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특집3_사용2

장윤정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궁금한 이야기 Y>, <SBS 스페셜>,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당신이 혹하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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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범죄물에 빠지다

잡초를 뽑고 또 뽑는 일

특집3_사용2

장윤정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궁금한 이야기 Y>, <SBS 스페셜>,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당신이 혹하는 사이>

“작가님이 적임자 아닐까요?”
“제가요?”
원고를 청탁받았을 때, 사실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녹화가 코앞이고 수정해야 할 원고가 줄줄이 밀려있어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데다, 20년 차가 훌쩍 넘도록 월간 <방송작가>에 한 번도 글을 실은 적이 없다는 미안함에 덥석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실은 이 기회에 새로 시작하는 프로그램 <당신이 혹하는 사이>의 홍보나 해야겠다는 불순한 의도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뒤늦게 원고 청탁 메일을 열고 기획 의도를 자세히 보고서야 머릿속이 하얘졌다. ‘범죄물이 콘텐츠로서 제작자에게 매력적인 소재가 되는 이유?’라니…

“내가 했던 방송이 범죄물 콘텐츠였던가?”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 작가로 5년 반, <궁금한 이야기 Y>(이하 Y)의 메인작가로 3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와 <당신이 혹하는 사이>(이하 당혹사)까지 지난 10년 동안 나는 그야말로 사건에 묻혀 살아왔다. 하지만 그 사건들을 범죄물 콘텐츠라 칭하는 일이 내겐 낯설고 불편하기만 하다. <그알>에서 다룬 사건들은 내가 풀어야 할 숙제요 미스터리였고 <꼬꼬무>의 소재가 된 사건들은 우리가 알아야 할 현대사의 한 페이지이자 평범한 개인들의 서사였다. <당혹사>에 이르러선 수면 아래서 스멀스멀 퍼져가는 음모론에는 우리 사회를 가로지르는 두려움과 고민 같은 시대적 맥락이 수맥처럼 흐르고 있다는 생각으로 사건을 들여다본다. 같은 사건이라도 렌즈가 다르면 눈앞에 보이는 그림도 이야기도 다르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사건을 다룸에 있어 세 프로그램 모두를 관통하는 나만의 원칙이 있다면 뭐니 뭐니 해도 팩트! 그것도 아주 ‘디테일한 팩트’라고 말하고 싶다. 연일 뉴스를 장식한 어떤 사건이 <그알>과 같은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통해 재조명되면서 비로소,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구체적인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유가 뭘까? 그 차이는 대개 디테일한 내러티브에서 출발한다는 게 나의 믿음이다. 뉴스는 사건의 뼈대이다. 거기에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이야기, 구체적인 정황들이 더해져야 그 안의 사람들이 보인다. ‘공감’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SBS <당신이 혹하는 사이> 시즌2 홍보포스터, 필자제공

2003년 기막힌 뉴스가 보도된다. 전북 군산의 경찰서에서 첩보를 받고 살인 용의자를 붙잡았는데 알고 보니 그 사건의 범인은 이미 3년 전에 붙잡혀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였다. 3심까지 재판이 모두 끝나 형이 확정된 상황에서 또 다른 범인이 등장한 것이다. 당시 <그것이 알고 싶다>를 비롯한 여러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이 황당한 사건을 방송했지만 이미 자신의 범행을 자백한 첫 번째 범인 최 군이 이 사건의 범인이란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 사건이 나에게 온 건 사건 발생 13년만인 2013년. 15살에 사람을 죽인 소년범으로 수감되었던 최 군은 10년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상태였다. 그때까지 나는 확신하지 못했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살인 사건을 허위로 자백했다는 최 군의 주장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해자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는 그의 자백은 몹시 구체적이었고 피해자의 몸에 남은 상처 역시 최 군이 사용했다는 흉기와 정확히 일치했다. 범인이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이런 자백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질문은 거기서 출발했다. 4,000페이지가량의 수사 기록을 확보한 제작진은 신뢰할 수 있는 프로파일러와 범죄 심리학자들에게 편견 없이 기록을 검토해줄 것을 부탁했다. 분석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모두 같았다. 최 군의 진술이 너무도 자주, 많이 바뀌어 왔다는 것. 그리고 변화엔 한 가지 규칙이 보였다. 국과수에서 감정 결과가 회신된 다음날, 현장검증을 나갔다 온 다음날, 그러니까 새로운 증거가 나올 때마다 최 군의 진술이 달라진 것이다. 증거에 진술을 짜 맞출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라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쉽게 내린 결론은 쉽게 깨지게 마련이다. 최 군을 범인으로 결론 내린 당시 경찰과 검찰 재판부의 시선으로 원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검토했다. 그래도 결론은 같았다. 바로 영화 <재심>의 소재가 된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의 얘기다.

팩트, 그리고 음모론

<그알>를 통해 방송된 <979 소년범과 약촌 오거리의 진실>(898회, 2013년 6월 15일) 편은 당시 큰 반향을 불러왔다. 방송 이후, 많은 이들의 관심과 응원이 이어졌다. 과거 진범 김 씨를 붙잡았지만 상부의 압력으로 풀어줄 수밖에 없었던 형사님도 최 군의 누명을 벗기는 데 발 벗고 앞장섰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마음을 모으고 힘을 보탠 결과, 그 어렵다는 재심의 문이 열렸다. 우리나라에서 국가기관의 권고 없이 강력사건의 재심이 개시된 사실상 첫 번째 사례였다. 최 씨가 재심을 통해 살인범의 오명을 완전히 벗고, 진범 김 씨가 미뤄 온 죗값을 치르기까지 16년… 진실은 그렇게 느리지만 분명하게 제 자리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삼례 나라슈퍼 살인 사건>과 <엄궁동 살인 사건>, <화성 8차 사건>까지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들의 사연이 <그알>를 통해 방송되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이들이 모두 재심을 통해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팩트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가 있는 팩트는 그렇게 힘이 세다.

