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v184-디렉터스컷-2

박진석 KBS PD

  • 드라마스페셜 <부정주차> <간서치열전> <낯선동화>
  • 4부작 <맨몸의 소방관>
  • 미니시리즈 <학교2017> <대박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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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부동산의 문을 닫으며

KBS <대박부동산>

v184-디렉터스컷-2

박진석 KBS PD

  • 드라마스페셜 <부정주차> <간서치열전> <낯선동화>
  • 4부작 <맨몸의 소방관>
  • 미니시리즈 <학교2017> <대박부동산>
두려움에서 출발한 퇴마물
‘쉽지 않겠다.’ 처음 기획을 받아들고 한 생각이었다. 두 가지 면에서였다. 하나는 한두 줄의 지문도 영상화하는 데 있어 만만치 않겠다는 걱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과연 이 장르를 우리 시청자들이 좋아해 주실까 하는 의문이었다. 이 걱정과 의문은 사실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두려움. 오컬트 장르가 간간이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지상파 방송에서는 특히 이런 시도가 잘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 통념이다. 게다가 직접 연출을 해보려고 마음먹고 달려들어 보니, 흥행을 하고 말고 수준의 문제가 아닌 근본적인 압박감이 다가왔다. 행여 볼품없는 만듦새로 비웃음을 사면 어떡하나. 더없이 유치하다고 외면하면 어떡하나. 희대의 괴작이라는 평가를 들으며 연출 커리어가 끝장나는 악몽을 꾸는 나날들이 시작됐다. 그래도 어쩌나. 이미 작가님들께 발목을 붙잡혀(?) 버렸는데. 상견례라 부르기도 애매한 첫 만남 자리에서, 솔직하게 수정했으면 하는 방향을 제안했다. 충분히 거부할 수도 있는 제안들이라, 동의하지 않으시면 미련 없이 털고 일어서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호쾌하게 받아들인 작가님들 덕에 어영부영 한배를 타게 됐다. 왜 그리 과감히 받아들였냐고 나중에 여쭈어보았다. 다른 건 차치하고 연출자로서 가장 중요한, 대본의 핵심을 이해하고 있기에 믿음이 가더라는 현답을 해주셨다.
이 기획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점은 퇴마라는 환상적 장르에 더없이 일상적인 부동산이라는 소재가 잘 어우러졌다는 것이었다. 각 에피소드에서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집에 대한 절절한 사연을 풀어주고 위로하는 힐링물이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주인공들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과거의 집착에서 벗어나 진정한 성장을 이룬다는 점도 탁월했다. 마지막 회의 마지막 씬까지, 그런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연출자의 방향성에 대해 무한신뢰를 보여주시고 애매한 아이디어조차 허투루 넘기지 않고 멋진 스토리로 승화시켜 주신 작가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글머리에 밝혔지만 영상적 표현이 연출자로서 부담이었다. 비주얼적 화려함이나 멋진 테크닉으로 표현하고 그 뒤에 숨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이야기의 힘을 믿고 좀 더 고전적인 표현과 형식을 택하기로 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이 귀신의 표현이었다. 분장, 미용, 특수효과, 음향효과, CG까지 고르게 서로 호흡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CG를 담당한 업체는 현란하고 규모 있는 CG로 정평이 난 회사였고 심지어 더 최신 스타일의 귀신 CG를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자제하기로 결정했다. 원귀들을 현생과 동떨어진 타자, 괴물로 그리고 싶지는 않았다. 흉측한 상처를 실감나게 표현하거나 기괴한 모습은 배제하고 으스스하지만 슬픈 회한,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강조하고 싶었다. 대본에서 묘사된 귀신의 세계가 ‘어둡고 춥다’는 콘셉트였기에 음습한 검은 기운, 검푸른 냉기로 테마를 잡고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반대로 소금진의 색깔, 귀침의 사라지는 모양 등 퇴마의 장치들은 불을 모티브로 한 따뜻한 이미지를 내려 했다.
촬영과 조명에 있어서는 이승과 저승, 음과 양으로 대비되는 대박부동산의 세계관을 투영하고 싶었다. 기본적으로 홍지아 4인방이 팀플레이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물이기에 느와르 장르에 기대고 있다는 판단도 한몫했다. 난색 계열의 따뜻하고 편안한 화면 톤을 배제하고 강렬하고 대담한 보색,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명암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쨍한 화질을 강조하는 추세와는 반대로 빈티지 렌즈를 활용해서 몽환적인 느낌을 주었다. 장나라·정용화 두 배우도 이런 표현을 감각적으로 이해해주고 의상에서부터 연기 톤까지 200% 표현해 주었다.
KBS <대박부동산> 현장 사진, 필자 제공
일상의 이면에 숨은 판타지를 위한 연출
