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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유망한 그 여자는 어디로 갔을까?

<프라미싱 영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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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유망한 그 여자는 어디로 갔을까?

<프라미싱 영 우먼>

손희정 문화평론가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저서 <페미니즘 리부트>(2017), <다시, 쓰는, 세계>(2020), <그런 남자는 없다>(2017)
공저 <대한민국 넷페미史>(2017), <페미니스트 모먼트>(2017), <소녀들>(2017),
<누가 여성을 죽이는가>(2019), <을들의 당나귀 귀>(2019), <원본 없는 판타지>(2020),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2020) 등 번역서 <여성괴물, 억압과 위반 사이>(2017),
<사춘기소년>(2011), <호러 영화>(2011), <다크룸>(2020)

손희정 문화평론가

  •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 저서 <페미니즘 리부트>(2017), <다시, 쓰는, 세계>(2020),
  • <그런 남자는 없다>(2017) 공저 <대한민국 넷페미史>(2017),
  • <페미니스트 모먼트>(2017), <소녀들>(2017),
  • <누가 여성을 죽이는가>(2019), <을들의 당나귀 귀>(2019),
  • <원본 없는 판타지>(2020),
  •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2020) 등 번역서
  • <여성괴물, 억압과 위반 사이>(2017), <사춘기소년>(2011),
  • <호러 영화>(2011), <다크룸>(2020)
시끄러운 클럽. 세 명의 남자가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망할 년(Fuck her). 우린 그냥 골프를 친 것뿐이라고. (고객을) 무슨 스트립 바에 데려간 것도 아니고. 골프 클럽이 여자를 안 받아주는 게 우리 잘못이냐? 내가 걔보다 능력이 있는 걸(better than her) 어쩌라는 거야.”
한 여자를 성토하던 그들의 눈에 또 다른 여자가 들어온다. 잔뜩 취해서 인사불성 상태인 ‘새끈’한 몸매의 여자. 그나마 상식적으로 보이던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간다. “내가 데려다줄게요.” 남자의 말에 여자는 선뜻 따라나선다. 택시에서 남자가 묻는다. “우리 집으로 갈래요?” 집에 도착하자 남자는 몸도 못 가누는 여자의 옷을 벗긴다. 그녀가 소극적으로 거부하지만, 무시해버린다.
반전은 여기에서 일어난다. 축 늘어져서 “뭐 하는 거예요…”라고 중얼거리던 여자가 한순간 또렷해진 표정으로 눈을 뜬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혼자서 잔뜩 흥분한 남자에게 말한다. “야, 너 뭐 하는 거냐고.” 남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이어서 영화 타이틀이 뜬다. <프라미싱 영 우먼(Promising Young Woman)>. ‘전도유망한 젊은 여자’라는 의미다.
주인공 카산드라(캐리 멀리건 분)는 작은 카페에서 일하면서 서른이 넘도록 부모님 집에서 얹혀살고 있다. 낮에는 아무런 영혼 없이 일을 하다가 밤이 되면 거리로 나선다. 클럽에서 만취한 모습으로 남자를 만나고, 집으로 따라가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본다. 백이면 백, 남자들은 그녀의 적극적인 의사 확인도 없이, 때로는 “싫다”는 그녀의 의사에 반하여, 성관계를 시도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강간하려고 한다. 물론 자신의 행동이 강간이라는 인식조차 없다. 여자가 자기 발로 집까지 따라 들어오지 않았는가. 카산드라는 그게 바로 성폭행이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20대의 카산드라는 의대생이었다. 모든 과목에서 월등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부모님의 자랑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의대를 중퇴하고 무엇이 폭력인 줄도 모르는 한심한 남자들에게 교훈을 주러 다니기 시작한 건 친구 니나의 끔찍한 죽음 때문이었다.
7년 전, 니나는 만취 상태에서 의대 동급생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러나 아무도 니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걔는 원래 걸레”였다거나 “여자가 만취했으면, 당할 만하지”라거나 “앞길이 창창한 남학생의 인생을 망칠 순 없다”고 가해자를 옹호했다. 동기들, 교수들, 학장을 비롯한 학교 당국, 그리고 법조인들까지. 이 광대한 카르텔 앞에서 니나는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만다.
법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전도유망’했던 그 여자가 ‘잡년(slut)’이라고 손가락질당하면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후에도 가해자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의사가 되고, 가정을 꾸리고, 잘 먹고 잘 살 때. 남겨진 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카산드라처럼 스스로 자경단이 되어 사적 복수를 감행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카산드라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행하는 전사(戰士)가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예언자로 남겨둔다.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신화 속 예언자 카산드라처럼, 그는 사람을 해치기보다는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고자 한다. 그래서 한국어 버전 포스터에 쓰여 있는 “7년 전 그날, 완벽한 복수를 약속했다”는 카피는 만족스럽지 않다. 누구도 응분의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의 끝, 카산드라는 결국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음으로써 그 지독한 남성 카르텔에 타격을 가한다. 여기서 남성 카르텔이란 ‘남성들만’의 카르텔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폭력을 은폐하고 여성을 피해자로 삼아 유지되는 카르텔을 의미한다. 이것이야말로 영화가 질문의 장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프닝 시퀀스에서의 대화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남성 전용 골프 클럽에서‘만’ 일이 진행된다?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능력의 문제인가? 남성들만을 위한 카르텔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의 문제 아닌가.
다만 ‘완벽한 복수’를 ‘완벽하게 현실을 반영한 복수’라고 읽는다면 설득력 있다. 이 사회에서 여성들이 용기를 내어 성/폭력을 고발했을 때 빈번하게 대면하는 것은 사회적 살인이다. 자신의 발로 가해자들의 ‘소굴’로 찾아가 진실을 폭로하는 대단한 용기를 냈기 때문에 결국은 베개에 깔려 숨을 거둬야 했던 카산드라의 죽음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프라미싱 영 우먼>은 우리가 성폭력 판결에서 흔하게 들어왔던 ‘전도유망한 청년(promising young man)’이라는 말을 뒤튼다. 이 영화는 2021년 아카데미를 비롯하여 영국 아카데미, 미국 작가 조합상, 크리틱스 초이스, LA 비평가 협회상 등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여전히 강력하게 설득력 있는 주제의식이자 이야기라는 의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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