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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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KBS PD

    • 2008년 KBS 시사교양국 입사
    • <소비자고발>, <추적60분>, <명견만리>
    • <천상의 컬렉션>, <다큐 인사이트>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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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고 분노하고 체념하는
‘돈의 시대’

KBS <다큐 인사이트 - 팬데믹 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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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KBS PD

    • 2008년 KBS 시사교양국 입사
    • <소비자고발>, <추적60분>, <명견만리>
    • <천상의 컬렉션>, <다큐 인사이트> 제작

팬데믹 시대, 우리가 경험한 마음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죠? 저는 이렇게 늘 희극만 보며 사네요. 하하하.” 지난달에도 주식으로만 십억 원 넘게 벌었다는 주식투자자가 초고층 아파트 거실에 앉아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잠시 후 룸서비스를 위해 핸드폰을 집어 든 남자. 아침 식사로 갈비탕을 주문했다. (아파트에서 조식 룸서비스라니!) 갈비탕값 5만 원은 다음 달 관리비에 더해질 것이다.
아무리 부자라도 그렇지, 아침 한 끼 5만 원은 좀 아깝지 않을까. “보통 사람들은 자기 시간을 팔아서 돈을 사잖아요. 저는 돈을 주고 제 시간을 사는 거예요.” 일순간 우리는 스스로가 새벽 5시부터 노동현장으로 몰려나온 사람들임을 자각하며 숨을 죽였다. 지난 2월 <팬데믹 머니>의 첫 촬영 날이었다.

영화 같은 인터뷰를 쏟아낸 주식투자자는 이후 시장교란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어 방송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첫 촬영날에 느꼈던 이른바 현타(현실자각타임)는 방송을 제작하는 내내 찾아왔다. 어떤 이들에게 돈은 그저 숫자놀이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는데, 그 게임에 참여할 수 없는 내겐 닿을 수 없는 저 세상의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화가 났고 허탈했고 조급했다.
팬데믹 시대에 대부분의 우리가 경험한 이 마음. 이제는 시대정신이라 불릴 수 있을 것도 같은 FOMO(Fear of Missing Out)의 한 가운데에서 <팬데믹 머니>가 만들어졌다. 나를 비롯해 우리 각자의 FOMO를 이해하고 다독이는데 이 프로그램이 조금은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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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다큐 인사이트 – 팬데믹 머니>, 필자 제공

이 많은 돈, 어디서 생겨나서 어디로 흘러가는가

2020년 11월, 날씨가 추워지며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했다. 확진자와 사망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떴던 그 날, 주식시장은 환호라도 하듯 나스닥·다우존스·S&P500 3대 지수 모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다. ‘팬데믹, 이대로 Go!’를 외치는 블랙 코미디의 한 장면. ‘어쩌면 돈의 세계는 현실 세계와 완전히 분리된 게 아닐까?’라는 물음이 <팬데믹 머니> 기획의 시작이었다. 자신만의 법칙으로 돌아가는 머니 게임. 그 비밀을 들여다본다면 흥미롭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도 동학개미, 부동산 영끌이 한참 이슈가 되면서 밀레니얼의 주식투자 열풍이나 부동산 폭등에 관련된 방송들이 여럿 방영되었다. 프로그램의 차별화를 위해서는 ‘이 많은 돈은 어디서 생겨나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조금 더 원리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적 완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게 왜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는지, 그리고 그 근원에 있는 달러 시스템의 모순은 무엇인지 들여다보자는 방향으로 기획안을 다듬었다.

진짜 제작의 괴로움은 이제부터 시작되었다. 중앙은행은 언제 어떤 권한으로 돈(본원통화)을 만들고 그것을 어떻게 시중으로 퍼뜨리는지, 돈을 움직이는 운전대라고 할 수 있는 금리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과정에서 채권이 중요한지 등등… 형체 없는 이 개념들을 다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하지? 머리가 아팠다. 게다가 금융전문가들에겐 기본적인 지식이더라도,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내용들이 너무 많았다.
은행 적금 따박따박 붓는 게 아직도 최선이라 믿는 우리 어머니도 이 프로그램을 끝까지 볼 수 있을까? <삼프로TV> 유튜브 구독자가 아니더라도 거시 경제가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에게 몰입감을 주면서도 어렵지 않게 전달할 수 있을지가 최대의 난제였다.

