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디렉터스컷_프로필

이정수 KBS 협력제작국 자연환경 책임프로듀서

    • 1995 KBS 입사(PD)
    • 2004~2011 <환경스페셜>
    • 2011 푸른 지구의 마지막 유산 <콩고> 3부작
    • 2014 국제공동제작 <위험한 생명 3부작>
    • 2018 KBS <KBS스페셜 – 시그널, 사라져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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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책을 통해 들려주는 경고

KBS <환경스페셜 기후변화 특집 - 지구의 경고: 100인의 리딩쇼 2부작>

디렉터스컷_프로필

이정수 KBS 협력제작국 자연환경 책임프로듀서

    • 1995 KBS 입사(PD)
    • 2004~2011 <환경스페셜>
    • 2011 푸른 지구의 마지막 유산 <콩고> 3부작
    • 2014 국제공동제작 <위험한 생명 3부작>
    • 2018 KBS스페셜 <시그널, 사라져가는 소리>

책으로 ‘따로 또 같이’ 보는 기후변화

쇼의 시작은 단순했다. 지난해 12월 시작된 고민은 이랬다.
회사에선 2021년 기획으로 기후변화를 다룰 프로그램을 원했다.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점엔 동의했지만 스토리텔링이 문제였다. 기획이 관건이었다. 기후변화는 과학자들이 수십 년 동안 관찰한 결과를 통계적 수치로 표현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단순한 상황 취재와 전달만으로는 통찰력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어렵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필자는 지난 2006년에 <환경스페셜 – 뜨거워지는 한반도> 편을 연출한 경험이 있다. 현장엔 답이 없었고, 영상화 작업은 힘들었다). 기후변화의 현장과 현상은 그사이 큰 틀에선 크게 바뀐 것이 없었다. 기후의 시간으로 보면 수십 년도 무척 짧은 시간이다. 또 그사이 기후 관련 국내외 다큐멘터리도 여러 채널을 통해 많이 노출됐다. 고민은 여기에 있었다. TV 프로그램은 진부하게 느껴지면 끝이기 때문이다.

그때, ‘차라리 책을 읽으면 어떻겠어?’라는 이광록 선배의 한 마디. 발상이 새로웠다. 그 자리에서 무릎을 쳤다. 이 핵심 아이디어에 며칠을 끙끙대며 ‘100’을 붙이고 ‘리딩’과 ‘쇼’를 더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획안이 <100인의 리딩쇼>다. 아이디어는 단순했다. 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감성과 반응으로 책의 중요한 단락을 따로 또 같이 읽으면 어떨까? 어려운 문단은 여러 번 읽어도 된다. 반복의 힘 혹은 반복의 스토리텔링을 믿었다. 이해와 공감은 반복에서 나올 수도 있으므로.

책 읽기, 쇼처럼 놀이처럼

창작은 늘 자기부정에서 시작되는 듯하다. 기획안 단계의 프로그램은 프로듀서, 연출, 작가, 촬영, 특수영상 등 제작진이 꾸려지고 몇 개월의 제작과정을 거치면서 타이틀과 내용 중 많은 것들이 검증받고 바뀌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UHD 기후변화 특집 <지구의 경고> 8부작 시리즈의 프로듀서는 관록 있는 신재국, 고정훈 PD가 맡고 제작은 허브넷을 비롯 능력 있는 5팀의 독립제작사가 맡게 되면서부터 시리즈는 단단해졌고 다양성은 확대됐고 풍부해졌다. 그나마 기획자로서 다행인 것은 시리즈의 1, 2편인 <100인의 리딩쇼>의 타이틀 문구가 기획에서 방송까지 원안 그대로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거칠게 쓰인 두세 페이지짜리 기획안의 문장들이 내 손을 떠나 어떻게 현장에서 변화되고 구현되는지 한 발짝 떨어져 기획자로서 지켜볼 기회가 된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배우 김미숙, 성우 김상현, 시인 김용택, 건축가 승효상, 인플루언서 박용만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각계 셀러브리티와
농부, 학자, 셰프, 화가, 수도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 특별한 독서에 초대됐다. 필자 제공

KBS는 오랫동안 책을 다뤄왔다. 책을 TV 속으로 데려온 경험이 적지 않다. <TV 책을 말하다>, <낭독의 발견> 등 종영됐지만 타이틀은 지금도 여전히 무게감이 있는 프로그램들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들은 여러 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냈다.
이젠 책을 정면으로 다루는 프로그램들은 사라지고 없지만, 나는 이 오랜 전통 위에 <100인의 리딩쇼>가 서 있길 바란다. 그래서 책을 기반으로 한 품격 있는 쇼의 탄생을 꿈꾼다. 혹 누가 알겠는가. 이 프로그램 포맷의 가능성을 확인한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을지. 언젠가 연출자로서 프로그램 제작을 직접 담당하게 될지.

