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인생 2막

음악에서 출발해 음악으로 돌아가는 중

BTS 전문작가로 변신한 구자형 작가

신미경 편집위원 사진 김선미

인생 2막

음악에서 출발해 음악으로 돌아가는 중

BTS 전문작가로 변신한
구자형 작가

신미경 편집위원
사진 김선미
‘언어는 빛이다. 별이다. 별을 다루는 직업이 작가다. 그래서 방송작가라는 사람들은 너무 중요하다. 언어를 다루는 모든 사람이 다 소중하지만, 작가는 빛을 선물하는 사람들이다. 언어에 사랑의 눈빛이 담기고, 사랑의 마음이 담길 때 비로소 언어는 빛이 된다.’ – 인터뷰 내내 소년미를 뿜어내며, 언어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쏟아내는 구자형 작가는 여전히 자체발광 중이었다.
처음에 방송작가로 데뷔하신 계기가 남다르다고 들었는데요, 그 이야기부터 출발을 할까요?
원래는 음악을 했었고, 정애리 씨가 자정에 진행하는 <0시의 플랫폼>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팝 칼럼니스트로 일주일에 한 번씩 고정출연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집필하는 작가가 해외여행을 가면서 대타 작가에게 원고를 맡기고 자리를 비웠는데, 개편 시기가 되도록 작가가 돌아오질 않았어요. 그때, 담당 PD가 나에게 방송 원고를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왔죠. 처음엔 거절했어요. 그런데 그 PD가 자기가 보는 눈이 있는데, 감이 온다면서 자신을 믿고 한번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당시에 출판사로 출근을 하던 때라 처음엔 그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퇴근 후에 방송국으로 출근을 해서 쓰다 보니까 쓰게 되더라고요. 그게 시작이었고, 이후로 여러 프로그램을 거쳐 지난 2006년까지 24년 동안 쉬지 않고, 라디오 원고를 썼어요.
지금도 건재한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프로그램을 꽤 오래 집필하셨죠?
<0시의 플랫폼>을 시작으로 다양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집필하다가, 1985년에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만나게 됐지요. 당시에 이문세 씨는 텔레비전 진행자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별이 빛나는 밤에>를 통해서 저와 만나게 된 겁니다. 이문세 씨는 애드리브가 많은 진행자라고 전해 들었는데, 첫 방송을 할 때 결심을 하나 했어요. 나랑 방송하는 동안에는 애드리브를 한마디도 못 하게 해야겠다. 그만큼 원고를 잘 쓰겠다는 결심이었던 거죠. 덕분에 담배도 끊고, 밤 열 시 프로그램 원고를 쓰기 위해서 아침 열 시에 작가실로 출근을 했어요. 실제로 거의 애드리브 없는 방송을 했고, <별이 빛나는 밤에>는 청취율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방송을 함께 한 지 3년쯤 지났을 때, 이문세 씨가 한마디 하더군요. ‘형이 날 키웠지’라고요. 사람이 많은 곳에서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스튜디오에 딱 둘이 있을 때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웃음).
당시에 밤 11시 5분이 되면 <별 하나의 사랑과 별 하나의 행복과>라는 라디오 에세이가 방송됐는데, 인기가 상당했죠. 진행자가 한 달에 한 번씩은 읽다가 울었거든요. 그 코너를 10대들의 쪽지 발행인인 김형모 씨가 퇴근길에 감명 깊게 들었다면서, 책으로 내고 싶다고 해서 출간하기도 했죠.
한 번에 두세 개의 프로그램을 집필하면서, 동시에 가수들의 평전도 많이 내셨잖아요. 최근엔 꾸준히 BTS와 관련된 책을 내고, 잡지도 발행했고요. 지속적으로 글을 계속 쓰게 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궁금합니다.
방송작가가 처음 됐을 때, 하루에 서로 다른 얘기를 다섯 꼭지씩 써내라고 하는데 미치겠더라고요. 방송을 펑크 내지 않으려면 어쨌든 써야 하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 알게 됐습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대상이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거라는 걸. 그러면 저는 그냥 그 대상이 하는 이야기를 글에 담아서 전달을 하면 되는 거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작가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고,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그다음부터 편해졌어요.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에 쓸 수 있었던 것도 글을 쓰려고 노력하기보다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한 다음부터였던 거 같아요.
