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인생 2막

조금 더 공부하려 했을 뿐

초등학교 교사 안소연

신미경 편집위원 / 사진 김선미

인생 2막

조금 더 공부하려 했을 뿐

초등학교 교사 안소연

신미경 편집위원
사진 김선미
三人行必有我師(삼인행필유아사).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다 보면 그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뜻이다. 꼭 길을 걷지 않더라도 세 사람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 사람쯤은 스승으로 삼을 만한 사람이 있다는 말일 테다. 인생 2막이라는 인터뷰를 위해 세 사람이 모였고, 그중 한 사람은 전직 방송작가이자 현직 초등학교 교사인 안소연 선생님이다. 진짜 선생님이다.
2009년 11월 12일 아침 그녀는 막 닫히려는 교문을 향해 뛰고 있었다. 수능시험 날이었고, 어느 사이 서른이 훌쩍 넘은 그녀는 늦깎이 수험생이었다. 교실로 달려 들어가 숨을 몰아쉬고 있으려니, 종이 울렸다. 5분만 늦었더라도 교단에 선 그녀를 인터뷰할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왜 그날 그녀는 수능시험장에 다시 뛰어 들어가야 했는지 궁금함이 밀려왔다.
방송작가로 8년 정도 일을 했던 거 같아요. 원래 중학교 때부터 방송작가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대학을 문예창작과로 갔고, 졸업하고 자연스럽게 방송작가의 길로 들어섰어요. 방송작가 일은 재미있었어요.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했는데, 좀 특별한 거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자료조사를 광범위하게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원고를 쓰는 일들이 적성에 맞았거든요.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데, 돈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일을 하면 할수록 이 일을 계속 하려면 조금 더 전문성을 갖추는 게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그랬어요.
어느 날인가 친구를 만났는데, 그 만남이 제 마음속에 울림을 가져왔어요. 그 친구는 공연 홍보 쪽에서 일을 하던 친구였는데, 저보다 먼저 선생님이 됐죠. 친구랑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교사라는 직업도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을 하는 데다가 결정적으로 안정적이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래서 짧게 고민을 하고 과감하게 결심했죠. ‘교사가 되어야겠다’라고…
교사가 되려면 어떤 방법이 있는지 자료조사를 해보니까, 수능을 봐서 교대에 들어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2008년 12월 연말 특집 프로그램까지 하고, 같이 일하던 팀에 좀 쉬겠다는 선언을 하고선 독서실을 끊었습니다. 처음에 문제집을 딱 펼쳤는데, 문제를 하나도 못 풀겠더라고요. 그래서 중학교 과정을 다시 훑어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11개월 동안 공부하고 시험을 봤어요. 사실, 딱 1년만 투자해보고 교대에 못 가면, 다시 작가 생활로 돌아가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합격통지서를 받아버린 거죠.
그녀의 이야기는 들을수록 흥미진진하다. 교대에 입학해서 열 살 이상 어린 친구들이랑 공부를 할 땐 어땠을까? 사실, 교대 입학 당시 그녀는 드라마 작가와 결혼을 한 상태였고, 학교를 다니면서 임신, 출산, 육아를 병행해야 했다고 한다. 치열했을 그녀의 학교생활을 좀 더 들어봐야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뭘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했나 싶어요. 스무 살 초반의 아이들이랑 경쟁하듯 공부를 했거든요. 동급생들은 부모님이 해주시는 밥 먹고, 학교 다니면서 공부만 하면 되는데, 저는 공부도, 살림도, 육아도 해야 했으니, 여유라는 게 없었죠. 사실 1, 2학년 때는 커리큘럼이 빡빡하긴 해도 놀 수 있는 시간도 많은데, 저는 집안일 해놓고, 육아하다가, 과제하고, 학교 가고 계속 그랬어요. 교대는 과제가 많은 편이에요. 그리고 조별로 모여서 해야 하는 활동도 많았는데, 조별과제 할 때는 정말 힘들더라고요. 제가 아기 엄마라고 해서 빠질 수는 없잖아요.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때 왜 그렇게 이를 악물고 했을까 싶기도 해요. 스무 살짜리 어린 학생들이 봤을 때, ‘저 아줌마 정말 독하다’ 그랬을 것 같아요(웃음). 그래도 그런 시간들이 있어서 오늘 이렇게 아이들과 만나고 있고, 인터뷰도 하게 되네요. 방송 생활하면서는 참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제가 인터뷰를 당하는 주인공이 된 건 처음이거든요.
그렇게 공부해서 초등학교 교사가 된 지 8년이 지났다. 방송작가 생활 8년, 수능시험을 준비를 포함한 학교생활 5년, 그리고 초등학교 교사 생활 8년, 두 직업을 거쳐 온 세월의 저울이 수평을 이뤘다. 방송작가와 초등교사 두 직업의 경험담을 묻기에 딱 적당한 타이밍이 지금이 아닐까 싶었다.
