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프로필-윤석진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

  • 드라마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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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부활을 꿈꿀 수 있을까?

K-시트콤의 부활과 비상을 위한 과거 톺아보기

프로필-윤석진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

  • 드라마 평론가
한때 저비용 고효율 방송 콘텐츠로 주목받았던 시트콤이 고사 직전이다. ‘목요 공개 코믹 드라마’라는 타이틀로 <오박사네 사람들>이 처음 방송을 시작한 1993년 이후 각 방송사의 시청률을 견인하면서 시청자의 웃음을 책임졌던 시트콤이 지금은 명맥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겨워 보인다. 그나마 2021년 상반기에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다가 <어쩌다 가족>으로 부활하는가 싶었으나, 좀처럼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못한 채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시트콤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쇠퇴에 이르기까지 채 30여 년이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한국 시트콤의 새로운 비상을 위해서라도 성장과 발전 그리고 침체의 과정을 톺아볼 필요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맞물린 한국 시트콤의 토착화
익히 알고 있다시피 ‘시트콤’은 ‘시추에이션 코미디(situation comedy)’를 줄여 부르는 용어다. 1990년대 초반 신생 민영 방송사 SBS에서 미국 인기 시트콤 <코스비 가족>의 양식을 차용한 <오박사네 사람들>을 처음 방송할 때만 하더라도 파격적인 실험이지만 해볼 만한 모험이라는 방송계의 우려와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이었다. 100여 명의 시청자들이 촬영 세트장에 관객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한국 최초의 시트콤 <오박사네 사람들>은 <유머 1번지>나 <웃으면 복이 와요>처럼 이미 쇠퇴기에 접어든 정통 코미디를 대체할 만한 콘텐츠로 주목받았다. 다양한 소재의 여러 가지 코너로 구성된 KBS와 MBC의 정통 코미디가 치고 빠지는 짧은 호흡으로 시청자의 웃음을 유발했던 것과 달리, SBS의 시트콤은 웃음에 특화된 전형적인 캐릭터들의 좌충우돌을 중심으로 매회 2개의 에피소드를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코미디의 웃음과 드라마의 극적 구성이 결합한 새로운 양식의 탄생이었다.
미국의 시트콤을 벤치마킹하면서 시작한 한국의 시트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토착화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1990년대 초반 한국 문화예술계를 강타한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에서 찾을 수 있다. 전통의 해체와 재구성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면서 개성과 자율성 그리고 다양성과 대중성을 중시한 포스트모더니즘 문화 운동이 전통적인 가부장제 문화를 풍자와 해학의 웃음으로 해체하면서 변화된 시대에 적합한 가족 관계를 탐색했던 시트콤의 문제의식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오지명, 김수미, 박원숙 등의 배우들이 <오박사네 사람들>과 <오경장> 등의 초창기 시트콤을 통해 기존의 연기 패턴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과잉과 과장의 코미디 연기를 선보였던 것도 주효했다. 지금과 달리, 코미디 배우와 정극 배우의 경계가 분명했던 당시 이들의 파격적인 코미디 연기가 한국 시트콤의 성공적인 정착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성과의 배경에 한국적 웃음의 원천을 고민했던 작가와 연출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다양한 유형의 하위 장르로 분화하며 발전한 시트콤
실험과 모험 정신으로 시작한 한국 시트콤은 1998년 3월 첫 방송 이후 3년 가까이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던 <순풍산부인과>의 성공을 계기로 발전기에 접어든다. 초창기 <오박사네 사람들>부터 한국적 시트콤 연기의 정석을 구축해온 오지명을 필두로 선우용녀·박영규·김찬우·이태란·이창훈·송혜교·권오중 등의 정극 배우와 박미선·표인봉 같은 코미디 배우의 조화가 돋보인 <순풍산부인과>의 성공을 계기로 ‘가족 시트콤’의 전형이 만들어졌다. 가정과 직장에서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군림하는 오지명 원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캐릭터들이 합종연횡하면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 사고들을 병치시킨 구성과 연출을 통해 삶의 애환에 바탕을 둔 풍자와 해학의 한국적 웃음이 완성된 것이다. 특히 <LA아리랑>에 이어 <순풍산부인과>로 한국 시트콤의 발전을 견인한 김병욱 PD는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거침없이 하이킥>, <지붕 뚫고 하이킥>,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으로 대표되는 ‘가족 시트콤’의 전형을 완성한 작가주의 연출가로 평가받았다. <순풍산부인과>의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한국 시트콤은 다양한 유형의 하위 장르로 분화되면서 빠르게 발전하였다. 