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여기 이 작가

감동과 기적을 건지다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장희정 작가

김윤양 책임 편집위원  사진 김용철  장소 상암동 작업실

여기 이 작가

감동과 기적을 건지다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장희정 작가

김윤양 책임 편집위원
사진 김용철
장소 상암동 작업실

“뼛속까지 시린 9월의 압록강을 건너며 등에 업혀 있는 네 살배기에게 말했다. ‘네가 울면 나쁜 아저씨가 엄마와 너를 잡아가 다시는 못 보게 할 수도 있으니 절대 울면 안 된다, 아가야.’ 차가운 물 속에서 네 살배기는 엄마의 어깨를 으스러질 정도로 꽉 쥐며 울음을 참았다.”
생의 전부를 건 탈북 스토리는 이보다 더할 수 있을까 싶게 절박하다. 매 순간 함께 국경을 넘듯 집중하다 보면 진심 어린 응원은 물론이요, 가슴 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친다. 시청자가 이런데 매주 시청자보다 먼저 탈북자 앞에 앉아 그들의 스토리에 귀 기울이는 작가의 마음은 어떨까.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장희정 작가를 만났다.
탈북 스토리 들을 때요? 저 매번 울어요. 출연자인 신은하 씨는 가족과 함께 탈북했어요. 부모가 없을 때 중국 산속에서 동생이 공안에게 잡혀가는 걸 보고 자기도 잡아가라며 함께 수용소에 가서 힘든 생활을 견뎠죠.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4인 가족이 베트남 메콩강을 건너는데 배가 수초에 걸린 거예요. 브로커가 수초를 끊으라는 말에 아버지가 수초를 끊으러 강에 들어갔대요, 사방이 악어떼인데. 가족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물에 들어간 거죠. 그런 과정을 신은하 씨가 잘 이야기해줬고 시청자들이 그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 내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돌아보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많이 받는 오해가 ‘작가들이 다 지어내지? 시키지?’하는데 그걸 할 수 있다면 저희 작가들이 천재죠. 절대 지어낸 이야기 아니고요. 보통 한 분당 8시간 정도 인터뷰를 하거든요. 다 듣고 나면 오히려 중화시킬 때가 많아요. 이분들이 한국에서 누구의 엄마, 아내로 살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성추행당하고 인신매매 당하고 이렇게 이미지가 굳어지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많이 걸렀고요. 30분 탈북 스토리 하고 나면 50분은 북한 이야기도 하고 춤도 추고 그래요.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하 이만갑)가 가진 비공식 타이틀이 몇 있다. 종편 개국과 함께 시작해 종편 최장수프로그램이며 또한 CNN, BBC, 네덜란드 이런 해외 보도 채널에서 가장 취재를 많이 온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10년 전 처음 기획할 때만 해도 주인공은 탈북자가 아니라 실향민이었다. 고향 갈 날을 기다리며 남이 아니라 ‘북으로 창을 낸’ 실향민들을 인터뷰하다가 ‘현재진행형 실향민’인 탈북자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상상 이상의 탈북 스토리가 소위 터졌다.
기존의 탈북 프로라면 뉴스에서 모자이크하고 인터뷰한 게 전부였는데 직접 만나보니 너무 예쁘고, 말도 잘하더라고요. ‘북한에도 성형수술 해요. 그런데 마취를 안 해요’, ‘저희도 연애를 하는데 모텔은 없고 가정집에 가요.’ 뉴스나 언론에서 듣지 못했던 진짜 사는 이야기가 새롭더라고요. 그때부터 탈북미녀들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어요. 물론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어요. 한 어머님이 딸과 탈북하면서 혹시 헤어지거든 딸 생일인 10월 8일 북경역에서 만나자고 했대요. 힘들게 목공소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아 일 년에 하루 그날이 되면 북경역을 지켰는데 수년이 지나도 딸을 만나지 못했고, 한국에서도 딸을 찾지 못했어요. 딸 생일날이 되면 어머님을 대신해 한국 유학생들이 북경역을 지켜줬고, 저희 작가들이 매년 어머님과 생일상을 차려 함께 먹었어요. 그런데 아직도 딸을 못 찾았어요. 이 말을 말하면서도 눈물이 나는데 저는 아직도 녹화할 때마다 그렇게 눈물이 나요. 제가 너무 우니까 녹화 끝나면 탈북자들이 ‘작가님, 혹시 부모님이 안 계세요?’라고 물어요. 안 계시긴요, 멀쩡하게 경주에 다 계시죠. 제가 예능 작가로서 어디 가서 이렇게 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어요? 그분들이 이 프로그램으로 ‘내 인생이 바뀌었다, 내 가족을 찾았다, 정말 고마운 프로그램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데 오히려 이 프로그램하면서 제가 컸죠. 그래서 정말 감사합니다.
