집 아이와 경제적으로 힘든 아이의 교육환경을 비교하는 아이템이었는데요. 부잣집 아이는 서울의 사립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유명 사설 학원의 도움을 받으며 공부하고 있었어요. 한글 자막 없이 영어 프로그램을 보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생소한 악기를 수준급으로 연주하며 좋아하는 스포츠는 승마라고 했죠. 반면에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성적이 좋은 아이는 찾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전국의 복지관에 모두 연락해서 반에서 5등 안에 한 번 든 적 있는 아이를 찾았어요. 아이는 촬영하기 얼마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엄마는 우울증을 앓고 계셨어요. 공부를 하고 싶은데 상황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었죠. 복지관에 다니면서 선행학습을 하고 있는데 영어가 좀 부족한 편이라며 촬영 조건으로 영어학원비를 대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극과 극인 교육환경을 취재하며 우리 사회에 단면을 부각하고, 문제 제기하고, 여론을 수렴하는 그 모든 일이 정말 재미있었고 저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오래 일을 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박지영 작가는 곧 인생진로를 변경한다. 거창한 비전에 따랐다기보다 ‘프리랜서가 아닌 안정적인 일을 하라’는 어머님의 조언 때문이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방송을 떠나 안정적인 직장이었던 국책연구원에 들어갔지만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제 발로 나왔다.

방송작가는 결과물이 중요하잖아요. 시청률이 분초 단위로 나왔는데 국책연구원은 과정이 중요하더라고요. 코앞에 상사가 있는데도 기안문을 올려야 되는 거예요. 안정적인 직장이긴 했지만, 숨이 막혔어요. 나랑 안 맞다…. 그럼 어떤 일을 해야 하나. 이미 취업하기에는 나이가 적지 않았죠. 그 상황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하기로 결심한 이유라면 뭘 몰라서 한 거예요. 법학을 전공했다면 오히려 엄두가 안 났을 텐데 저는 뭘 몰라서 겁 없이 시도한 거죠.
사법시험에 합격하기까지 평균 5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최종합격까지 저도 6년이 걸렸어요. 연수원 2년, 변호사 4년인 현재 개업변호사로 일하고 있는데 처음 변호사사무실 내고 1년이 참 힘들거든요. 저도 처음에는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그래도 바닥은 찍고 올라온 것 같아요. 주로 다루는 사건은 징계문제, 무고, 명예훼손 등 다양해요. 법적 공방이 길어지면 대개 피해자들이 지치기 쉽죠. 그럼 동기들이 ‘네가 나가서 좀 싸워줘라’ 이런 사건들이 많아요. 대형 로펌과 싸우다 지친 피해자도 있고, 노동형태를 교묘하게 조절해 법을 악용하는 업주들도 있어요. 그럼 프리랜서로 분류된 해당 직업군은 집단권리를 주장해도 될 일인데 시간이 길어지면 지치잖아요. 그럼 ‘지금부터는 내가 싸우겠다. 그러니 포기하지만 말아라’ 이렇게 되는 거죠. 정의감이 강하고 의뢰인을 사랑한다기보다는 제 성격을 못 이기는 거예요. 화가 나고 이런 상황이 되면 그 상황을 못 견디는 거죠.

방송작가는 결과물이 중요하잖아요. 시청률이 분초 단위로 나왔는데 국책연구원은 과정이 중요하더라고요. 코앞에 상사가 있는데도 기안문을 올려야 되는 거예요. 안정적인 직장이긴 했지만, 숨이 막혔어요. 나랑 안 맞다…. 그럼 어떤 일을 해야 하나. 이미 취업하기에는 나이가 적지 않았죠. 그 상황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하기로 결심한 이유라면 뭘 몰라서 한 거예요. 법학을 전공했다면 오히려 엄두가 안 났을 텐데 저는 뭘 몰라서 겁 없이 시도한 거죠.
사법시험에 합격하기까지 평균 5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최종합격까지 저도 6년이 걸렸어요. 연수원 2년, 변호사 4년인 현재 개업변호사로 일하고 있는데 처음 변호사사무실 내고 1년이 참 힘들거든요. 저도 처음에는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그래도 바닥은 찍고 올라온 것 같아요.
주로 다루는 사건은 징계문제, 무고, 명예훼손 등 다양해요. 법적 공방이 길어지면 대개 피해자들이 지치기 쉽죠. 그럼 동기들이 ‘네가 나가서 좀 싸워줘라’ 이런 사건들이 많아요. 대형 로펌과 싸우다 지친 피해자도 있고, 노동형태를 교묘하게 조절해 법을 악용하는 업주들도 있어요.

