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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방송작가

감나무에 물을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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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에 물을 주다

프로필-김윤영

김윤영

  • 한국방송작가협회교육원 제63기 기초반 수강생
프로필-김윤영

김윤영

  • 한국방송작가협회교육원 제63기 기초반 수강생
저에게는 매년 여름이 오면 떠오르는 풍경이 있습니다. 3년 전, 92세의 일기로 돌아가신 제 외할머니 정남순 여사가, 늦여름 뙤약볕을 맞으며 감나무에 물을 주는 모습입니다. 새 물을 뜨러 돌아서는 그의 온몸에서는 치자꽃 향기가 물씬 피어오릅니다.
저는 정 여사를 ‘불사조’라고 불렀습니다. 정 여사에게는 고질적인 폐병이 있었는데, 가래로 목이 막혀 당장 죽을 것처럼 병원에 실려 가도 며칠만 지나면 금세 다시 살아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퇴원한 정 여사에게 “불사조의 환생을 축하한다”며 농담을 하자, 정 여사는 목이 끓는 소리를 내며 크게 웃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정 여사의 집에서 그와 함께 몇 년을 먹고 자며 그의 감수성을 익혔기에, 그가 이 패륜적인 별명을 마음에 들어 할 줄 알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정 여사에게 “할머니는 어떻게 자꾸 살아나느냐”고 물었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정 여사는 “나무 덕분”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 여사네 마당에는 늘 과일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는 손자들을 먹이고 입히기 바쁜 생활 속에서도 항상 나무를 심고 가꾸었습니다. 그래서 정 여사네 집에서 살았던 아이들은 저마다 같이 자란 나무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린 석류나무와 함께 컸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햇살이 부서지는 나무 밑에 작은 평상을 놓고 누워 있다가, 심심하면 나뭇가지에 달린 과일을 마음껏 따서 먹고는 했습니다.
정 여사는 나무가 자라 온갖 빛깔의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색채의 과일이 어우러진 장면을 바라보노라면, 전지전능한 화가가 되어 아무도 그릴 수 없는 그림을 그린 듯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 여사에게는 예술적 기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외딴 섬마을 농사꾼 집안의 줄줄이 딸 중 막내로 태어나,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란 정 여사에게 예술을 할 기회가 돌아올 리 없었습니다.
그렇게 정 여사는 그 시절 자신에게 주어진 순리대로 시집을 가고, 농사를 짓고, 자식을 낳아 길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과일나무에 물을 주는 것만은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섯 명의 자식이 뭍으로 나가고, 마지막으로 막내까지 뭍으로 유학을 나간 날에는 웃으면서, 풍을 맞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는 눈물을 흘리며 나무에 물을 주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 관절이 아파오면, 정 여사는 절구에 치자꽃과 치자 열매를 짓이겼습니다. 그걸 밀가루 반죽과 고루 섞어 관절 마디마디마다 발라야만 비로소 걸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정 여사가 그렇게 온몸에 치자꽃 향기를 풍기며 나무에 물을 주러 가는 모습을, 저는 아주 여러 번 보았습니다.
정 여사의 행위는 자신만의 예술 활동이었습니다. 그러니 정 여사는 자신의 몸이 열사병으로 죽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하더라도 결코 과일나무에 물 주기를 멈추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정 여사는 마당이 딸린 집에서 아파트로, 그리고 요양병원으로 옮겨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도 나무에 물을 주었습니다.
집안사람들은 정 여사가 여름에 노쇠한 몸으로 무리해서 열사병에 걸렸다며, 감나무가 정 여사를 죽였다고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 여사가 당신 스스로 죽으러 들어간 요양병원에서 몇 년을 더 버틴 건, 그가 불사조여서가 아니라 감나무에 물을 주었기 때문임을 압니다. 그 일관되고 꾸준한 일과 속에서, 그녀는 죽는 날까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예술을 했습니다.
얼마 전 책을 읽다가 정 여사의 예술관과 비슷한 구절을 보았습니다. 예술을 하고 싶다면 예술과 생활상을 일치시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청년기의 미하일 바흐친은 ≪예술과 책임≫(1919)이라는 글에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예술 속에 있을 때 그는 생활 속에 있지 아니하고, 그 반대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선 안 된다는 것, 예술과 생활을 한 인격 안에 통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흐친은 우선 ‘책임’, 즉 응답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예술(/생활)에서 체험한 것에 대해, 그것이 쓸모없어지지 않도록, 생활(/예술)로서 응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를 쓴 사람은 양미자 씨밖에 없네요.”, 신형철, 『시』 아를(2021), 257p 중)
예술과 생활상을 결합시키며 파생된 정언명령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 여사처럼 목숨을 걸고 글을 써오지는 않았기에 반성합니다. 아마 그동안 저는 어딘가 가능성이 있다고 일컬어지는 사람으로 남아있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들 앞에서 글을 쓴다고 떳떳하게 말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정 여사가 어린나무를 길러내는 것으로 자신의 생활상과 예술의 생태적 결합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듯이, 저 또한 저의 생활상에서 저만의 것을 찾아야 할 책무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게 글쓰기였으면 했습니다. 특히 드라마였으면 참 좋겠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이제 저는 글을 쓰며 나타난다는 큰 산을 넘게 만드는 일상의 힘을 알게 되었습니다. 글을 꾸준히 쓰려면 글이 제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얻은 저의 소중한 교훈입니다. 거창한 욕심인 줄 알지만, 저는 드라마를 써서 저에게도 최후의 보루가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쓰는 글이 ‘부족한 사람이 쓰는 부족한 글’이 될지라도,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적을 두며 다시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제63기로 입교하여 교육원에서 첫 수업을 듣던 날, 마음속에 세상을 향한 작은 창이 하나 다시 열린 기분이 들었습니다. 따뜻하고 떳떳한 글 쓸 수 있도록 애쓰며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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