정보는 어디나 넘쳐나지만 정작 좋은 정보는 찾기 어렵다. 답은 다시 책에 있다.
책을 통해 섬세하게 정리된 내용뿐 아니라 잘 갈무리된 단어와 문장을 얻는 것은 덤이다. 책 읽기가 실종돼 가는 시대, 책을 곱씹어 이해하는 과정이 놀이처럼, 쇼처럼 즐거웠으면 한다. 프로그램 타이틀에 ‘다큐멘터리’가 아닌 ‘쇼’를 붙인 이유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책을 멀리했던 내 자기반성적 기획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제발 그러지 마시라….

스토리텔링의 수준을 높여준 특수영상 기술

새로운 스토리텔링은 늘 기술혁신과 함께해 왔다. 과거 영화부터 라디오, TV의 발전이 그랬고 현재 인터넷 기반 미디어가 그렇다. 혹 여러분들은 LED 월(wall)과 언리얼(unreal) 게임엔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 영화와 뮤직비디오 제작 현장에서 요즘 가장 핫한 영상제작 방식이다. 현장 로케이션 없이 LED 월과 실시간 렌더링이 가능한 게임엔진을 사용해 스튜디오에서도 실감 나는 현장감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기획부터 LED 월을 이용한 촬영을 염두에 뒀다. <100인의 리딩쇼>는 책 읽기가 주요 스토리텔링이기 때문에 정적인 화면구성이 연속될 가능성이 컸다. 프리젠터가 나오는 장면만이라도 기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영상적 충격을 주는 장치가 필요했다.

최초의 시도엔 늘 처음 겪는 어려움이 따라온다. 참조할 것이 없으니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제작 후반에 배치됐던 원고 작성 과정을 앞부분에 배치,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상상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거의 완벽한 스토리라인을 짜야 했다. 드라마 콘티 작업과 유사했다. 이 과정에서 <100인의 리딩쇼> 제작을 맡은 허브넷의 김소현 작가와 김선우 PD의 노고가 컸다. 아마도 책을 수없이 뒤적이면서 출연자들이 읽을 적절한 구절들을 하나하나 찾고 그에 걸맞은 동선까지 만들어 냈으리라.

완성된 스토리라인을 특수영상팀과 공유하는 단계에선 현실적 구현 가능성도 꼼꼼하게 따져야 했다. 이를 극복하게 해 준 힘은 KBS 후반제작부 박준균 감독에게서 나왔다.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수준 높은 특수영상을 구현해낸 저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적어도 LED 월을 이용한 영상 스토리텔링은 전적으로 그의 작품이다. 게다가 그는 이 값비싸고 도전적인 영상실험을 위해 RAPA(한국전파진흥협회)에서 상당액의 제작비를 지원받아 왔다. 박준균 감독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LED 월 녹화 현장과 배우 정우 프리젠터. 필자 제공

제작진과 프리젠터가 합심해 이룬 최초의 시도들

코로나 시국을 절감한 촬영이었다. 미리 섭외됐던 프리젠터가 밀접접촉자로 격리 판정을 받으면서 낙마했다. 우여곡절 끝에 배우 정우가 흔쾌히 프리젠터로 나섰고 방송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LED 월 녹화가 진행됐다. 연출팀, 특수영상팀, 촬영팀, 미술팀 등 약 30명의 스태프들이 프리젠터의 LED 월 촬영 현장을 함께 했다. 녹화 당일, 저녁 10시쯤이면 모든 촬영이 끝날 것으로 모두 예상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녹화 현장의 후끈했던 풍경을 허브넷의 김소현 작가가 문자로 전해왔다. 여기 그대로 옮긴다.
“논과 들판에 둘러싸인 비현실적인 fx 스튜디오에서, 녹화는 새벽 3시에 끝났다. 지구가 책을 통해 들려주는 경고를 12시간의 리딩으로 충실히 전한 프리젠터 배우 정우… 그리고 특수영상. 그 최초의 시도들만으로도 <100인의 리딩쇼>는 ‘이 구역의 미친 다큐’였다. 그의 드라마 제목처럼…” 생생한 묘사였다. 열정이 느껴졌다. 적어도 실패하지는 않겠다 싶었다.

UHD 기후변화 특집 <지구의 경고> 시리즈는 총 8편의 에피소드로 구성, 올해 12월까지 틈틈이 방송될 예정이다. <100인의 리딩쇼>는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 돌아보면 시리즈 총 8편 중에서 1, 2부 단 두 편만 책을 읽는 리딩쇼로 기획된 건 일정 부분 기획자의 소심함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리즈가 다 끝나는 12월엔 이런 생각을 혼자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음 책은 너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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