그럼 프리랜서로 분류된 해당 직업군은 집단권리를 주장해도 될 일인데 시간이 길어지면 지치잖아요. 그럼 ‘지금부터는 내가 싸우겠다. 그러니 포기하지만 말아라’ 이렇게 되는 거죠. 정의감이 강하고 의뢰인을 사랑한다기보다는 제 성격을 못 이기는 거예요. 화가 나는 상황이 되면 그 상황을 못 견디는 거죠.

이렇게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해 ‘쌈닭’으로 변할 때 방송작가로 살았던 경험은 변호사 박지영에게 큰 힘이 된다. 하나의 아이템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도 비슷하고, 현장부터 달려가서 경찰을 만나고, 무엇을 입증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방송취재와 놀랄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다.

저는 언론과 법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2013년에 칠곡 계모 사건이 발생한 후 아동학대 특례법이 만들어졌죠. 그전에는 묻혀 있었지만 언론이 이슈를 만들어 문제 제기를 하고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 국회의원들이 관련법을 검토하고 개정하거나 새로 만들게 되죠.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분들이 많지만 처벌받지 않으면 행동이 바뀌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인식을 바꾸는 건 여론이지만, 행동을 바꾸는 건 법이니까 언론과 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죠. 제가 맡은 사건의 경우에도 혼자 두드리면 더디기만 한 사건도 언론이 함께 힘을 보태면서 해결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제가 방송작가로 살아봤으니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는 언론이 가진 힘도 믿고 법이 가진 힘도 믿어요.

딸이 안정적인 길을 걷길 바랐던 아버지는 딸이 변호사가 된 후 무척 좋아하셨다. 다만 일에 파묻혀 사는 딸을 보고 어머님은 많이 안타까워하신다고. 우여곡절이 적진 않았지만 이만하면 인생 2막으로 성공적인 것 아닌가, 대놓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인생에 꽃길이 있을까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변호사가 되었으니 꽃길일까요. 돌아보면 20대의 저는 다 실패했어요. 어디 제대로 다니지도 못했고, 여기저기 전전했고, 사랑도 다 뒤로 미뤘죠. 일도 사랑도 다 실패한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조울증도 있었고 눈만 뜨면 괴로웠고요. 그게 제 20대예요. 그 후에도 사법시험 준비하는 6년간 제 미래를 확신할 수 없으니 끊임없이 힘든 6년이었죠. 변호사로의 삶도 녹록지 않아요. 대체 내가 이 일에 맞나 고민하던 시기도 있었고요. 제 주변에는 정말 사회적으로 스펙이 좋은 친구들도 많거든요. 그런데 잘나가기만 하는 그 친구들도 다른 데 투자를 잘못했거나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기거나 엎치락뒤치락… 인생에서 겪어야 할 걸 다 겪더라고요. 무슨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처럼.
제가 너무 힘들게 일하니까 엄마가 “니 자식이면 이 일을 시키고 싶냐”고 물으신 적이 있는데 제가 그랬거든요. 근성 있게 열심히 하기만 하면 좋겠다고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변호사로서의 일은 그저 제 일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중대한 일이기도 하잖아요. 사건이 해결되고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의뢰인이 눈물을 흘리며 자기 마음을 표현해줬을 때, 최선을 다해 싸워준 그 시간을 고마워할 때, 지고 이기고를 떠나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죠.

20대를 거치고 30대를 지나면서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냈다지만 그 시간들이 변호사 박지영을 더욱 단단하게 세워줄 것이다. 오지라퍼, 쌈닭, 왕언니. 그녀의 다른 이름들은 의뢰인으로 그녀를 만나는 순간, 세상 그 누구보다 든든한 내 편의 이름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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