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지금 이 작품

함께 해서 행복한, 동행

CBS-R <김현주의 행복한 동행> 김문숙 작가

글·사진 김선미 편집자 / 장소협조 홍대 스케치북 카페

지금 이 작품

함께 해서 행복한, 동행

CBS-R <김현주의 행복한 동행> 김문숙 작가

글·사진 김선미 편집자
장소협조 홍대 스케치북 카페
연일 놀라운 기록 경신으로 세계 정상에 오르며 글로벌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한 방탄소년단(BTS). 외국인 멤버 한 명 없는 한국의 보이그룹이 세계 음악 산업의 거점인 미국 시장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가장 주효했던 것은, 바로 그들의 든든한 지원군 아미(ARMY, BTS 팬클럽)들이 공격적으로 미국 라디오 시장의 문을 두드린 일이었다. 팟캐스트, 오디오북, 거대 포털 기업들의 오디오 클립 등 끊임없이 진화하는 여타 오디오 콘텐츠 산업의 위협에도 어쩐지 여전히 건재해 보이는 라디오의 세계. 1980년대 후반 처음 일을 시작할 때부터 김문숙 작가가 줄곧 들어왔다는 ‘라디오는 사양이다’라는 말은 어쩌면 30여 년째 그저 말로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라디오는 지금도 묵묵히, 우리의 일상 속에서 여러 모습으로 대중과 깊은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2007년 새해 첫날 걸음을 뗀 CBS라디오 <행복한 동행>. 배우 오미희의 뒤를 이어 2016년 2월부터 배우 김현주가 DJ를 맡아 진행한 지도 어느새 6년 차로, 곧 2000회를 앞두고 있다. 매일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들려주는 추억의 음악과 최신 음악. 그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DJ의 따뜻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청취자들에게 전하는 위로는 <김현주의 행복한 동행>이 동 시간대 청취율 1위 자리를 지키게 하는 원동력이다.
저희 프로그램도 코너가 되게 많았어요.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제일 좋은 건 DJ의 말과 음악이더라고요. 날이 저무는 이 시간대는 심리적으로도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코너를 다 뺐는데 훨씬 느낌이 좋고 반응도 좋은 거예요. 좋은 음악을 먼저, 말은 적게. 개인적으로는 지금이 안식년이라고 생각해요. 가끔 ‘우대합니다’ 하는 게 있는데요. 사연 우대하는 거거든요. ‘오늘 경찰관 우대합니다’, ‘의료진 우대합니다’, ‘기사님들 우대합니다’ 하면 숨어있는 사람들이 정말 어마어마한 거예요. 그 저녁이라는 시간이 위로받고 싶은 시간이더라고요. 그런 분들에게 우리끼리 재밌는 방송보다는 이렇게 음악이 코너고 DJ의 말이 코너가 되는 방송을 하고 싶었어요.
예전에는 시 낭송 같은 거 많이 했는데, 지금 DJ가 워낙 음성이 좋다 보니 사연을 읽으면 그냥 생활낭송이 되더라고요. 코너는 아니지만 남의 시, 남의 얘기 말고 청취자들의 생활 속 이야기들을 김현주 씨가 낭송하듯이 하면 그 어떤 시보다 와닿고 공감되는 좋은 코너가 되는 것 같아요. DJ의 능력이죠.
TBS-R <김현주의 live FM>, CBS <오후의 향기 김현주입니다>로 인연을 맺으며 20년 가까운 시간 합을 맞춰온 김문숙 작가와 김현주 DJ. 이제는 각자 사연을 뽑으면 거의 똑같은 사연을 뽑을 정도로 서로를 닮아있다.
라디오는 딱 셋이잖아요. PD, 작가, DJ. 김현주 씨랑 늘 얘기하는 게, 스태프는 사랑하는 관계여야 한다는 거예요. 사랑하지 않고는 이해가 안 되니까요. 셋뿐이니까 한 가족이 되고, 진짜 가족보다 더 많이 아는 거죠. 셋이 서로 닮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작가가 저 혼자다 보니 여럿이 할 일을 혼자 해야 해서 힘들긴 한데, 그만큼 다른 방송사에선 PD들이 절대 하지 않는 일을 함께 해주고 도와줘요. 방송 중에 댓글 다는 것도 그냥 먼저 보는 사람이 하는 거예요. 힘듦을 녹일 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있는 것 같아요.
2017 SBS 제29회 한국PD대상에서 제작부문상 라디오작가 부문을 수상한 김문숙 작가. 그날 그는 수상 소감에서 “매일 허공으로 날아가는 대본을 쓴다”고 말했다.
상을 받았을 때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30년 동안 허공에 날아가는 글만 썼다…. 그런데 제가 30년 동안 고집한 게 있다면, 인용하는 글은 안 써요. ‘이런 말이 있잖아요~’ 라든가 ‘누군가 ~랬잖아요’ 이런 걸 안 쓰죠. 그래서 가끔은 거칠기도 하지만, 저는 제가 본 걸 써요. 얼마 전엔 이런 멘트를 썼어요. ‘우리 주변에 너무 화살표가 많더라. 엘리베이터에도 있고, 도로 위 좌회전 표시도 있고, 하다못해 자전거도로에도 있고. 오늘 나한테도 누군가 그 방향이 아니고 이 방향이야 라고 짚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참 좋았겠다.’ 이건 제가 보고 느낀 거잖아요. 어디서 인용하거나 통계를 가져오는 게 뭔가 좀 스스로 못 견디겠달까. 제가 본 걸 DJ의 시선으로 옮기고 ‘김현주화’해서 썼더니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 거예요. 어디서 들어본 얘기가 아닌 것 같으니까. 그때 굉장히 위안을 많이 받았어요.

