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지금 이 작품

모든 순간이 진심이었다

KBS-1R <정관용의 지금, 이 사람> 김자영 작가

글·사진 김선미 편집자

지금 이 작품

모든 순간이 진심이었다

KBS-1R <정관용의 지금, 이 사람>
김자영 작가

글·사진 김선미 편집자

‘자영업자’. 김자영 작가의 부캐명이다. 자영‘UP’자의 의미도, 자영‘업자’(어부바)의 의미도 담고 있지만 어느 쪽이건 간에 김자영 작가를 잠깐이라도 만나본 사람이라면 듣고 손뼉을 탁, 칠만큼 찰떡인 작명이 아닐 수 없다.
“무대 뒤 스태프,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구성작가에서 이제 무대에 나서고 싶어요. 연극으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오른 방송작가 출신 1호 배우로, 이번 생에 버라이어티 예능 꼭 출연해서 입을 ‘터는’ 1호 방송작가도 되고 싶네요. 드라마도 써서 출연하고 싶고요. 제가 이영애 닮은꼴 작가거든요. 같이 출연해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꼭 연락 주세요, PD님들(웃음).”
타고난 순발력과 관찰력이 있다고 했다. 겁쟁이지만 호기심이 많아 취재현장에서 용기 있게 맞서는 편이고, 눈물도 많지만 승부욕도 강하며,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문제라고 했다. 시원시원한 화법에, 폭염도 잠시 잊은 채 덩달아 기운이 솟는 어느 여름날의 하루였다.

1994년 12월이었어요. 지인의 부탁으로 방송국에 심부름 갔다가 방송작가 해볼 생각 없냐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받았죠. 그렇게 갑자기 일이 진행됐고, 일 시작을 앞두고 있을 때였어요. KBS 신관을 지나가는데 뉴스팀이 저를 부르더니 돌봄이 필요한 분들한테 봉사활동 하는 촬영을 하는데 참여해줄 수 있냐고 하는 거예요. 가서 봉사활동을 했고, 그 영상이 연말연시 내내 쓰이더라고요. 그러는 중에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왔어요. 영상 봤는데 그때 경험담 좀 들려줄 수 있겠냐고. 갔더니 제가 곧 일하러 들어갈 그 프로그램 팀이더라고요(웃음). 이게 다 20여 일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에요.

이렇다 할 오프닝 질문을 할 것도 없이 술술술 흘러나오는 이야기들. 어쩐지 시작부터 남다르다. 어린이 프로그램 KBS <지금은 과학시대>를 시작으로 다양한 시사교양·토크 프로그램을 제작한 김자영 작가는 2001년부터 12년간 세 명의 진행자와 함께 <경제포커스>를 맡게 되고, 라디오뿐만 아니라 TV에서도 KBS <실속 TV 주부경제학>, <오늘의 경제>, 연합인포맥스 TV <이슈토크 쩐>, <시사기획 창> 등 여러 경제 프로그램을 집필했다.

제가 <경제포커스>를 하던 중에 MBA 과정을 공부했어요. 아마 방송작가 중에 제가 최초로 했던 것 같아요. 경제 프로그램 때문에 하게 된 거예요. 당시에 만났던 출연자분들, 연사분들 중에 “작가가 MBA를 안 해?”, “경제 프로그램 작가면 MBA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경제학과 안 나왔어?” 이렇게 물어보는 분들이 꽤 많았거든요. 아침방송 하면서 논문 쓰고 과제도 하고… 2년 반 동안 정말 쌍코피 흘려가면서 했어요.

