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여기 이 작가

어머니의 유산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최미혜 작가

김윤양 책임 편집위원  사진 김용철   장소 최미혜 작가 자택  

여기 이 작가

어머니의 유산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최미혜 작가

김윤양 책임 편집위원
사진 김용철
장소 최미혜 작가 자택

그토록 강렬한 예고는 처음이었다. 보라색 나비처럼 걸어온 아이가 엄마를 부를 때 순식간에 시야가 흐려졌다. 아내의 이름을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의 이름이 그토록 슬픔이던가. 최첨단 VR 기술로 구현해낸 가상현실에서 떠난 가족을 만나는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2020년 2월, 방송 직전 공개된 33초짜리 예고는 만 하루도 되지 않아 1만 뷰를 넘겼고, 가상현실에서 엄마와 딸의 재회 장면은 2021년 8월 현재 2,818만 뷰를 기록 중이다. 시청자들의 호평은 수상으로도 이어져 한국PD대상, 2020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TV다큐멘터리 부문 대상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VR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시즌 1, 2를 제작하고 현재 세 번째 시즌을 준비 중인 최미혜 작가를 만났다.

아이템 선정부터 방송까지 전 과정이 파란만장했어요. VR 기술로 세상을 떠난 딸과 아내의 이미지를 구현해내는 게 처음이다 보니 수도 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어요. 녹화 전날까지 밤새 테스트를 했지만, 녹화 당일에도 에러가 발생해 제작진이 뛰어다니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어요. 아이 엄마인 체험자가 그린 스튜디오에서 HMD(Head Mounted Display)를 착용하면 엄마의 시선에 VR(그래픽 영상)이 플레이됩니다. 제작진은 스튜디오에 마련된 모니터를 통해서만 VR 그래픽과 체험자가 합성된 장면을 볼 수 있어요. 녹화가 시작되고 그린 스튜디오에는 홀로선 엄마의 모습만 보이는데, 엄마가 아이를 안고 싶어 손을 허우적대는 순간 스튜디오에서 숨죽이고 지켜봤던 모든 스태프가 다 울었어요.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게 아니라 헉, 하고 오열이 터질 것 같았어요. 녹화되는 오디오에 울음소리가 들어갈까봐 입을 틀어막았을 정도였죠.

그린 스튜디오 녹화현장과 제작진이 VR 그래픽과 체험자가 합성된 장면을 볼 수 있는 모니터, 필자 제공

아무도 이전에 겪지 못한 생경한 경험이었다. 세계 최초의 시도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뼛속까지 문과인 최미혜 작가가 최첨단 VR 기술을 결합한 다큐멘터리 제작에 나서게 된 건 프로그램을 기획한 김종우 PD의 전화로 시작되었다. ‘세상을 떠난 딸과 딸을 그리워하는 엄마를 가상현실 속에서 만나게 해보자’는 제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제작에 난항을 예상했지만 최미혜 작가는 단번에 된다고 믿었다. VR 기술은 몰랐지만, 그녀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후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미혜 작가는 아홉 살에 아버지를 잃었고, 서른네 살 되던 해 갑작스러운 병마로 어머니마저 잃었다. 그에게는 이 프로그램을 하게 된 것도, 주인공들을 만난 것도 다 운명 같았다.

