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특집-이광영PD

이광영 PD

  • 2008년 SBS 드라마국 입사
  • SBS 단막극 <퍽> 연출
  • SBS <딴따라>, <초인가족> 공동연출
  • SBS <이판사판>, <초면에 사랑합니다> 연출, <훈남정음> B팀 연출
  • 카카오TV <며느라기>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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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시대로의 흐름 : 미디어 관계자의 시시각각
(視視各各)

서로의 영역을 넘나드는 플랫폼들의 '나란히 걷기'

특집-이광영PD

이광영 PD

  • 2008년 SBS 드라마국 입사
  • SBS 단막극 <퍽> 연출
  • SBS <딴따라>, <초인가족> 공동연출
  • SBS <이판사판>, <초면에 사랑합니다> 연출, <훈남정음> B팀 연출
  • 카카오TV <며느라기> 연출
새로운 형식의 매력에 끌리다
그러니까 나는 말하자면, 소위 ‘꼰대’에 가까운 편이다. 회사에서는 꽤 젊은 층에 속하는 연출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색감의 웹툰보다는 손가락에 침을 발라가며 넘기며 보는 흑백 만화책이 좋고, 방대한 영상을 알고리즘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유튜브보다는 양손에 맥주와 리모컨을 쥐고 편하게 누워 보는 TV가 편하다. 그런 내가 ‘SBS 모비딕’으로부터 그 이름도 생소했던 ‘카카오TV’의 작품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흔들렸던 건-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니고, 단지 ‘어려웠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렵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 보기가 어렵다. 둘, 만들기가 어렵다. 앞서 나에 대해 나름 아날로그한 인간이라고 포장을 해보았지만, 사실 나도 동년배의 다른 이들처럼 호흡이 빠르고 길이가 짧은 수많은 디지털 미디어에 늘 노출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70분에서 길게는 120분씩 하는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던 것 같다. 조금만 지루해져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거나, 휴대폰을 들어 만지작거린다. 내가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인데도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게 예전만큼 쉽지가 않아졌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만드는 것은 더 힘이 들었다. 빠른 호흡과 화려한 영상으로 꽉꽉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강해졌다. 드라마의 서사보다 시청자들이 지루해하지는 않을까를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게 만들어도 어떤 날은 러닝타임이 넘쳤고, 또 어떤 날은 부족했다. 당시에는 70분에 대한 기준이 엄격했기 때문에 매주 시간에 맞춰 편집을 해내는 일이 내게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카카오TV의 작품을 제안받은 건, 내가 70분*16부작 드라마를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20분 물 12개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뭔가 ‘쉬울 것’ 같았다. 게다가 지상파처럼 편성 시간이 타이트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호흡으로 드라마를 만들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가 컸다. 그렇다면 조금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물론 오산이었다). 그렇게 <며느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카카오TV <며느라기> 포스터, 필자 제공
<며느라기>를 만나다
입사 이래 지상파 환경에서만 근무해 온 나로서는 새로운 형식의 포맷을 시도해 본다는 것이 도전과도 같았다.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망설이지 않고 감히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건, 원작 <며느라기>가 있었던 덕이다. 물론 나도 원작의 열렬한 팬이지만, 내가 여기서 <며느라기>에 관해 말하는 건 단지 그 만화가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만은 아니다. 연출을 해야 하는 내게 이 작품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타깃이 명확하다는 점’이었다.
내가 카카오TV의 송출(?) 방식에 대해 전달받은 것은 나중이었는데- 일주일만 무료로 오픈하고 그 뒤로는 유료로 전환해 결제를 해야 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결제라니. 지상파 드라마만 해왔던 나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드라마를 돈 주고 봐야 하는 시대가 왔구나. 심지어 내 드라마를 누군가 돈을 주고 봐야 하는구나.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볼 수 있는 ‘그 어떤 콘텐츠’가 아니라 누군가가 찾아와서 결제를 해서 봐야 하는 ‘딱 그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그 점이 가장 고민스러웠다.
그런 내게 원작 <며느라기>는 그 자체로 힘이 있다고 느껴졌다. 기존의 팬들이 확실하며 타깃층도 확실하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제작사로부터 ‘20~3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해달라는 주문도 전해 받았다. 가끔 지상파에서는 타깃이 너무 명확한, 소위 ‘마니아 드라마’가 되는 것에 대해 주의를 요하는 것과 또 다른 풍경이었다.
드라마의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다
그러나 동시에 카카오TV는 기존 드라마의 틀에서 크게 어긋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나는 이를 드라마의 보편성으로 이해했는데, 기존의 익숙한 형태가 너무 파괴된 나머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어색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줄 수 있는 형식이나 내용은 되도록 지양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애초에 10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모바일 콘텐츠의 영역에서 20~3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모바일 드라마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이 영역도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카카오TV <며느라기> 촬영 현장, 필자 제공
사실 서로의 영역으로의 확장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상파 드라마를 각종 OTT에서 시청할 수 있게 되었고, 모바일 플랫폼의 콘텐츠들 역시 상호 교류를 통해 나란히 걷기를 시도하는 중이다. 그리하여 나는 서사적으로는 20~30대 여성을 확실한 타깃으로 하면서도 얼마든지 다른 타깃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려고 애썼고, 형식적으로는 매회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지는 보편적인 드라마 형식을 택했다. 또한 드라마가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인 ‘공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했다(그렇기에 결코 ‘쉽지’는 않았다. 결코). 그리고 그 포인트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극대화되었다.
‘쉽지’ 않고 ‘다른’ 이야기
넷플릭스의 성공으로 많은 드라마 관계자들은 OTT를 통해 큰 제작비를 들여 이른바 ‘대작’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대 기업들의 거대 자본도 투자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플랫폼 간의 경계가 옅어지는 이러한 환경의 변화가 비단 대작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를 보다 새로운 형태와 포맷 하에서 제작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며느라기> 후반 작업을 하는 동안 우리끼리 가끔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이 드라마는 20분짜리라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며느라기>는 서사와 극성이 아주 강하지도 않고, 시종일관 잔잔한 톤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기존의 형태와 포맷을 유지했다면 굉장히 지루한 드라마가 되었을 수도 있고, 아마 내가 그토록 원했던 ‘원작의 톤’을 유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20분짜리라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는 말이다.
앞서 긴 호흡의 드라마가 점점 보기 힘들어진다는 고백을 했지만, 사실 아직도 그 시간 동안 눈도 뗄 수 없이 지루하지 않은 작품들도 물론 있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긴 호흡에서 의미를 가지는 작품이 분명히 있고, 그렇지 않은 작품도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출자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적절한 포맷과 형태로 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는 건 어떻게 보면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나는 한 손에 맥주, 한 손에 리모컨을 쥐고 소파에 누워 모바일 콘텐츠를 시청한다. 각 플랫폼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확장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나란히 걷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나도 좀 더 다양한 포맷을 가진 색다른 이야기들을 들고 ‘쉬운’ 것이 아닌 조금은 ‘다른’ 작품을 만드는 연출이 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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