그때 경제 프로그램 작가로서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내가 안 해봤는데 남들한테 하라고 할 수 없다는 거였어요. 투자상품이 정-말 많은데, 정말 이 연사들의 말이 맞는지 아닌지 알려면 내가 소액이라도 투자를 해보고 망하든지 흥하든지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죠. 실제로 그때 정말 쫄딱 망하기도 많이 벌기도 했어요. 진짜 세상의 모든 상품을 다 해봤어요. 금 투자, 환율 투자, 주식은 기본이죠. 그때 카드채 같은 것도 있었고요. 펀드도 정말 종류 많은데 다 해봤어요. 제가 경제 프로그램을 하면서 원고 제일 잘 썼을 때가 언제였을까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을 때. 하루에 몇천만 원씩 마이너스가 납니다. 새벽에 딱 눈 뜨자마자 뉴욕 증시부터 봐요. 올해의 장세, 오늘의 주식투자 방향, 이런 게 막 눈에 들어와요. 궁금한 게 엄청 많아지겠죠? 공부하게 돼요. 질문 하나도 최고로 나오는 거예요, 사람들 귀에 쏙쏙 들어가고. 나쁜 기억은 있어도 나쁜 경험은 없다, 제 철학이에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일도 돈을 좇아가면 백 퍼센트 잃더라고요. 막 좇으면서 하면 더 도망가는 것 같고, 열심히 재밌게 하면 할수록 다른 기회들이 더 오기도 하고. 일과 돈은 그런 것 같아요. 저는 돈에 관심이 많지만, 그렇다고 일을 할 때 페이에 따라 움직이진 않아요. 번 돈을 어떻게 굴릴지에 관심이 많은 거죠. 일은 신의와 의리로 하는 의리파랍니다(웃음).

경제 프로그램을 잘 해내기 위한 MBA라니. 당시 반포 24평 아파트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 날아가 버리는 위험에도 온몸으로 부딪쳐 경험해보고야 만다니. 이토록 무모하게, 모든 일에 진심인 작가가 또 있을까.
그렇게 돈과 제테크에 열심이었던 김자영 작가.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찾아온다고 했던가. 2014년, 그녀 인생에도 흑역사가 찾아왔다. <경제포커스>가 폐지되고, 일도 다 끊어지고, 사람한테 배신도 당했다. 많이 아프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이 깨닫고 일에 대해 새롭게 눈 뜨게 됐고, 이후 책, 인물 인터뷰, 대담, 다큐멘터리 등으로 프로그램 패턴이 바뀌었다.

2015년부터 KBS 라디오 <명사들의 책 읽기>, 라디오 드라마 <내 인생의 책>에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작가의 서재>까지 책 프로그램만 어느새 7년. 주 1회 진행하는 <작가의 서재>는 한 권의 책을 드라마로 각색하는 프로그램으로, 해당 책의 저자가 직접 오프닝과 클로징 해설을 하는 차별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KBS 라디오 <정관용의 지금, 이 사람>. 다양한 분야의 리더에서부터 이 시대의 이슈가 되는 인물, 숨어있는 인물을 발굴해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으로, 평일 오후 3시 30분이면 이 시대의 대담자 정관용 선생 특유의 진행이 약 30분간 청취자의 귀를 사로잡는다.

저희 프로그램은 남들이 쉽게 접하지 않는 분야에서, 저렇게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네, 잘 몰랐는데 이런 면이 있는 사람이었네, 이런 걸 알려주려고 노력해요. 정관용 선생님은 토크 계의 일타 강사이자 토크를 마무리하는 ‘신박한 정리자’세요(웃음). 필요할 때 잘 끊으시고, 모르는 것도 잘 물어보시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유재석 씨와의 자리를 꼭 한번 마련해보고 싶어요. 뛰어난 두 인터뷰어의 인터뷰 배틀. 누가 누가 인터뷰를 잘 진행하나. 원고 없이 인터뷰 진행도 해보고.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8월에 약간 포맷을 바꿔서 독특하게 진행하는데요. ‘한국인을 읽는다’라고 해서 돈, 운명, 메타버스 같이 각각의 주제에 따른 전문가분들을 모시고 집필하신 책이나 해외 서적들을 기반으로 해서 깊이 토크 해보는 포맷이에요.