두 번째 시즌을 앞두고 새로운 가족을 찾고 있었어요. <너를 만났다>는 돌아가신 분이 있고, 체험자가 있잖아요. VR 그래픽으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돌아가신 분의 소스가 많아야 해요. 고화질의 사진이나 동영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실물에 가깝게 제작할 수 있고, 생전의 목소리가 담긴 오디오 파일도 많이 남아있어야 고인의 목소리로 대화를 구현해낼 수 있어요. 그런 제작요건을 갖춘 가족을 만나기도 쉽지 않지만 온 가족이 다 제작에 동의해야 할 뿐 아니라 세상을 떠난 가족을 꼭 만나고 싶은 간절함도 있어야 해요. 막연한 그리움이 아니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꼭 다시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분이 주인공이 되더라고요. 사실 그런 상황은 갑작스레 엄마를 잃은 저에게는 아주 익숙한 상황이었어요. 나 같은 사람을 찾아야겠구나…. 그래서 엄마를 모신 추모공원에 갔어요. 공간을 둘러보는데 엄마가 계시던 공간 바로 뒤에 故 성지혜 씨가 있었어요. 가족사진을 보고 김정수 씨 가족의 의사를 물었는데 김정수 씨는 이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더라고요. ‘아내가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작가님을 보낸 것 같다’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김정수 씨 가족이 제가 살던 동네에 살았고 엄마와 같은 교회에 다녔더라고요. 그래서 저 역시 우리 엄마가 딸을 위해 김정수 씨 가족을 보내주신 거라고 운명으로 받아들였죠. 게다가 정말 감동적이었던 게 김정수 씨 아이들이 녹화하는 날을 ‘엄마가 오는 날’이라고 표현하는 거예요! 가상현실이라는 걸 아는데 ‘엄마가 온다’고 표현을 하니까 제작진 입장에서는 너무 고마웠고요, 그러니 더 잘 만들고 싶더라고요.

결혼생활 14년, 2년 터울로 다섯 아이를 출산한 다둥이 부부. 故 성지혜 씨와 김정수 씨는 부부는 유난히 금실 좋은 부부였다. 병마와 싸우던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남은 5남매를 키우던 아빠 김정수 씨는 아내에게 못다 한 말이 많았다. 그래서 출연을 반대하는 사춘기 딸들을 일일이 설득해가며 출연을 결정했다. “아빠는 엄마 그림자라도 보고 싶다. 멀리서라도…” 그가 아이들을 설득한 말은 제작진은 물론 시청자들의 가슴을 쳤다. 가능한 한 생전과 가깝게 상황을 재현하고 싶었지만, 기술 구현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김정수 씨가 늘 아내에게 팔베개를 해줬다고 해요. 그런데 그래픽으로 만든 이미지로는 이런 인터랙션(상호작용)이 불가능한 거예요. 눕는 것도 어려운 데다가 안을 수도 없어요. 아직까진 대화를 AI로 하는 건 불가능한데, 오디오 딥러닝을 통해 구현된 목소리는 기계음이다 보니 문장이 길어지면 그만큼 정확도가 떨어지는 등 한계가 많아요. 부부가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 어떤 스킨십도 안 되는 거예요. 고민 끝에 춤추는 씬을 만들어 스킨십을 표현해 보기로 했죠. 보통 ‘춤’하면 남자가 여자의 어깨를 안거나 여자가 손을 남자 목에 두르는 걸 상상하잖아요? 이것도 안 되거든요. 춤을 어떻게 춰야 하나…

VR로 춤이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HMD를 쓰고 춤을 춰보는 최미혜 작가

제작진이 직접 HMD를 쓰고 춤도 추면서 표현 가능한 방법을 찾았어요. 그래서 손만 대고 아장아장 가볍게 스텝을 밟는 단순한 춤으로 하기로 했죠. 춤이 잘 될까 엄청 걱정하면서 녹화를 했는데 오십 된 남자가 텅 빈 그린 스튜디오에서 춤을 추는데 그 장면이 너무 슬픈 거예요. 그리고 김정수 씨가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 없는 간절함의 표현일 텐데, 그래픽으로 구현된 아내의 얼굴선을 따라 손으로 훑더라고요. 그리고 체험자의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VR 상에서 계속 명령어를 줘야 하거든요. ‘오빠, 여기 앉아봐’, ‘오빠, 이것 좀 해봐’ 저는 그런 말이 너무 어색했어요. 그런데 많은 부부들이 아내가 시키고 남편이 따르는, 그런 상황에 익숙하다는 거예요. 그래픽으로 구현된 아내의 말을 따라 반응하는 김정수 씨를 보니 저분에게는 저런 상황이 정말 그리웠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내가 떠난 후 주변 사람들이 김정수 씨에게 한 말은 대부분 ‘아이들 어떻게 다 키울래?’, ‘잘 키울 수 있겠어?’였대요. 아내를 잃은 김정수 씨의 슬픔은 아무도 들여다 봐주지 않은 거죠. 아이가 다섯이니 일을 하러 가도 아이들 전화만 하루에 스무 통 이상 오더라고요. 정상적인 직장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요. 본인의 삶이 없는 삶. 김정수 씨는 아내를 만나서 자기 안에 있던 어떤 걸 다 풀고 싶었나 봐요. 트라우마 치료처럼 자신을 내려놓고 속을 비운달까.