‘모르긴 해도 국정원 관계자들보다 탈북자를 더 많이 봤을 것’이라는 장희정 작가. <이만갑> 10년에 김정은 위원장도 보고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봤다. 출연자를 며느리로 맞고 싶다는 시청자들 바람에 따라 중매도 많이 섰다.
2019년 하노이 정상 회담 때, 현장에 신은하 씨랑 같이 갔었어요. 김정은 위원장이 탄 차가 지나가는데 신은하 씨가 ‘고향에 가고 싶어요’라고 하는데 울컥하더라고요. 이분들은 배가 고파서 살기 위해 나왔지, 내 고향이 싫어서 나온 게 아니잖아요. 철 되면 복숭아꽃 피고 풀벌레 우는 고향에 너무너무 가고 싶대요. 장마당 세대라는 말을 <이만갑>에서 처음 썼는데 고난의 행군세대가 우리 IMF 세대라면 장마당 세대는 우리의 MZ 세대거든요. 2000년 이전에는 배가 고파서 왔다면, 2000년 이후에는 ‘소녀시대’를 보고 캐리어 끌고 힐 신고 왔죠. 세대가 달라졌어요. 이런 친구들이 남북한을 다 겪고 미국에 가서 유엔대사가 되면 지구평화를 위해 얼마나 일을 잘하겠어요? 이 청년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게 저에게 큰 보람이고요, 또 보람이라면 저희 팀에 손편지가 그렇게 많이 와요. 우리 아들 좀 북한 여성들 소개해 달라고요. 공무원, 교사, 의사, 변호사… 직업도 번듯하고, 혼기를 놓쳤을 뿐 아파트도 있다고 해요. 하하. 수많은 시청자들이 탈북자들을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다가 이제 ‘며느리 삼고 싶다’로 바뀐 거잖아요. 그건 정말 말로 다 못할 보람이죠.
경북 경주 출신인 장희정 작가는 10대 시절 이미 방송작가를 꿈꿨다. 대학 1학년. 스무 살에 이미 방송아카데미에 지원했을 정도. 공부 열심히 하고 졸업한 후 다시 지원하라는 심사위원의 말에 누구시냐고 되물었던 스무 살의 장희정에게 김수현 작가는 다시 오면 꼭 뽑아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문예창작, 광고홍보, 사회복지, 문화재학까지 두루 거치고 작가가 된 게 2001년. 꿈에 그리던 작가가 되었는데도 작가를 계속해야 할까 고민하던 날들도 있었다.
남편 하나 믿고 한국에 시집온 다문화 며느리들에게 이른바 ‘사돈간 상견례’를 시켜주는 프로그램 <사돈 처음 뵙겠습니다>를 할 때였어요. 베트남에서도 산골 오지였어요. 비행기 타고 또 배 타고 그러고도 한참 더 들어가서 마을에 도착했는데 노트북 하나 꽂았더니 온 마을이 정전되더라고요. 날은 또 어찌나 더운지 온몸이 다 땀으로 젖을 정도였어요. 마침 한국은 추석 명절 때였어요. 남의 가족 행복하게 해주자고 나는 부모님도 못 보고 이럴 일인가. 너무 몸이 힘드니까 서글퍼지더라고요. 촬영이 끝나고 신부의 오빠가 저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시골길을 되돌아 나가야 하는데 갈 길이 너무 까마득하더라고요. 말도 안 통하는데 신부 오빠가 저를 툭툭 치더니 하늘을 보라는 거에요. 봤더니 은하수가… 별이… 쏟아지는 거예요. 그 사람 눈에도 제가 되게 지쳐 있었던 거죠. 눈물이 나더라고요. 짧은 영어로 ‘너 때문에 해피해. 너도 행복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했어요. 오빠가 우리로 치면 ‘아리랑’ 같은 노래를 불러줬어요. 베트남 촬영 후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친정 오빠도 함께 모셔왔어요. 그 오빠가 한국에 머물다 돌아가면서 저에게 편지를 줬어요. 한국말로 ‘당신은 우리 가족에게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을 주셨습니다’라고 쓰여있더라고요. 박경리 선생님을 가장 존경하는데, 선생님께 누가 ‘작가는 어떤 사람이 합니까’ 했더니 선생님이 ‘사람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작가를 한다’라고 하셨대요. 돌아가면 작가 그만두고 제주도 가서 술이나 먹고 살려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깨달았죠. 계속해야겠구나.

