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요즘 뭐 봐?

흐르는 강물과 마주하다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요즘 뭐 봐?

흐르는 강물과 마주하다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고희영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뉴스추적> 작가
  • 영화 <물숨> <시소 See-Saw> <불숨> 감독
  • 그림책 ≪엄마는 해녀입니다≫ 작가
  • 2016년 전주국제영화제 CGV아트하우스 배급지원상, 심사위원특별언급상 수상
  • 2016년 청소년을 위한 좋은 영화 다큐멘터리상 수상
  • 2015년 한국독립PD협회 최우수작품상 수상

고희영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뉴스추적> 작가
  • 영화 <물숨> <시소 See-Saw> <불숨> 감독
  • 그림책 ≪엄마는 해녀입니다≫ 작가
  • 2016년 전주국제영화제 CGV아트하우스 배급지원상, 심사위원특별언급상 수상
  • 2016년 청소년을 위한 좋은 영화 다큐멘터리상 수상
  • 2015년 한국독립PD협회 최우수작품상 수상
나이 들수록 그늘보다 양지가, 흐린 날보다 맑은 날이 좋다. 사람도 그렇다. 부정적인 사람 곁보다 긍정적인 사람 곁에 머무는 것이 좋다.
오랜 세월, 다큐멘터리를 하면서 수많은 곳을 헤매 다녔고,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어느 날, 그동안 만난 사람들을 통찰하던 나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행복한 사람들의 특징을 알게 된 것이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아이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세상만사 배배 꼬아 바라보지 않고, 사람에 의심이 없으며, 다가올 불안을 미리 걱정하지 않고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살다 보면 이리저리 치이고, 영혼은 때가 꼬질꼬질 묻어가고, 세파에 시달린 성질은 조약돌처럼 둥글어지기는커녕 날로 뾰족해지는 나를 개조할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그러던 중 내가 찾게 된 극약 처방은 그림책을 읽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잃어버린 동심을 찾고 싶은 안간힘이랄까. 놀라운 것은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인생의 진리며 철학, 그리고 따뜻한 위로가 그림책 속에 오롯이 담겨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중에서도 요즘 오래도록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인생 그림책이 있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시인 조던 스콧이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글로 쓰고, 케이트 그리너웨이상 수상 작가인 시드니 스미스가 그림을 그린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다.
아이는 아침마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내는 ‘낱말들의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뜬다. 하지만 아이는 말이 유려하지 않다. 학교에 가면 맨 뒷자리가 아이의 고정석이다. 아이의 바람은 제발 오늘은 말을 할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 그러나, 피해갈 수 없는 날이 온다. 선생님이 한 사람씩 돌아가며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고 하셨기 때문이다. 아이는 목구멍이 꽉 막혀온다. 입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 많은 눈이 내 입술이 뒤틀리고 일그러지는 걸 지켜보았어요.
그 많은 입이 키득거리며 나를 비웃었어요.’
이 책을 읽다가 이 대목에서 왈칵 눈물이 났다. 그것은 유년의 어느 날, 교실에 혼자 남아있던 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아이였다. 발표력이 빵점이고, 마음속 생각을 전달하는 데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선생님은 그날 배운 한글을 칠판 위에 써놓으셨고, 그것을 읽을 수 있는 아이만 집으로 보냈다. 나는 글을 읽을 줄 알면서도 손을 들어 그 글을 읽을 용기가 없어서 끝까지 교실에 남아있곤 했다.
그날의 기억은 주인공 소년의 발표하는 날과 똑같았다.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큰언니가 우리 학교에 교생실습을 온 어느 날, 동생의 학교생활을 알고 싶었던 큰언니는 맨 뒤에 앉아있는 나를 굳이 지목해 국어책을 읽도록 시켰다. 그 순간 반 아이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그 아이는 말 못 하는 아이예요.” “걔는 책 못 읽어요.”
그 교실 안에 울려 퍼지던 웃음과 소란은 아직도 내 유년의 기억에 남아있다. 그 교실은 여전히 나에게는 두려운 세상, 내가 배제된 세상이다. 나도 글을 읽을 수 있다고 큰 소리로 말하고 싶지만 손을 들 자신이 없는 아이, 아무리 힘주어도 개미만 한 목소리가 웅얼거리다가 사라져버리는 아이였다. 그날 나는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책 속 아이의 아빠는 아이의 침울한 얼굴을 보고 강가로 데려간다. 아빠는 두 눈에 눈물이 맺힌 아이를 가만히 끌어안고 강물을 가리키며 말한다.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말을 더듬는 아이가 굽이치고 부딪치고 부서져도 쉼 없이 흐르는 강물과 마주하며 내면의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담아낸 이 책은 시적인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그림은 아이의 내적 갈등과 치유의 과정까지 섬세히 그려냈다.
심신이 지치거나, 머리가 혼탁할 때 이 책에 손이 간다. 책장을 펼치자마자 편안하고 고요해진다. 마치 깊은 강물이 흘러 내 발목을 적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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