VR로 춤이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HMD를 쓰고 춤을 춰보는 최미혜 작가

제작진이 직접 HMD를 쓰고 춤도 추면서 표현 가능한 방법을 찾았어요. 그래서 손만 대고 아장아장 가볍게 스텝을 밟는 단순한 춤으로 하기로 했죠. 춤이 잘 될까 엄청 걱정하면서 녹화를 했는데 오십 된 남자가 텅 빈 그린 스튜디오에서 춤을 추는데 그 장면이 너무 슬픈 거예요. 그리고 김정수 씨가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 없는 간절함의 표현일 텐데, 그래픽으로 구현된 아내의 얼굴선을 따라 손으로 훑더라고요. 그리고 체험자의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VR 상에서 계속 명령어를 줘야 하거든요. ‘오빠, 여기 앉아봐’, ‘오빠, 이것 좀 해봐’ 저는 그런 말이 너무 어색했어요. 그런데 많은 부부들이 아내가 시키고 남편이 따르는, 그런 상황에 익숙하다는 거예요. 그래픽으로 구현된 아내의 말을 따라 반응하는 김정수 씨를 보니 저분에게는 저런 상황이 정말 그리웠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내가 떠난 후 주변 사람들이 김정수 씨에게 한 말은 대부분 ‘아이들 어떻게 다 키울래?’, ‘잘 키울 수 있겠어?’였대요. 아내를 잃은 김정수 씨의 슬픔은 아무도 들여다 봐주지 않은 거죠. 아이가 다섯이니 일을 하러 가도 아이들 전화만 하루에 스무 통 이상 오더라고요. 정상적인 직장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요. 본인의 삶이 없는 삶. 김정수 씨는 아내를 만나서 자기 안에 있던 어떤 걸 다 풀고 싶었나 봐요. 트라우마 치료처럼 자신을 내려놓고 속을 비운달까.

타인의 슬픔을 바라보며 제작진은 끊임없이 경계하고 고민했다. 체험 후 가족들이 슬픔에만 머물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컸지만, 무엇보다 그들에게 상처가 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었다. 세간의 우려를 잘 알았기에 끊임없이 돌아보길 반복했다. 다행히 시즌1의 체험자는 방송 이후 유튜브와 브런치 등을 통해 세상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고, 시즌2 출연자 김정수 씨 역시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로 제작진에게 근황을 전했다고.

솔직히 아까운 장면이 많았는데 조금이라도 작위적이거나 슬퍼 보이는 장면은 다 뺐어요. 함께 일한 김종우 PD는 ‘보이스 오버’ 편집을 하지 않겠다고 벽에 붙여놓고 편집했어요. 보통 촬영된 영상에 인터뷰 오디오를 덮어씌우는 편집은 큰 고민 없이도 하던 건데요. 그는 PD가 그런 전지적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게 두렵다고 하더라고요. 촬영이나 편집과정에서 혹시라도 실수할까봐 자기 원칙을 가지고 제작에 임했고, 저 역시 흔쾌히 PD의 생각에 동의했어요. 제가 결혼생활이나 출산과 육아에 대한 경험이 없어 몰랐던 부분은 PD가 메워줬고요. 대신 저는 부모를 잃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타인의 슬픔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보다 더 예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출연한 분들의 감정을 최대한 보호하고 공감하는 게 제 사명이라고 생각했어요.
프로그램을 만드는 내내 당연히 아팠고요. 프리뷰하면서 매번 울었어요. 제가 서른네 살 되던 해, 엄마가 갑자기 뇌종양 진단을 받았어요. 6월 2일에 진단받고 중환자실에 계시다 14일, 수술도 잘 끝났는데 그날 저녁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자식 욕심이 워낙 많은 분이라 뇌종양 아니고 뭐라도 이겨내실 줄 알았는데 불과 12일 만에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셨어요. 자식 노릇 한번 제대로 못 하고 엄마를 떠나보냈다는 죄스러움에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그 힘든 시간이 나에게 재산이 됐구나 싶더라고요.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게 어쩌면 짧은 생을 살다 가신 우리 부모님이 내게 남긴 유산이구나 하고요.