작가로 살면서 두 번째 터닝포인트가 된 순간은 이탈리아 라티나에 갔을 때였다. 김종민, 이상민 씨와 함께 파일럿 프로그램 <하룻밤만 재워줘> 촬영차 방문한 낯선 도시. 첫날을 허탕 치고 둘째 날. 한낮의 뜨거운 햇살을 피한 시에스타 시간에 라티나에 당도한 제작진은 텅 빈 도시에서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스무 살 여대생이 나타났다.

우리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는데 “우리 집에 가서 잘래요?” 하는 거예요. 알고 보니 이 여대생은 빅뱅 팬이었어요. 이탈리아 외진 도시에 한국 연예인이 왔다니까 소문 듣고 나온 거죠. 그 학생 집에 갔더니 휠체어 탄 쌍둥이 언니가 있었어요. 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재워주긴 했지만 아버지는 마음을 열지 않았어요. 과연 우리 기획 의도대로 하룻밤 만에 만리장성을 쌓을 수 있을까 싶었죠. 종민 씨, 상민 씨만 두고 나왔다가 다음날 다시 갔더니 그새 분위기가 달라져 있더라고요. 음향기사였던 아버지가 헤어진다고 종민 씨의 코요테 노래를 틀어줬고, 마지막에 빅뱅의 ‘If you’를 틀어줬어요. 그런데 휠체어 탄 언니가 한국 가사를 정확히 다 따라 하는 거에요. 종민 씨가 ‘저 노래를 몇만 번 들었으면 저걸 따라하냐’고. 그 노래를 들으며 4분 30초 동안 우리 모두가 울었어요. 너무 감동인 거예요. 사실 다 듣기는 너무 긴 시간인데 제가 우겨서 방송에 전곡을 다 내보냈어요. 방송 시작하고 실시간 댓글에 ‘거지냐. 해외까지 가서 남의 집에 가서 왜 자냐’ 난리였는데, 그 노래 듣고 KBS 예능 5년 만에 파일럿 시청률이 10%를 찍었어요. 나중에 그 가족을 한국에 초대했는데 섭외 안 되기로 유명한 지드래곤이 그 영상을 보고 감동해서 프라이빗룸까지 가서 그 이탈리아 자매에게 ‘If you’ 데모 테이프를 건네줬어요. 그때 ‘인생에 기적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나 간절히 원하면 기적이 일어나는구나. 늘 방송은 연출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런 리얼리티가 너무 재미있고 기적이라는 걸 알게 됐죠.
감동과 기적을 모두 건졌으니 방송작가로 20년. 참 괜찮았다 싶다. 까탈스럽던 막내딸이 느닷없이 서울로 가겠다고 했을 때 식당을 하던 어머님은 앞치마 주머니에서 14만 원을 꺼내주셨단다. 어머님이 가진 돈 전부였을 텐데 큰돈 쥐어주지 못했다며 지금도 미안해하신다고. 그러나 마르지 않는 어머님의 사랑은 딸에게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르쳐주었다.
지난 20년간 정말 많은 일을 했어요. 늘 두세 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했죠. 돈도 많이 벌었어요. 다른 분들 같으면 건물을 세웠으려나. 저는 많이 먹었습니다!(웃음) 후배들 맛있는 거 사주고, 저도 많이 먹고요! 후배들과 함께 드라마 쓰려고 작업실도 얻었고, 거금 들여 인테리어도 새로 하고, 월세도 내고 있고요. 평생 식당 하며 고생한 엄마에게 용돈도 두둑이 드리고. 이만하면 괜찮지 않나요? 새벽까지 드라마 쓴다고 혼자 앉아 있다 보면 진작 이렇게 앉아 공부 좀 열심히 할걸, 새삼 엄마에게 미안해요. 그런데 드라마라는 장르가 너무 심장이 뛰는 장르 같아요. 