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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채널 4’ 민영화 논란

김수정 영국통신원

  •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작가
  • 현재 런던에 거주하며, 다양한 글쓰기와 방송 일을 하고 있다.

독보적 행보를 보여온 준 공영방송 ‘채널 4’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그녀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나뉘지만 다들 입 모아 칭송하는 업적이 하나 있다. 바로 방송사 ‘채널 4’를 남긴 것이다. 1980년 당시 제2의 독립적인 방송국 설치를 위해 만들어진 ‘채널 4’는 당시 영국의 2대 공중파였던 BBC와 ITV와는 차별된 프로그램으로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높은 실업률과 혼란으로 인한 사회 문제점과 민족적 분열상을 그 어떤 채널보다 날카롭게 진단했으며 상업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려는 노력으로 독특한 색깔을 확보했다. 열혈 시청자층을 확보하며 고급문화나 소수 시청자들을 배려하는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영국 정권의 가장 날선 비판을 견지한 방송사 역시 ‘채널 4’였다.

‘채널 4’가 이런 독보적인 행보를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상업방송이면서도 동시에 공영방송인 준 공영방송이기 때문이다. 모든 방송 제작비용은 시청료가 아닌 광고료에서 나오므로 상업방송이지만, 경영은 정부 기관인 영국 방송위(Ofcom)에서 임명한 이사진들이 담당하기 때문에 공익적 민영방송, 준 공영방송으로 볼 수 있다.

채널 4 로고, 필자 제공

변화를 주장하는 영국 정부

그런데 최근 영국 정부가 ‘채널 4’ 민영화를 추진하겠다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영국 디지털 문화미디어스포츠부(DCMS)의 올리버 다우든 장관은 방송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현 의회가 끝날 때까지 ‘채널 4’를 민영화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이를 위해서 7월 초 영국 정부는 10주간의 공개 협의 절차에 들어갔다. 사실 ‘채널 4’의 민영화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5년에도 영국 정부는 ‘채널 4’ 민영화를 추진했지만 실패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 ‘채널 4’ 민영화 추진 바람은 전례 없이 강력하다. 작년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광고 시장이 얼어붙으며 ‘채널 4’의 경쟁력이 떨어진 게 화근이었다. 2020년 회계 연도 수익구조가 형편없다는 비판이 거세지며 ‘채널 4’를 손대려는 구체적인 계획이 잡힌 것이다.

다우닝 장관은 “‘채널 4’의 민영화는 2020년 10월 처음 시작된 공영방송의 미래 정책의 일환으로 검토되었다”며 지금이 ‘채널 4’를 공영방송의 틀에서 빼낼 수 있는 적기라고 강조했다. ‘채널 4’가 설립된 1980년대에는 준 공영방송이 유효했지만 선택이 엄청나게 늘어난 지금 공영방송과 준 공영방송의 정체성이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영국 정부는 영국 방송과 예술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존 위팅데일 장관에게 ‘채널 4’ 민영화 과정의 총 책임을 맡기고 오는 2022년까지 ‘채널 4’의 민영화 실행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위팅데일 장관은 BBC와 달리 ‘채널 4’는 광고를 재원으로 생존하는데, 최근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세가 되고 다른 경쟁 서비스의 출현으로 이 모델은 상당히 부담을 받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방송 생태계 악화에 대한 우려

‘채널 4’는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알렉 마혼 ‘채널 4’ CEO는 “민영화가 될 경우 일부 프로그램의 방송이 취소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민영화가 된다면 독립 제작사들이 만드는 콘텐츠, 젊은 세대를 위한 쇼, 전국 균형 발전을 위해 런던 이외에서 생산되는 프로그램들은 전부 취소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이를테면 최근 크게 화제가 됐던 동성애자들의 삶을 다룬 드라마 <It’s A Sin>이나 무슬림 여성들의 펑크 밴드 이야기인 같은 드라마는 민영방송사에서는 제작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즉 여태까지 ‘채널 4’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색깔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무슬림 여성들의 펑크 밴드 이야기 , 필자 제공

노동당을 비롯한 야당은 물론 많은 방송인들도 ‘채널 4’ 민영화 추진에 비판적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영국 보수당 정부가 왜 지금 갑자기 ‘채널 4’를 건드리려는 건지 그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명 정부는 정부가 운영하는 기관이 수익을 거두지 못했다는 점에서 부담감을 느끼며 변화해야 한다는 압박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혹시 그보다 더 직접적인 이유는 ‘채널 4’ 뉴스가 최근 다른 방송사에 비해 영국 정부에 가장 신랄하고 비판적인 논조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만약에 정부의 의도 중에 조금이라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면 ‘채널 4’ 민영화는 방송 탄압으로 분류될 수도 있다.

분명한 점은 ‘채널 4’ 민영화는 영국 전역의 수많은 독립 제작자에게 커다란 타격이 될 거라는 점이다. 현재 ‘채널 4’는 제작비의 반 이상을 런던 외부에 있는 지방 독립 외주 제작사에 쓰고 있으며 연간 300개 이상의 제작사에 프로그램을 수주해왔다. 하지만 민영화가 된다면 이런 지역 형평성은 물론 다양한 사회상을 담으려는 소규모 제작사는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 자본의 논리대로 시청률이 잘 나오고 잘 팔리는 프로그램만 편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자본의 순환도 바뀔 것이다. 현재 ‘채널 4’의 수익은 고스란히 프로그램의 제작비로 다시 투자되고 있는데 민영화가 된다면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특히 새로운 주인이 Sky나 Channel 5처럼 대규모 외국 자본, 다국적 미디어 그룹일 경우 더욱 이익만을 추구하는 무한 경쟁 체계로 갈 것이다.

공영방송이 변화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과 민영화가 영국 방송 생태계를 망칠 것이라는 반발이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는 지금, ‘채널 4’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떤 결과가 나오든 공영방송, 혹은 준 공영 방송사의 정체성에 새로운 상을 제시할 것이라는 점에서 영국은 물론 전 세계 방송 산업이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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