올해로 방송 25년 차. 살아서 자식을 생에 전부라 여겼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 후에도 늘 최미혜 작가의 마음속에서 딸의 가장 큰 응원군이자 버팀목이 되었다. KBS <다큐멘터리 3일>로 한국방송작가협회 작가상을 받는 영광을 누릴 때도 부제가 ‘엄마 냄새, 목포 다순구미 마을의 3일’이었다.

나 말고도 다른 작가들도 있는데 내가 상을 받는 게 맞나, 그랬을 때 남동생이 그러더라고요. ‘엄마가 준 선물이라고 생각해!’ <다큐멘터리 3일>을 거의 6년 했는데 결국 엄마 이야기를 했을 때 상을 받더라고요. 엄마가 그 어려운 뇌종양 수술을 마치고 의식을 되찾았을 때 했던 첫 말이 기억나요. 제가 ‘엄마, 나 누구야?’ 하고 묻자, 엄마가 ‘내 딸, 서른넷, 시집가야 돼’라고 하더라고요. 엄마는 그렇게 잔소리하며 영원히 제 곁에 머물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나이 들면서 문득문득 엄마가 느껴져요. 레시피도 없이 처음으로 김치를 담갔는데 엄마 김치 맛이 날 때, 거울 속 제 얼굴에서 엄마의 얼굴이 보일 때 ‘아, 내가 엄마 딸이구나’ 싶고, 나이가 들어 엄마가 제 나이쯤에 호소했던 증상들, 발이 시리다거나 어디가 아프거나 할 때 ‘나이 들면 다 그렇지 뭐’라고 무심하게 넘긴 게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살면서 문득문득 엄마 생각이 날 때 자식은 참 나이가 들어도 엄마가 필요하구나 싶고요.
사실 가족을 잃고 나면 수많은 ‘IF’가 남아요. 그게 또 사람을 미치게 하고요. 저는 그 마음을 아니까 가족을 일찍 떠나보낸 출연자들과 많은 감정을 공유하며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타인이 모르는 감각을 느낀다, 통각이 예민해졌다… 그럼 내가 이런 이야기들은 피해가야 하나?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저 이 모든 게 운명이라 여기고 묵묵히 해나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제가 가진 유일한 재산이 저를 이끌고 있는 것 같아요.

