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내일은 방송작가

그래, 나는 대책 없는 베짱이로 살고 싶어

*너에게 쓰는 편지-신해철에게 (유하 「세상의 모든 저녁」 1993) 인용

내일은 방송작가

그래, 나는 대책 없는
베짱이로 살고 싶어

*너에게 쓰는 편지-신해철에게 (유하 「세상의 모든 저녁」 1993) 인용

배송문-프로필-사진

배송문

  • 광주극동방송 <생방송 클릭비전>
  • 광주FM <모쏠들의 연애학교>, <혼자이기 싫을 때>
  • 2014 토지 평사리 청소년 문학상 대상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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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극동방송 <생방송 클릭비전>
  • 광주FM <모쏠들의 연애학교>, <혼자이기 싫을 때>
  • 2014 토지 평사리 청소년 문학상 대상 외

마음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문득 그런 낯간지러운 게 궁금해진다. 다섯 살, 유치원 하원 버스 안에서 옆자리 친구에게 방금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던 나. 친구는 내게 “너는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한다”라고 말한다. 그 말이 퍽 좋았던 나는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을 뭐라고 불러?”
“작가나 소설가라고 부르지.”
그건 꿈에 관한 내 최초의 기억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스물다섯의 배송문은 어쩌다 보니 방송작가 지망생이 되어있다.

‘어쩌다 보니’라는 단어 때문에 괜한 오해를 살까 두려워 먼저 변명을 좀 하자면, 나는 전형적인 계획형 인간이다. 한 치 앞길 모르는 인생의 캄캄함이 두려워 ‘배송문의 10년 계획’ 따위의 도표를 작성하고, 그걸 삶의 지표로 삼는 사람이 바로 나다. 25년의 내 인생에는 그런 계획표가 수없이 많았다.

열다섯 어느 밤, 노트에 끼적였던 계획표를 기억한다. 낯부끄러울 정도로 거창했던 그 메모의 제목은 ‘R=vd 노벨문학상 수상 소설가’였다. (「꿈꾸는 다락방」과 「시크릿」이 유행했던 2011년의 일이었다. 당시 내가 중학교 2학년이었음을, 재차 강조한다.) 큰 글씨의 제목 아래 조금 작은 글씨로 적어 내려간 연도별 세부 계획은 ‘2016년 20세 대학 입학(문예창작전공)’, ‘2017년 21세 문예지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을 지나 ‘2036년 40세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마무리되었다. (왜 하필 마흔인지 궁금하다면, 러디어드 키플링을 떠올려보시길…)
열다섯의 나는 앞으로의 인생이 그 목록대로 착착 진행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의 나는, 유감스럽게도 그 목록에서 제대로 이뤄질 일은 ‘2016년 20세 대학 입학(문예창작전공)’ 정도밖에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런 종류의 계획표들이 대부분 유명무실하다는 건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어린 나는 몰랐지만 사실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은 대부분 내 소관이 아닐 때가 많은 법이니까.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고, 그랬기에 달성하지 못한 업적에 크게 연연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변경하고, 가끔은 지나쳐도 큰 틀만 그대로라면 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냥 내 몫을 묵묵히 하며 계속해서 걸어가다 보면 늦더라도 언젠간 반드시 원하는 결론에 도착하게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문제는 예상 밖의 다른 곳에서 생겨났다.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끝나버린 거였다.

처음에는 착각이라 생각했고, 그다음에는 당황했으며 나중에는 모르는 척을 했다. 연인 사이에도 권태기가 있듯 오랜 꿈을 간직한 사람에게도 비슷한 일이 생기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도통 움직이려 하지 않는 마음을 억지로 밀었다. 대책 없는 억지였다. 이윽고 한계에 도달했을 때, 나는 내게 물었다. “그래, 너 지금 즐겁니?”

마음이 시작된 곳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 다시 다섯 살, 유치원 하원 버스 안. 방금 막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던 나와 “너는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한다.” 말하던 친구, “다른 건 더 없어?” 즐거워하던 그 얼굴. 아, 나는 그 웃는 얼굴이 좋았던 거구나.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글이라면, 소설가보다는 방송작가가 더 어울리지 않나?’ 순간 떠오른 생각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으로 지난 이력을 돌아보니 곳곳에 방송이 있었다. <생방송 클릭비전>(광주극동방송, 2015 종영)의 오프닝 멘트를 쓰던 고교 시절과 취미로 팟캐스트를 진행했던 대학 시절, “잘 듣고 있어요”라는 한 마디에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행복해했던 내가 보였다.

무슨 짓을 해도 움직이지 않던 마음이, 방송작가를 준비하는 지금은 다시 설렘으로 가득 차올랐다. 마치 그동안은 미는 방향이 달랐기 때문에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던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교육원에서 수업을 듣는 지금, 나는 막연한 로망에 현실을 더해가고 있다. 걷고자 하는 길이 구체화 되면 될수록 나는 더, 점점 더 이 일에 매료되고 있다. 다시 내게 묻는다. “너 지금 즐겁니?” 나는 대답한다. “미친 듯이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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