일단, 반 아이들은 제가 방송작가였다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보통 3월 초에 아이들을 처음 만나는 날 ‘다음 중 선생님이 해본 직업이 아닌 것은?’ 하면서 문제를 내거든요. 그때 방송작가였다고 하면 되게 신기해하고 좋아하죠. 그리고 방송작가 하면서 자료조사를 하고 프로그램 기획하는 일들을 계속 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런 능력들이 자연스럽게 교사 생활하는 동안에도 묻어 나와요. 처음에 학생들 가르치는 교안을 작성할 때도 ‘프로그램 큐시트를 작성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그런 생각을 했고요. 학습 교재를 만든다거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을 고민할 때 이왕이면 재미있게 하자면서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도 방송작가였기 때문일 겁니다.
방송작가는 늘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었어요. 같은 프로그램이라도 매번 다른 준비를 해야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러잖아요.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도 인터뷰를 하다 보면 내가 방송작가라는 이유만으로 속내를 다 이야기해준다는 게 신기했어요. 교사는 일단 안정적이고 방학이 있다는 게 제일 매력이겠죠. 그리고 아이들이 1년 동안 학교생활을 통해서 변화해가는 과정을 보는 것도 참 재미있어요. 보람도 있고요. 방송작가랑 교사가 아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작가도 교사도 계속 공부하고 배워야 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죠. 사람을 상대하긴 하는데, 상대하는 사람이 어른에서 아이로 바뀌었다는 점 정도가 차이점일까요?
지금은 일반 시청자의 입장에서 텔레비전을 보게 되는데, 가끔은 ‘저런 프로그램이라면 현장에서 방송작가로 함께 했다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제가 문화 관련 프로그램들을 많이 했었기 때문에, 영화 프로그램인 <방구석 1열>이나 인터뷰가 인상적인 <유 퀴즈 온 더 블록>, 또 강연형식의 프로그램들도 좋아하고요. 준비 과정을 아니까, 섭외하느라 힘들었겠다 싶은 프로그램도 있고요. 참, 제가 동화책을 한 권 썼어요. ≪여기는 바로섬 법을 배웁니다≫라는 책인데, 그 책을 쓸 때도 방송작가였던 점이 도움이 많이 됐지요. 자료조사를 하고 목차를 뽑고 글을 쓰는 데는 두려움이 별로 없으니까요. 올가을에도 책이 한 권 더 나올 예정이에요.
방송작가 대다수가 학부모였거나 학부모이거나 예비 학부모일 테니, 교사의 입장에서 요즘 아이들의 교육법에 대해서 한마디쯤 조언을 듣고 싶었다.
학교는 사실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있는 곳이라는 점이 가장 먼저 전제되어야 해요. 아이들 각각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절제되어야 하는 부분도 있죠. 욕구끼리 부딪혀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요즘에 보면, 아이를 기다려주는 걸 상당히 힘들어하세요. 요즘 자녀가 하나 아니면 둘이라 너무 귀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아이들끼리 학교에서 갈등 상황이 발생하면, 아이들이 그 과정을 통해서 서로 조절하는 것을 배우고, 사과를 주고받고 하면서 공감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럴 시간을 주지 않는 거죠. 학교에서 친구랑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걸 부모님이 나서서 빨리 해결해주려고 하거든요. 학교는 회사랑은 달라서 이슈가 발생했을 때, 빨리 해결하는 게 최종목표가 아닌데, 과정은 생략하고 해결하려고만 하는 부모님들이 있어요. 그런 부모님들께 아이를 믿고 조금 기다려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문제 해결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아이들은 그 부분에서 또 배우는 거거든요.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교사는 삶으로 가르쳐야 한다’ 라고요. ‘정직해야 해. 옆에 사람을 배려해줘야 해’라는 말보다는, 선생님이 어떤 상황에서 정직한 모습, 배려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줬을 때, 아이들이 보고 느끼고 배우고 따라 하게 되는 습득의 과정이 있거든요. 그런 점을 학부모님들도 이해하고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배운다는 것은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고, 가르친다는 것은 남을 다스리는 일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을 다스리는 시기를 지나 남을 다스리는 일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제자가 찾아와 ‘방송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묻는다면, 책을 많이 읽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질 것.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향한 따듯한 시선을 가지라고 이야기해 주겠다는 그녀. 그녀는 여전히 방송작가라는 말에 눈이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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