미술 파트도 빼놓을 수 없겠다. 분명 영미권의 엑소시즘 장르 전통에 기대어 출발한 드라마이지만 최대한 지금 바로 여기, 옆 동네에 가면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 특히나 대박부동산 건물 자체는 주인공 못지않은 하나의 캐릭터였다. 도시의 변두리, 이제 철거가 시작된 쓸쓸하고 한적한 동네의 2층짜리 건물. 독특한 외관은 가졌지만 너무 활극물의 비밀기지 같지는 않은, 모순된 조건을 요구하는 감독 탓에 장소섭외 팀은 전국을 돌아다녔다.
외부 건물의 네온 간판과 아름다운 타일, 사무실의 내부 인테리어와 구조, 벽지 등은 최대한 현실적이고 어두운 톤으로, 수십 년째 한 자리에서 대를 이어 사무실을 하고 있다는 상상으로 꾸며졌다. 마침 레트로가 대세인 요즈음이라, 오래된 느낌이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있는 세트가 완성되었다. 반면 홍지아의 2층 방은 과거, 즉 엄마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고 있는 딸의 심리를 그대로 반영하기로 했다. 30대 여성의 방이라는 생활감보다는 여러 문화의 다양한 구마 물품과 종교 물품으로 채우면서 (아마 엄마를 보낼 방법을 찾던 과정에서 얻었을 것이다) 기이하고 상징적인 느낌에 치중했다.
원래 대본에서 가장 매력적인 소품 중 하나가 타카(Tacker:고정용 핀을 박는 공구)였던 것은, 역시 부동산과 퇴마가 결합한 이 드라마만의 독특한 느낌을 상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일상의 이면에 숨은 판타지’라는 것에 착안, 퇴귀록 서고나 퇴마 도구들은 얼른 눈에 띄지 않는 비밀장치와 장소를 만들어 넣었다. 주인공 지아의 의상과 컨셉 역시 뱀파이어 헌터, 엑소시스트 등에 기반은 두었지만, 최종병기인 귀침은 동양풍의 비녀로 해석해서 균형감을 맞추었다. 타카의 기종, 귀침의 디자인과 이름을 써넣는 구조, 심지어는 퇴마사가 그리는 소금진의 형태까지… 문자로 표현된 환상을 실체화하는 어려움이 있는 만큼, 그 반대로 비어 있는 행간을 상상력을 발휘해 하나하나 실현해 가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KBS <대박부동산> 스틸샷, 필자 제공
준비하며 재미있었던 것은 퇴마사 지아의 콘셉트를 대체로 ‘고스(Goth)족 스타일을 입은 창백한 얼굴’로 연상해서 제안했는데, 배우 본인도 똑같이 그 스타일을 생각해 왔었다는 것이었다. 특히 장나라 배우는 전체적인 대본 해석에 있어 너무나 코드가 잘 맞아서 놀라는 때가 많았다. 가령 주요 레퍼런스 중의 하나로 ‘헬보이(Hellboy)’라는 만화가 있었는데(심지어 주인공이 타카처럼 큰 권총을 휘두른다!) 어느 날 장나라 씨가 (마치 그 헬보이처럼) 퇴마를 할 때면 늘 똑같은 코트를 입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는 것이 아닌가. 마치 통한 것처럼.
홀림이 자아낸 몰입
<대박부동산>의 핵심은 가슴 아픈 원귀들의 사연과 이를 통해 온전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주인공들이었기에, 연출자로서 특히 신경 썼던 요소는 ‘홀림’의 표현이었다. 등장인물들이 귀신에 홀리는 과정, 시청자들이 귀신에 홀려 무서움을 느끼는 요소들이 <대박부동산>만의 분위기를 연출해 내는 데 필수 요소라고 생각했다.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표현들보다는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효과음, 생략된 표현, 고전적인 카메라워크와 편집으로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그런 으스스한 분위기를 더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화려한 최신의 영화보다는 오래된 드라마와 영화들에서 더 많은 영감을 얻었다. 다만 엉뚱하게도 후반에 등장하는 달걀귀는 괴물 같은 소리보다는 오히려 맑고 청아한 나무방울 소리를 부여하고 싶었는데, 그 이질감이 오히려 잘 어울려서 만족스러웠다.
각 에피소드에서 다양한 홀리는 장면이 등장하고, 각기 다른 표현을 위해 골머리를 썩였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지아가 엄마의 진실을 알기 위해 반복적으로 강제 홀림을 당하는 과정이다. 주인공들의 서사의 핵심 비밀인 20년 전의 묘사는 여러 번 반복되는데, 현실에서 과거의 기억이나 환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특히 공을 들였다. 여타의 작품으로 본다면 회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인데 이를 그냥 번쩍하는 장면전환으로 게으르게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노력 중 하나가 대박부동산 1층의 난간 해태 장식이었다. 기획 때부터 지아는 계속해서 끔찍한 과거로 회귀하는 인물이었기에, 이 회상 혹은 홀림을 촉발하는 방아쇠 같은 실물이 있었으면 했다. 미술감독의 멋진 감각으로 디자인적 요소도 만족스럽고 대본을 영상화하는데도 지대한 공을 세운 해태 장식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 시퀀스는 특히 꿈과 현실을 혼동하는 많은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고 심지어는 연출자 본인이 꾼 꿈속의 꿈 분위기를 연상해서 준비한 장면이었는데 감정적 부분이나 시각적 요소 모두 꽤 만족스럽게 연출되었다고 혼자서(만) 뿌듯해하는 중이다. 달걀귀와의 싸움 역시, 최종 보스다운 공격은 물리적인 것보단 안락한 환상을 통한 유혹일 거라 보아서 제안했는데, 대본에서도 영상에서도 유감없이 표현되었다. 이제는 정말 <대박부동산>을 보내 줄 때가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소개한다는 마음으로 연출했는데 작지 않은 사랑을 주셔서 더없이 감사하고, 나만의 취향이 아니었음을 확인해서 외롭지 않았다. 아쉽고 기쁜 마음으로 대박부동산의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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