저는 그냥 글이 쏟아져요. 한 번에 쏟아지는 거거든요. 그래서 글을 쓰고 나면 지쳐버리고 맙니다. 처음부터 끝을 계획하고 쓴다기보다는 쓰다 보면 마무리가 되기도 하고, 계속 쓰기도 하고 그래요. 요즘 BTS에 대한 글들은 끝이 나질 않아서 계속 쓰고 있는 거고요. 최근에 잡지 (음악과 평화)를 정기간행물로 등록했고, 창간호 스페셜 에디션으로 ‘BTS: Life goes on’을 펴냈는데 무게가 무려 3kg이 넘어요. 누군가 신생아 무게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아직도 쓸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단행본이 아닌 잡지로 내게 된 거죠.
< Music & Peace > (음악과 평화) 창간호 스페셜 에디션 ‘BTS: Life goes on’, 필자 제공
BTS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그저 노래 잘하는 보이그룹에서 작가님 삶의 일부가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2017년인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BTS의 ‘DNA’라는 노래를 들었을 때였던 걸로 기억해요. 사실 저도 음반을 내고 가수 활동을 했던 음악인의 한 사람으로 버킷 리스트가 있는데 첫 번째는 ‘밥 딜런과 듀엣하기’, 두 번째는 ‘폴 매카트니가 돈을 내고 내 음반을 사게 하는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들이 다 하겠더라고요.
제가 음악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 친구가 가출을 했다고 해서 같이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전파사에서 나오는 비틀즈의 ‘Let It Be’를 처음 들었을 때였어요. 그때 마음에서 뭔가 덜컥했어요. 그래 ‘저거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음악은 보이지도 않는데,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내 가슴을 움직이니까, 음악이 뭔지는 알고 죽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온 세상 음악을 다 들었고, 음악 전문작가는 아니지만 음악 이야기를 많이 했죠.
늘 생각한 게 ‘왜 비틀즈의 다음 이야기를 쓰는 가수가 없을까’였는데, DNA라는 노래를 듣는 순간 아~ 이 친구들이 해냈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자살을 생각했던 10대 청소년이 이들의 노래를 듣고 마음을 바꾸는 그런 일도 있다는 걸 알고는 BTS의 영향력을 실감했죠. 이제 BTS가 비틀즈를 뛰어넘었으니, 내가 이 친구들이 잘 활동하고 있는 그 과정을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겁니다.
≪25시≫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작가 ‘게오르규’가 1969년도에 문학사상의 이어령 주간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베란다에서 무궁화를 키울 정도로 한국에 관심이 많았던 세계적인 작가였죠. 인터뷰에서 ‘냉장고와 자동차 등의 물질문명에 의해 잃어버린 인류의 영혼이 한국에서 회복될 거’라고 예언을 했는데, BTS가 그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원래 음악인으로 출발을 해서 방송작가로 활동을 하다가 다시 음악인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끝으로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이번에 출간한 잡지 이름이 잖아요. 아트의 끝에 가면 평화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지은 거거든요. 평화라는 한자를 보면 ‘화(和)’라는 악기 소리가 고르게 퍼져나가는 모양이 ‘평(平)’이에요. 그 말은, 음악이 곧 평화이고 평화가 곧 음악이라는 거죠. 당분간은 BTS의 음악 활동, 어쩌면 평화를 위한 활동이라고도 할 수 있을 이야기를 계속 정리할 예정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의 세계적인 그룹 블랙핑크의 이야기도 최근에 집필을 끝냈고, 현재 외국어로 번역 중입니다.
음악과 바람이 뭔지는 알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구자형 작가! 오랜 고민 끝에 ‘음악은, 침묵에서 태어나서 침묵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정의 내렸다고 했다. 바람에 대해서는 아직 말로 다 정리하지 못했다면서, 이날의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작업실로 향했다. 아마도, BTS에 대해서 쓸 이야기가 또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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