25년간 매해 쉬지 않고 ‘다큐쟁이’로 살다 보니 이제 인생에서 방송을 안 한 시간보다 방송을 한 시간이 더 길어졌다는 최미혜 작가. VR 다큐멘터리라는 낯설고 새로운 장르에 익숙해지기 위해 다큐멘터리에 임하는 기존의 사고체계를 다 버려야 했지만, 그 고통스러운 과정 속에서 외려 새로운 가능성을 본 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텍스트로 사고하는 방식, 휴먼다큐에 대한 기존의 제 사고방식을 다 버리지 않으면 따라갈 수가 없는 거예요.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과정이 되게 지난하고 힘들었어요. 사실 다큐멘터리를 20년 넘게 했으니 이제까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루틴이 있잖아요. 아주 큰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욕먹지 않고 하던 대로 해도 되니까 그렇게 살아도 큰 불만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영역에 맨땅에 헤딩해보니 더 늙기 전에 이런 가능성에 도전해볼 수 있었다는 게 감사하더라고요. 남들이 다 안 된다고 했을 때 ‘가능성’을 가지고 시작했고, 시도했고, 다행히 PD랑 잘 맞아서 ‘가능성’의 결과물을 본 거잖아요. 사실 작가로서 연차가 높아질수록 고민이 많았어요. 다큐멘터리 안에서 내 역할은 뭘까, 내가 던지는 말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고 있긴 한가. 찌그러진 우유갑처럼 작가로서 열패감에 시달릴 때도 있었어요. 그럴 때 <너를 만났다>를 만나 제 안에 있던 걸 다 버리고 하나부터 열까지 새롭게 다시 세운 거잖아요. 무엇보다 내 안에 그런 가능성이 있었다는 게 놀라웠어요. 녹화를 위해 밤새 리허설을 하고도 수많은 에러가 발생하고, 수정하고, 시간이 딜레이되고, 그러면서도 녹화가 시작되니까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리더라고요. 방송을 하는 사람이라 행복했어요. 다행히 방송 후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가 좋았고, 상도 많이 받았지만 그건 덤이고요. 제가 진짜 좋았던 건 바로 그것, 내가 살아온 시간에 대한 확인, 믿음, 내 안의 가능성을 봤다는 겁니다.
텍스트로 사고하는 방식, 휴먼다큐에 대한 기존의 제 사고방식을 다 버리지 않으면 따라갈 수가 없는 거예요.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과정이 되게 지난하고 힘들었어요. 사실 다큐멘터리를 20년 넘게 했으니 이제까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루틴이 있잖아요. 아주 큰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욕먹지 않고 하던 대로 해도 되니까 그렇게 살아도 큰 불만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영역에 맨땅에 헤딩해보니 더 늙기 전에 이런 가능성에 도전해볼 수 있었다는 게 감사하더라고요. 남들이 다 안 된다고 했을 때 ‘가능성’을 가지고 시작했고, 시도했고, 다행히 PD랑 잘 맞아서 ‘가능성’의 결과물을 본 거잖아요. 사실 작가로서 연차가 높아질수록 고민이 많았어요. 다큐멘터리 안에서 내 역할은 뭘까, 내가 던지는 말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고 있긴 한가. 찌그러진 우유갑처럼 작가로서 열패감에 시달릴 때도 있었어요. 그럴 때 <너를 만났다>를 만나 제 안에 있던 걸 다 버리고 하나부터 열까지 새롭게 다시 세운 거잖아요. 무엇보다 내 안에 그런 가능성이 있었다는 게 놀라웠어요. 녹화를 위해 밤새 리
허설을 하고도 수많은 에러가 발생하고, 수정하고, 시간이 딜레이되고, 그러면서도 녹화가 시작되니까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리더라고요. 방송을 하는 사람이라 행복했어요. 다행히 방송 후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가 좋았고, 상도 많이 받았지만 그건 덤이고요. 제가 진짜 좋았던 건 바로 그것, 내가 살아온 시간에 대한 확인, 믿음, 내 안의 가능성을 봤다는 겁니다.

상실과 그리움, 이해와 공감, 위로와 믿음.
극한의 슬픔 속에서도 놓지 않았던 그 모든 것들이 만들어준 가능성이었다.
내 속에 가능성은 무엇일까. 열패감에 시달려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때 내 속의 가능성도 빛을 발하지 않을까.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 문득 뭉클했다.

최미혜 작가

1999~2018KBS <6시내고향>, <피플 세상속으로>, <TV내무반 신고합니다>,
<신화창조의 비밀>, <다큐멘터리 3일>, <환경스페셜>,
<역사스페셜>, <KBS스페셜> 등
2014MBC 창사 특집 다큐멘터리 <기후의 반란> 3부작
2019MBC 3.1절 100주년 특집 <마지막 무관생도들> 2부작
KBS 노무현대통령 서거 10주년 특집 <봉하마을에서 온 편지>
MBC 부마항쟁 40주년 특집 <1979> 2부작
2020MBC VR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시즌1
MBC 광주 5.18 40주년 특집 <나는 기억한다>
2021MBC 창사 60주년 특집 VR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시즌2 – 로망스 1, 2부
창사 60주년 특집 VR 휴먼다큐멘터리 <용균이를 만났다>
2010년제23회 한국방송작가상 교양부문 수상
KBS <다큐멘터리 3일> 목포 다순구미 마을의 3일 – ‘엄마 냄새’ 편
2020년ABU(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 TV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 수상
MBC <너를 만났다(Meeting You)> 편
2021년프리 이탈리아(Prix Italia) 다큐멘터리 부문 특별상 수상
MBC <용균이를 만났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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