헬스클럽과 정신 클리닉 그리고 부티크에서 일하는 세 명의 친구들을 중심으로 가족과 직장의 일상과 사랑을 코믹하면서도 에로틱하게 연출한 <세 친구>와 루마니아에서 온 뱀파이어들과 인간의 공존을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풍자적으로 연출한 <안녕, 프란체스카>의 성공으로 ‘성인 시트콤’ 장르가 형성되었다. 미혼의 3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그녀들의 할머니를 에피소드의 중심에 배치하면서 연애와 결혼 그리고 사회생활을 여성의 관점으로 연출하여 주목받은 <올드 미스 다이어리> 또한 성인 시트콤의 정착에 기여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대학 캠퍼스를 배경으로 청춘의 사랑과 우정을 코믹하지만 낭만적으로 연출하면서 1980년대 청춘 드라마를 계승한 <논스톱> 시리즈 또한 ‘청춘 시트콤’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그런가 하면,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새로운 소재와 기법으로 ‘판타지 시트콤’ 장르를 개척한 경우도 있었다. 마술 샴푸로 머리를 감으면 4시간 동안 미녀로 변신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10대 소녀들의 발랄함을 만화적 기법으로 연출한 <두근두근 체인지>와 투명인간 소재의 <미라클> 그리고 조선 시대 양반이 대한민국으로 시간 이동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 <조선에서 왔소이다> 등이 대표적이다.
<순풍산부인과>의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한국 시트콤은 다양한 유형의 하위 장르로 분화되면서 빠르게 발전하였다.
(좌) MBC <거침없이 하이킥> 포스터 (우) KBS <올드미스 다이어리> 포스터
시트콤의 정형화와
방송 환경의 변화가 불러온 침체기
‘가족’에서 시작하여 ‘성인’과 ‘청춘’ 그리고 ‘판타지’로 외연을 확장하면서 발전했던 한국 시트콤은 2012년 3월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종영 이후 한동안 공백기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2016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청담동 살아요>와 <초인가족> 그리고 <너의 등짝에 스매싱>과 <으라차차 와이키키> 등이 연이어 방송되었으나 시트콤의 부활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코미디와 드라마의 장점을 결합하여 풍자와 해학의 한국적 웃음을 견인하면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던 시트콤이 불과 20여 년 만에 침체기에 빠져든 까닭은 시트콤 내적 요인과 방송 환경 변화라는 외적 요인으로 나누어 진단할 수 있다.
첫째, 한국 시트콤은 내적으로 소재와 기법의 차원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캐릭터 창출과 에피소드 구성이 자기 복제에 가까울 정도로 정형화되는 한계를 드러냈다. 그 결과 기존에 성공했던 시트콤들의 아류작이라는 비판과 함께 시청자의 외면을 받으면서 저비용 고효율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콘텐츠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둘째, 시트콤 초창기에 기존의 코미디 프로그램을 대체하면서 ‘웃음’을 독점했던 방송 환경 변화라는 외적 요인을 감지하지 못했다. 가족 드라마와 로맨스 드라마가 극적 긴장을 이완시키기 위해 캐릭터 창출과 에피소드 구성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활용하던 웃음 코드가 본격화되면서 시트콤의 장점이 희석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과 함께 웹(web)을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이 확산하면서 ‘스낵컬처’처럼 물리적 시간이 짧은 콘텐츠들을 통해 웃음을 소비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도 시트콤의 쇠퇴를 가속화시켰다. 이것은 비단 시트콤만이 아니라 웃음에 주력하는 코미디와 개그 프로그램의 문제이기도 하다.
창조적 파괴를 통한 시트콤의 부활
웃음이 더 이상 시트콤은 물론 코미디의 전유물이 아닌 환경에서 한국 시트콤이 화려하게 부활하여 비상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시트콤의 쇠퇴 현상에 대한 원인 진단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기본에 충실한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만약 말초적인 웃음으로 순간 시청률을 올리려 한다면, 시트콤의 부활은커녕 소멸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익히 알고 있다시피, 시트콤의 기본이자 핵심은 웃음에 바탕을 둔 풍자와 해학으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성찰을 견인하는 것이다. 극적인 웃음은 순간적으로 기화될 수도 있고, 오랫동안 여운이 남을 수도 있다. 이러한 극적 웃음의 속성이 기존 방송은 물론 웹 기반의 OTT 플랫폼에서 자유자재로 발휘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첫걸음은 한국 시트콤의 성장과 발전 과정에서 구축되었던 캐릭터 창출과 에피소드의 구성의 정형성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창조적 파괴만이 한국 시트콤의 부활과 비상을 장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진단과 처방은 쉬울 수 있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트콤의 부활 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작가와 연출가들이 건강한 웃음에 대한 시청자의 열망을 충족시켜 주리라는 믿음으로 탁상공론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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