지금도 원고지에 수기로 원고를 쓴다는 김문숙 작가. 김문숙 작가의 손글씨.

지금도 원고지에 수기로 원고를 쓴다는 김문숙 작가.
김문숙 작가의 손글씨.

방송으로 나간 원고는 이미 청취자들한테 판 원고이기 때문에 방송원고를 엮어 책을 내자는 제안도 모두 고사했다는 김문숙 작가. 이토록 스스로에 엄격하고 고집스러운 34년 차 라디오작가의 시작은 1988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예전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문예진흥원 잡지를 만들다 MBC 라디오에 있던 선배의 권유로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에 들어가 스크립터로 일하던 3년여.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라디오스타 故 이종환 DJ 곁에서 사연을 고르는 일부터 섭외, 공개방송까지 기본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이후 MBC <별이 빛나는 밤에>, KBS-R , SBS-R <오 해피데이>, 국군방송 <유쾌한 내무실, BTN-R <김미진의 울림팟티> 등 수많은 프로그램을 집필하며 ‘삼국통일작가(방송 3사 프로그램을 모두 맡은 작가)’로, ‘월천작가(한 달 수입 천만 원)’로 불리기도 했다.
거쳐온 프로그램들 중에서도 심야시간대 방송이 많아 20년 가까이 저녁 생활이 없었다는 김문숙 작가. 심야시간대를 선호한 이유를 물었다.
라디오는 데일리 방송이잖아요. 아침 프로그램을 하면 어제에 묶여있지 않고 저녁 프로그램은 내일을 계획할 수가 있어요. 저는 그게 ‘희망’이라고 생각을 하죠. ‘오늘 망했어요’, ‘오늘 실패했어요’ 해도 ‘괜찮아, 내일이 있잖아. 오늘은 여기까지만, 토닥토닥’이 되는 것 같아요. 같은 음악과 멘트를 들어도 늦은 시간에 더 위로가 되는 느낌이 들죠.
그리고 제가 느끼기에는 저녁에 소음이 덜해요. 음악도 DJ의 말도 훨씬 잘 들어와요. 청취자들의 집중도도 훨씬 높달까. 똑같은 음악도 밤에 듣거나 비 올 때 들으면 다가오는 게 다르듯이 청취자한테 조금 더 가깝게 앉을 수 있는 느낌이라 좋은 것 같기도 해요. 하루 중에 지워도 될 것들이 있잖아요. 한낮에는 걱정이나 염려가 많지만 저녁 시간에는 어쨌든 지나갔으니 좀 포기하게 되는 것도 있고. 컬러였던 사진이 흑백사진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며, 토닥이며, 청취자와 함께 울고 웃는 시간. 사연을 통해 커플이 탄생하거나 끊어졌던 부부의 연이 다시 이어지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두운 말들로 마음 쓰이게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프고 시린 순간도 비껴갈 수 없다.
얼마 전 어떤 분이 ‘저 오늘 남편이랑 아이랑 횡성으로 캠핑 왔어요. 맨날 집에서 듣던 거 여기서 들으니까 너무 좋아요. 5월부터 바빠질 거 같아서 마지막 휴가라고 생각하고 왔어요’라고 사연을 보냈는데, 그게 정말 마지막 문자였어요. 캠핑지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일가족이 사망한 사건의 당사자였던 거죠. 본인이 보낸 사연이 방송에 나오는 걸 듣고 좋아라하면서 잠 들었을 텐데… 이분은 제일 좋은 순간을 저희한테 사연으로 보냈던 거예요. 이제 그만 살아야겠다고 보내오는 경우도 되게 많아요. 그럴 땐 그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서 다음 문자가 오는지 계속 확인하게 되죠. 감옥에서 저희 방송을 듣고 위안을 받으며 힘을 내셨던 분이 출소 후 열심히 사시면서 ‘찐팬’으로 함께하고 계시기도 해요. 이렇게 좋을 때나 힘들 때 찾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게 <행복한 동행>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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