처음에는 예능이 제 짝사랑 상대였는데 이제 새로운 상대가 생긴 거죠. 마음을 확 얻고 싶은데 아직은 될 듯 말 듯 하지만 설레니까 좋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작가들의 행보는 어떠해야 할까. 인터뷰 내내 유쾌하고 낙천적인 그녀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기에 걱정하고 방황할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이미 알았다. 다만 과연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다음 행보를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답은 느닷없이 ‘미어캣’이었다.
남들은 호랑이처럼 살라는데 저는 미어캣처럼 살았어요. 고개를 빼고 ‘뭐?’ ‘뭐?’ ‘뭘?’ 하다 보니 20년이 훌쩍 지났네요. 아직도 많이 아는 건 없지만 하고 싶은 일은 천지에요. 저는 후배들에게 작가는 스토리텔러라고 말해요. 요즘 연예인들 부캐가 유행인데 연예인들만 그러나요? 저도 예능작가이고 드라마작가이며 아카데미 선생님이고 유튜브 컨설팅도 하고요, 한때는 채널도 열었죠. 모든 콘텐츠에는 스토리가 필요하잖아요. 부담 갖지 마세요, 예민하게 따라갈 생각도 하지 마세요. 오픈마인드로 유연하게 받아들이세요. 사람 좋아하고, 이야기 좋아하면 어디서든 작가는 살아남기 마련이죠. 10년 뒤에 뭐가 되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죠. <이만갑> 처음 시작할 때 통일이 언제 될 것 같냐고 물으면 10년 걸린다고 했거든요. 요즘 여쭤보니 또 10년은 걸릴 거라고 하더라고요. <이만갑> 10주년에 언제까지 할 거냐고 묻는 분들이 계시던데 저는 통일이 될 때까지, 평양 가서 녹화할 때까지 계속하려고요. 통일이 되면 평양 지하철도 타보고 싶고 식당에 가서 냉면도 먹어보고 싶지만, 그보다 먼저 하고 싶은 건 우리 은하 씨 고향에 가고 싶어요. 순실이 형님 고향에도 가보고 싶고요. 그분들이 그렇게 그리워하는 그곳에 꼭 함께 가보고 싶어요.

장희정 작가

2001KTV <앞서가는 사람들>
2002SBS <오픈스튜디오>
2003KBS <세상의 아침>
2004KBS <쇼 파워비디오>
2005KBS <VJ클럽>
2006MBC <두뇌발전소 Q>
2007YTN STAR <서세원 生쇼>
2008SBS <일요일이 좋다 – 사돈 처음뵙겠습니다>
2009SBS <쇼 노래하는 대한민국>
2010ON STYLE <김원희의 품절녀의 블로그>
2012채널A <명랑해결단>
2015SBS <일요일이 좋다 아빠를 부탁해>
2015~2017채널A <통일준비 생활백서 – 잘살아보세>
2017KBS <상민 종민의 하룻밤만 재워줘>
2017MBN <사극리딩쇼 – 왕과여자>
2018채널A <지붕위의 막걸리>
2019~2020KBS <개그콘서트>
2020KBS JOY <연애의 참견>
2011~현재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2019 대한민국 무궁화평화대상 언론인상 수상
2012~현재 KBS 아카데미 구성작가반 강의
2021 드라마 창작사 <오로라 크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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