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내일은 방송작가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내일은 방송작가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내일은방송작가_사용

박훈영

  • 단막극 <개고생>, <강석봉 베이커리>
  • 희곡 <가카가 오신다>, <나는 채플린이 아니다>, <연장전에 들어갑니다> 외 다수
  • 제32회 부산연극제 <가카가 오신다> 작품상, 희곡상, 연출상
  • 제35회 부산연극제 <나는 채플린이 아니다> 작품상, 연출상
  • 제32회 전국연극제 <가카가 오신다> 은상
내일은방송작가_사용

박훈영

  • 단막극 <개고생>, <강석봉 베이커리>
  • 희곡 <가카가 오신다>, <나는 채플린이 아니다>,
    <연장전에 들어갑니다> 외 다수
  • 제32회 부산연극제 <가카가 오신다> 작품상, 희곡상, 연출상
  • 제35회 부산연극제 <나는 채플린이 아니다> 작품상, 연출상
  • 제32회 전국연극제 <가카가 오신다> 은상

나는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목적지로 가는 단순하고 안전한 길을 알고 있지만, 그 길을 놔두고 핸들을 확 돌렸습니다. 이젠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나이 마흔 하나.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며 집안의 가장 노릇을 든든히 해내야 할 나이인데. 나는 어쩌자고 다시 꿈을 꾸는 걸까요? 주변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직장에 다니고 일정한 성과를 내고 진급을 하고 보너스를 받고 필요에 의해 연차를 쓰고 때가 되면 휴가를 떠나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데. 나는 왜 그것이 안 되는 인간일까요?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틈틈이 알바천국을 검색하는 나는 왜 겁 없이 드라마작가가 되겠다고 나선 걸까요? 드라마작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길인지 모를 나이도 아닌데, 철부지 아이처럼 꿈을 꿉니다.

부산 토박이인 나는 스무 살 때부터 20년간 부산에서 연극을 했습니다. 20대 대부분은 무대에 올라 연기를 했고, 30대 전반은 희곡을 쓰고 공연을 만드는 데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마흔을 목전에 둔 겨울날, 나는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적으로 무척 빈곤한 상태였고 연극을 하는데 만족감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삶의 권태가 나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우연히 TV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봤습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큰 감동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극 중 인물에 공감하며 자주 눈시울을 붉혔고, 사소한 장면 하나에도 깔깔대고. 그때부터 난 다시 꿈꾸기 시작한 것입니다. 서울에 가서 드라마 공부를 하기로. 드라마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내와 깊고 긴 대화를 했고, 몇 달을 고민했습니다. 아이들 유치원 문제도 걸려있고… 10년 가까이 몸담았던 극단생활도 정리해야 했고… 생각보다 정리하고 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마침내 작년 2월, 모든 걸 털고 경기도 김포로 거주지를 옮겼습니다. 코로나19가 터진 시기가 맞물려 외부상황이 자주 통제되었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내 꿈을 펼칠 수 있는 방송사가 가까이 있단 생각만으로도.

올라와서 한동안은 자격증을 따러 다녔습니다. 대형면허, 지게차, 굴삭기(필기), 중식(필기) 자격증을 따면 금방 취직이 되어 안정을 찾고 마음껏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경력이 없는 나는 그 방면으로 취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구공장에서 나무를 다듬었고, 중국집에서 배달통을 들고 뛰었고, 지금은 배달대행업체에서 하루 열두 시간씩 오토바이를 타며 포장 음식을 나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나의 스승입니다. 드라마를 사랑하고 드라마를 꿰뚫고 드라마를 순수하게 즐기는 당신. 나의 아내. 언뜻 무모해 보이는 남편의 꿈을 적극 지지하고 독박 육아를 묵묵히 책임지는. 실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육아에 엄청난 피로감과 경력단절의 두려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삶이 고되단 이유로 당신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당신을 생각하면 한순간도 글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습니다. 시간을 쪼개 한 글자라도 더 보고 좋은 작품 찾아 필사하고… 경제적 여유는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지만, 예전보다 마음의 여유는 생긴 것 같습니다. 당신을 위해 당신을 위로하는 당신을 웃게 만드는 드라마를 쓰고 싶습니다.

작년 가을, 막연히 꿈꾸던 한국방송작가교육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현재는 기초반을 지나 연수반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공부라는 것이 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깊은 우물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희미했던 꿈의 실체가 조금씩 가시화되는 것 같아 희망이 생깁니다. 일이 힘들 때마다 나중에 드라마를 쓰는데 자산이 될 자료들을 내 몸 구석구석에 새기고 있단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버팁니다. 그럼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고 다음에 쓸 내 인물이 궁금해집니다.

경로를 이탈해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급커브 구간을 지나고 사고 다발 지점도 무사통과해 끝까지 과속에 주의해 묵묵히 버티고 달리다 보면 언젠가 최종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겠죠. 그런 희망을 가슴에 품고 오늘도 나는 드라마작가라는 꿈을 향해 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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