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특집2_사용2

김봉석 대중문화 · 영화평론가

  • 前 <씨네21>, <한겨레> 기자
  • 컬처 매거진 <브뤼트>, 만화리뷰웹진 <에이코믹스> 편집장
  • 저서 ≪나의 대중문화표류기≫, ≪시네마 던전-범죄 액션≫,
  • ≪나는 오늘도 하드보일드를 읽는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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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중은 범죄물을 좋아할까
- 범죄물의 매혹 그리고 사회적 배경

서로의 영역을 넘나드는 플랫폼들의 '나란히 걷기'

특집2_사용2

김봉석 대중문화 · 영화평론가

  • 前 <씨네21>, <한겨레> 기자
  • 컬처 매거진 <브뤼트>, 만화리뷰웹진 <에이코믹스> 편집장
  • 저서 ≪나의 대중문화표류기≫, ≪시네마 던전-범죄 액션≫,
  • ≪나는 오늘도 하드보일드를 읽는다≫ 등

TV를 켰더니, 얼마 전 화제였던 스토킹 범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범죄심리학자와 전직 형사이자 프로파일러가 전문적인 의견을 제시한다. 방송인 몇 명이 거든다. <PD수첩>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가 아니다. 교양과 오락을 넘나들며, 사회적 이슈이거나 중요한 범죄에 대해 다루는 <알쓸범잡>,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등의 프로그램이다. 이제는 범죄를 보도가 아닌 오락물 형식으로 다루는 것도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꾸준히 사랑받아온 범죄물 드라마

범죄물이 인기가 없었던 시절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고저 차이는 있다. <수사반장>은 국민 누구나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었다. 1971년에 시작한 <수사반장>은 1984년 소재 고갈, 사회 변화 등을 이유로 한 번 종영했지만 1985년 부활하고, 1989년 10월 12일에 최종회가 방영됐다. 22년 2개월 방영한 <전원일기> 다음으로 장수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수사반장>의 뒤를 이을만한 범죄물 드라마는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로 앤 오더>(1990), (1993) 등 다양한 범죄 드라마가 에미상도 받으며 꾸준히 화제를 모았지만, 한국에서는 범죄 드라마가 비수기였다. 2000년 가 방영하며 한국에서도 범죄 드라마가 슬슬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2008년, <추격자>가 대성공을 거두며 스릴러 영화 붐이 일기 시작했고, 서서히 드라마에서도 범죄물이 하나둘 나오며 화제가 되었다. OCN, tvN, JTBC 등 케이블 채널과 종편이 생기면서 기존 공중파 방송국의 드라마와는 다른 노선을 파고든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2010년 <신의 퀴즈>에 이어 2014년 김상중과 마동석을 앞세운 <나쁜 녀석들>이 저변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이후 범죄 드라마는 질과 양 모두 가파른 상승세였다. 현재와 과거를 잇는 초현실적 설정의 수사물 <시그널>(2016), 특수한 능력을 활용하여 범인을 추적하는 <보이스>(2017), 감정이 없는 검사의 저돌적인 수사를 그린 <비밀의 숲>(2017) 그리고 <터널>(2017), <라이브>(2018), <왓쳐>(2019) 등등이 줄지어 화제였다. 올해도 대중적으로 인기를 모은 <빈센조>와 작품성에 높은 평가를 받은 <괴물> 그리고 <모범택시>, <마우스> 등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범죄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있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범죄 드라마는 활발하게 제작되며 변함없는 인기를 모을 것이다. 범죄물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으며, 지적 추리를 즐기는 대중이 늘어나면서 더욱 확장된다.

왼쪽부터 OCN <신의 퀴즈>, tvN <시그널>, JTBC <괴물>, tvN <마우스> 홍보포스터

미스터리의 힘, 한국의 미스터리

미스터리, 공포, SF,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 중에서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것은 미스터리다. 가상의 세계나 발명품 등이 등장하는 SF나 초자연적인 존재가 나오는 공포의 경우는 대중이 받아들이기 위한 전제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다른, 새로운 세계의 리얼리티에 동의해야만 독자가 이야기 속으로 자연스레 들어갈 수 있다. 뭔가 낯설거나 이해가 불가능하다면 이야기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미스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사건들을 바탕으로, 흥미와 긴장감을 끌어내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로 확장된다. 내가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매스미디어를 통해 들었을 법한 사건과 범죄들을 작품 속에서 만날 수 있다.
또한, 미스터리 특유의 제작진과 시청자가 겨루는 ‘논리 게임’은 객관적인 흥미를 유발한다. 미스터리의 원초적 즐거움은 작가와 독자의 게임이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와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등에서 출발하는 범죄소설은 밀실 살인, 알리바이 증명, 도서 추리 등 치밀하게 얽힌 트릭을 풀어가며 지적 즐거움을 얻는다. 대실 해밋과 레이먼드 챈들러의 하드보일드 소설, 마츠모토 세이초와 미야베 미유키의 사회파 추리에서는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선과 악이란 무엇인가,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등을 고민하게 된다.