사건을 다룰 때, 팩트의 중요함을 기억하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디테일한 팩트는 더 정교하게 걸러지고 확인되어야 한다. 아홉 개의 팩트 사이에 숨어든 하나의 거짓은 온전한 아홉 개의 거짓보다 훨씬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어는 때보다 그러한 위험이 커지고 있다. ‘TV가 범죄에 빠졌다’고 하지만 범죄 콘텐츠의 진정한 무대는 유튜브가 아닐까 싶다. 언제부턴가 유튜브에서 미스터리 범죄 콘텐츠가 급격히 늘고 있다. 문제는 일부 유튜버와 인터넷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가짜뉴스가 그만큼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7년 <Y> 에서 소개했던 이른바 평면지구인,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이들은 급기야 지난해 유튜브를 넘어 넷플릭스에도 등장했다. 에이 설마, 누가 그런 말을 믿을까 싶다가도 관련 콘텐츠를 찾다 보면 묘하게 빠져든다는 것이 음모론의 함정. 곳곳에 가짜 뉴스가 섞여 있지만, 그 속에서 사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당신이 혹하는 사이>의 첫 방송에서 다루었던 <빌 게이츠가 코로나를 퍼뜨렸다>는 음모론도 이런 식으로 퍼졌다.

거짓이 진실을 집어삼킨 사건으로 ‘530GP 총기 난사 사건’의 얘기를 해볼까 한다. 2005년 군 생활에 불만을 품은 김 일병은 부대원들이 잠든 내무반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총기를 난사했다. 그로 인해 8명의 아까운 장병들이 목숨을 잃고 2명이 다쳤다. 김 일병은 범행을 모두 자백했고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다. 그런데 16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유튜브에선 530GP 사건이 다시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김 일병은 군이 만든 가짜 범인이고, 그날 우리 병사들을 죽게 한 진짜 범인은 북한이라는 음모론이 인터넷에선 마치 정설처럼 퍼져 있다. 실제 군이 사건을 어떻게 조작했는지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라는 김 일병의 현장검증 영상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미 9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한 이 영상을 보다 보면 ‘군이 무언가 감추고 있을 거’란 의심이 너무도 당연해진다. 촬영 내내 자신이 생각하는 사건의 시나리오를 목소리 높여 얘기하고, 급기야 취재원을 모두 내보내라 지시하는 군인의 모습은 당혹스럽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이 장면은 캡처된 사진으로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이미 무수히 퍼져있는 상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역시 가짜뉴스다. 각종 유튜브와 커뮤니티에서 사건조작의 장본인으로 지목된 그 인물은 황당하게도 군 관계자가 아닌 유가족 대표였다. 사건 현장이 GP다 보니 안에 들어간 전원이 군복과 군모를 착용했던 것이다. 심지어 영상 아래 한 유가족이 내용을 정정해달라는 댓글을 남겼지만, 조회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늘고 있다. 그 외에도 이 사건의 음모론을 구성하는 결정적 근거들은 몇 개의 사실과 몇 개의 거짓으로 교묘하게 짜여있다. 16년이 흐르는 동안 이제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조차 일일이 가려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팩트 앞에 겸허해야 할 제작자

대체 왜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 질문으로 시작한 <당혹사> 제작진은 이번에도 6권의 묵직한 기록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군은 처음부터 이 사건을 빨리, 수습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거듭 부검을 권유하는 군의관을 질책하며 부검을 하지 않았다. 철저한 수사를 약속하며 가족들에게 부검을 원치 않는다는 확인서를 받아내고 서둘러 장례를 치른 후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군 관계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유족들은 아들의 전투복조차 받지 못했다. 유품을 돌려달라는 가족들에겐 전투복에 피가 튀어 일괄 소각했다는 무성의한 해명만이 돌아왔다.
‘생활복을 입고 잠을 자던 중 사고가 났는데 전투복에 왜 피가 튀었을까.’
‘내 아들은 정말 내무반에서 죽은 걸까.’
의문이 의심이 되고, 결국엔 확신이 되는 과정은 다른 사건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내 아들의 마지막 순간을 알고 싶다는 가족들의 바람이 무색하게 군은 충분한 조사도 하지 않고 이 사고를 선임들의 가혹 행위로 인한 총기 난사로 결론지었다. 죽은 아들의 명복을 빌기도 전에 악플이 먼저 달리는 걸 지켜봐야 했던 부모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억울하고 황망한 유족들에겐 ‘범인이 북한’이라는 음모론이 차라리 위로가 되었을지 모른다.

사건 기록 속에서 우리가 확인한 8명의 마지막은 충분히 용감하고 자랑스러운 군인의 모습이었다. 그 부분을 명명백백 밝히고 추모했다면, 한 명 한 명 성의 있는 조사를 통해 유족들에게 아들의 마지막을 설명해주었더라면, 애초에 이런 음모론은 시작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16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성의 있는 답변 한 번 하지 않은 군의 무성의한 태도가 결국 음모론을 키웠다. 바야흐로 지금은 확증편향의 시대, 기록을 꼼꼼히 검토하고 분석해 방송을 하더라도 이 음모론을 믿는 이들의 생각은 아마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이 방송이 전파를 타면 방송국 놈들이 어디에 매수됐다는 뻔한 음모론이 다시 힘을 받을지도 모르겠단 불길한 예감마저 든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팩트는 힘이 세다고 믿는다. 팩트 앞에 겸허한 것, 그것이 누군가의 죽음과 누군가의 불행을 소재로 방송을 만들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힘닿는 데까지 잡초를 뽑고 또 뽑아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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