몰입감을 주기 위한 CG와 촬영 세트 연출

처음부터 CG와 미술에 공을 들이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프로그램의 첫 씬에 등장하는 ‘뒤집힌 도시’는 자산 버블과 최악의 경제난이 한꺼번에 찾아온 팬데믹 머니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메인 이미지로 구상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기묘한 풍경을 통해 강한 첫인상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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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다큐 인사이트 – 팬데믹 머니>, 필자 제공

한정된 그래픽 예산으로 인해 촬영은 KBS 별관에 있는 대형 LED를 활용해보기로 했다. 보통 드라마 팀에서 차량 씬을 찍기 위해 사용하는 비디오월(Wall)이다. 바닥에는 진짜 모래를 깔고, 뒤집힌 도시 이미지는 대형 LED에 띄워 타이트 샷들을 촬영했다. 도시 전경이 모두 나와야 하는 롱풀샷은 다시 LED에 녹색 화면을 띄워 크로마키 촬영을 한 뒤 후반작업에서 세밀하게 합성했다. 달러가 흩날리는 프리젠터 씬의 경우 1초당 1000프레임의 초고속 촬영으로 소스 영상을 얻어낸 뒤 다시 후반에서 합성을 하는 방식으로 완성했다.
영화나 드라마 작업과 같은 예산을 들일 수 없는 다큐멘터리로서는 이런 방식으로 VFX의 작업량은 줄이되 퀄리티는 지키는 방식을 나름대로 찾아내려 노력했다.

<다큐 인사이트 – 팬데믹 머니> 인터뷰 세트 사진, 필자 제공

전문가들의 인터뷰 공간은 따로 세트로 만들었다. 돈의 세계에 대한 비밀을 폭로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무대디자이너에게 이야기하니, 아예 은행 금고로 해보면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주어 재현해보았다. 나무와 스티로폼을 깎아 은행 문을 만들었는데, 꽤 리얼하게 제작되어서 방송 후에는 어느 은행에서 촬영했는지 묻는 분들도 더러 있었다.

기존 경제 다큐멘터리들이 주로 객관적이고 드라이한 톤을 많이 가져가는 반면 <팬데믹 머니>는 영화처럼 서스펜스가 느껴지는, 콘셉추얼한 비주얼의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호기로운’ 생각으로 출발한 작업들. 그런데 막상 제작을 하면서는 혹시 유치해 보이면 어떡하나 속으로 엄청 걱정을 했더랬다. 다행히 특수영상 그래픽을 맡아주신 감독님들의 밤샘 노고와 디테일한 색 보정 작업, 보통의 다큐멘터리 작업보다도 훨씬 더 많은 정성을 투입한 미술과 조명의 힘으로 기대했던 결과를 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연출 의도를 잘 이해하고 존중해준 스태프들이 고마웠다. 그 덕분에 <팬데믹 머니>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프로그램에 녹아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방송 후 많은 분들이 ‘영상미’를 언급해주신 것도 큰 보람이었다.

프로그램의 밀도를 높인 깊이 있는 인터뷰

또 하나 이번 <팬데믹 머니>를 제작하면서 보람 있었던 부분 중 하나는 한국 전문가들 중심의 경제 프로그램이 되었다는 것이다. 경제 다큐멘터리는 이름 있는 해외 석학 누구를 인터뷰했는가로 취재의 완성도를 평가받는 듯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물론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이룬 사람의 통찰은 매우 가치가 있는 것이긴 하지만,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해외 출장에서 간단한 통성명 후에 정해진 30분 내외의 시간 동안, 그것도 다른 나라의 언어로 해야 하는 인터뷰는 늘 아쉽고 한계가 많았다.
코로나 상황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한국의 경제 전문가들을 메인 인터뷰이로 하자는 계획을 세우고 섭외부터 사전 미팅까지 꼼꼼히 검토했다. 언론계, 학계, 금융계로 분야도 다양하게 하려 노력했다. 한 전문가의 의견에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더하거나, 크로스체크 해가면서 최대한 바이어스를 줄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인터뷰 프리뷰만 해도 A4 용지로 무려 500쪽이 넘는 방대한 양이 나왔다. 물론 방송에는 매우 압축적으로 편집이 되긴 했지만, 이런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인터뷰 덕분에 프로그램 밀도를 높일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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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다큐 인사이트 – 팬데믹 머니>, 필자 제공

<팬데믹 머니> 제작을 마쳤지만, 나의 FOMO가 끝나지 않은 것처럼 어떻게든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시절. 그 무시무시한 속도를 다큐멘터리를 하는 우리는 부지런히 따라잡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숙제로 남았다.
2시간의 다큐멘터리를 위해 수십 권의 책을 읽고 밤샘 토론하며 막판까지 구성의 진화를 보여준 유수진 작가님. 매일 외신뉴스를 체크하고 어려운 섭외를 돌파해가며 수고해준 안선주, 김미향 작가를 만난 것은 천운이었다. 경제 프로그램 힘들어서 두 번은 못 하겠다고 서로 농담처럼 말했지만, 우리 어쩐지 멀리 못 가고 다시 만날 것 같은 기분! 이 지면을 빌려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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