한국도 김내성 등 추리소설의 선구자가 있고,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김성종이라는 탁월한 작가 덕분에 추리소설이 꽤 대중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이수광, 노원 등 다양한 작가들이 활동했다. 하지만 점차 폭력과 선정적인 점에만 치중하여 독자들이 이탈하게 되었다. 특히 여성 독자가 멀어진 것은 치명적이었다. 당시 추리소설은 스포츠신문에 주로 연재되었다. 스포츠신문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선정주의로 흘러갔고, 만화와 소설이 첨병에 섰다. 외국 액션 스릴러 소설의 구조를 모방하면서 폭력과 성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한국 미스터리는 현실의 범죄를 통해 구조적인 모순을 파헤치는 범죄소설의 본질과는 점점 멀어져갔다.
한국의 지나친 엄숙주의도 한몫했다. 미스터리는 범죄를 조장하고, SF는 황당무계하다는 등의 편견과 선입관이 있었다. 장르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상업주의에 타협한다는 자괴감으로 위축되는 경향이 있었고 반대로 작품성 있는 장르 소설을 쓰겠다면서 대중성, 오락성을 무시하기도 했다. 성과 폭력에만 치우친 범죄물도 문제지만 재미없는 범죄소설은 더 심각한 문제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의 미스터리 시장은 거의 해외 작가들의 독무대였다.

범죄의 세계에 빠져든 한국 시청자들

2000년대 들어 를 시작으로 <크리미널 마인드>, , <본즈>, <셜록>, <한니발>, <덱스터> 등 범죄 드라마들이 국내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는 형사가 주인공이 아니라 증거물을 모으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법의학 부서가 중심이다. 형사가 탐문을 하고, 때로 폭력을 쓰면서 용의자를 추정하고 범인을 잡는 형사물과는 질감이 달랐다. 미국에서 법의학적 수사가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996년의 O.J. 심슨 사건 때문이다. 아내를 죽이고 도주한 혐의로 법정에 선 심슨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하여 법정에서 지문과 DNA, 발자국, 모발, 섬유, 혈청학 등의 증거가 제시되었다. 심슨이 무죄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미국의 시청자들은 TV를 통해 재판 과정을 보며 과학 수사가 얼마나 놀라운 세계인지를 알게 되었다.
한국의 시청자들 역시 의 법의학 수사, <크리미널 마인드>의 프로파일링에 혹했다. 그리고 범죄의 세계에 점차 빠져들기 시작했다. 보통 중진국, OECD 국가 정도가 되면 대중문화가 빠르게 발전한다고 한다. 그중 선두 주자는 범죄물이다. 과거에는 사회적 약자가 신분 상승이나 거대한 폭력에 맞서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소재가 많았다면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범죄물에는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범, 쾌락 살인범 등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과거에는 범죄가 일어나면 주로 동기를 돈과 이성(질투와 복수)에서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은 그것만으로 불가능하다. 전혀 연고가 없는 무차별 범죄가 있는가 하면, 온라인 공간을 통해 기존의 범죄와 전혀 다른 폭력과 착취가 벌어지기도 한다. 범죄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가장 저열하면서도 치열하게 드러낸다. 범죄의 양상을 알면 우리 사회의 욕망이 무엇이고, 어떤 지점이 급격하게 허물어져 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개인과 사회의 풍경을 담아내는 창

스릴러 영화와 범죄 드라마가 2010년대 이후 주류 장르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대중의 취향이 변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것이라고 무조건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독자들은 , <셜록>, <한니발>, <덱스터> 등 소재와 주제가 다양한 미국 범죄 드라마와 제이슨 본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등 탁월한 액션을 보여주는 스릴러 영화에 익숙해져 있다. 웬만한 것을 봐도 눈이 최상으로 높아져 있는 상태이기에 쉽게 넘어오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보아도, 지금 한국의 범죄 드라마는 확실히 수작이 많이 제작되고 있다. <시그널>을 기점으로 범죄의 양상만이 아니라 형사를 비롯한 범인을 쫓는 사람들, 피해자와 주변 사람들, 다양한 집단을 심도 있게 그리는 작품들이 많아졌다. 소재를 넘어, 범죄물 자체가 다양한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형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장르물은 단지 장르의 요소와 공식을 끌어다 배치만 잘한다고 성립되지 않는다. 판타지가 단지 기이한 시공간을 만들어내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 것처럼 범죄와 스릴러물도 살육과 액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장르적 기교 이전에 인간과 사회를 보는 자신만의 시선과 논리다. 범죄물을 포함한 장르물을 만드는 크리에이터에게는 인간과 세계를 보는 고유한 틀이 존재해야 한다. 대중은 범죄물을 통해서 즉 범죄라는 창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보고 있다. 현실의 범죄와 사회문제에서 출발하여, 당대의 개인과 사회의 전체적인 풍경을 정확하고 예리하게 그려내는 장르가 범죄물이다. 지금 한국 대중이 범죄물에 혹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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