<정관용의 지금, 이 순간> 진행자 정관용 선생과 함께

인터뷰 쉬운 줄 아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해본 프로그램 중에 제일 힘든 게 인터뷰 프로그램이에요. 지금 이 프로그램 한 지는 3년 차가 됐는데, 이 전에 <박인규의 집중 인터뷰>를 1년 반 정도 했거든요. 당시 초반에 제 원고가 좀 부족하단 말을 들었어요. 심도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얘기였죠. 그때 되게 속상했어요. 그 이후로 제가 어떻게 했냐면, 다~ 사전 인터뷰를 합니다. 그랬더니 원고가 달라지더라고요. 지금 프로그램 처음 맡게 됐을 때도 사전 인터뷰를 거의 다 했고 훨씬 나아졌죠. “작가님 질문이 너무 좋아서…” 이런 얘기를 출연자한테 들으면 너무 기분이 좋아요. 그게 보람인 것 같아요.

이렇게 욕심껏 달린 덕에, 한때 손만 댔다 하면 상을 받는다며 프라이즈 메이커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KBS WORLD 라디오(다큐) 광복 70주년 특별기획 2부작 <나는 위안부가 아닙니다>로 KBS 우수프로그램 최우수작, 2016 뉴욕라디오페스티벌 동상, 2016 프랑스 URTI 라디오 다큐멘터리 은상을 수상했고, KBS 다큐 <소리로 쓴 태아육아보고서> 3부작은 한국방송통신위원회의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으로 선정, 한국프로듀서상 실험정신상을 받았다. YTN 라디오 추석특집 다큐멘터리 <안녕하세요 북에서 온 이웃들> 6부작 역시 <이달의 좋은프로그램>과 2012년 제4회 방송대상 우수상을 수상, 올해에는 KBS라디오 특집 다큐 <세월호 아카이브로 다시 듣는 ‘그 날’>이 254회 이달의 PD상도 받았다.

<작가의 서재>, <정관용의 지금, 이 사람> 그리고 시사토크 <인사이드 경인>까지. 충분히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그녀는 지난해 서울시극단의 시민배우 오디션에 뽑혀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오른, MBA에 이어 또 ‘최초’의 연극배우 1호 방송작가다. 그가 연극무대에 오르게 된 이유는 바로, 방송작가로서의 존재감에 대해 찾아온 회의 때문이었다.

작가 일이 참 좋아요. 보람도 있고 뿌듯하고. 근데 정말 확실한 거는, 세상천지에 고맙다는 말 많이 하는 게 작간데, 그만큼 ‘미안합니다’ 소리 많이 하는 것도 작가인 거예요.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때가 너무 많은 거죠. 이제 오래 하다 보니, 제 잘못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자꾸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게 속상한 거예요. 힘들었어요. 나는 뭐지? 작가로 이름이 제대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상을 타도 PD가 타고. 나는 언제까지 그림자일까, 김자영이란 이름은 어디에 있는 걸까, 나는 과연 방송국에서 존재감이 있는 걸까…. 이런 회의가 막 들기 시작했을 때, 프로그램에 오셨던 배우분들에게 “선생님들은 좋으시겠어요, 이름 걸고 일하시니까”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거든요. 그랬더니 저보고 배우 해보라고 막 허파에 바람을 넣으시더라고요(웃음). 그 후에 아이템 찾다가 배우 모집을 알게 됐고 지원했는데 덜컥 된 거죠.

존재감… 그렇게 방송작가의 존재감 없음이 너무 싫어서, 저는 저희 프로그램 오시는 출연자분들에게 존재감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내가 오늘 이 얘기 하러 왔구나, 오늘 여기 오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실 수 있게. 그게 진행자 역할이기도 하지만 그분이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우리 작가의 역할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정말 잘하셨어요’ 하는 피드백과 함께 인사하고 돌아가실 때까지도요. 이 한 번의 방송 경험이 그분한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정관용 선생님이랑 사진도 찍어서 보내드리는데,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KBS에서 방송했는데 너무 좋았다고, 김자영 작가랑 일했는데 너무 괜찮았어, 방송작가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지 몰랐어, 라고 얘기할 수 있겠구나…. 우리 입으로 얘기할 수 없잖아요(웃음). 물론 이렇게 신경 쓰는 것들이 많아지면 힘들죠. 하지만 그만큼, 우리의 존재도 좀 더 부각되지 않을까요.
error: Content is protected !!
방송작가10월호_로고

방송작가 구독신청 / 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