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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 ·

한 시대의 여왕에 대한 쓸쓸한 회고

영화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 재즈 ·

한 시대의 여왕에 대한 쓸쓸한 회고

영화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황덕호 재즈 칼럼니스트

  • 1999~현재 KBS 클래식FM <재즈수첩> 진행
  • 저서 ≪그 남자의 재즈 일기: 재즈 입문자를 위한 명반 컬렉션≫
  • ≪당신의 첫 번째 재즈 음반 12장≫ 시리즈
  • ≪다락방 재즈≫ 역서
  • ≪재즈: 기원에서 오늘날까지≫
  • ≪빌 에반스: 재즈의 초상≫
  •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
  • 경희대학교에서 재즈의 역사와 대중음악사 강의 중
  • 독일과학교육부 주관 과학경연대회 ‘사이언스슬램’ 2014년 우승
  • 저서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 , ≪뇌는 춤추고 싶다≫
  • 공저 ≪십대, 미래를 과학하라!≫

황덕호 재즈 칼럼니스트

  • 1999~현재 KBS 클래식FM <재즈수첩> 진행
  • 저서 ≪그 남자의 재즈 일기: 재즈 입문자를 위한 명반 컬렉션≫
  • ≪당신의 첫 번째 재즈 음반 12장≫ 시리즈
  • ≪다락방 재즈≫ 역서
  • ≪재즈: 기원에서 오늘날까지≫
  • ≪빌 에반스: 재즈의 초상≫
  •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
  • 경희대학교에서 재즈의 역사와 대중음악사 강의 중
  • 독일과학교육부 주관 과학경연대회 ‘사이언스슬램’ 2014년 우승
  • 저서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 , ≪뇌는 춤추고 싶다≫
  • 공저 ≪십대, 미래를 과학하라!≫
1920년 미국에서는 음반의 역사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건 하나가 벌어졌다. 아프리카계 여성 가수 매미 스미스(1891~1946)의 음반 <크레이지 블루스 Crazy Blues>가 7만 5천 장의 판매를 기록한 것이었다. 당시 10인치 음반 한 면에 한 곡씩을 담은 78회전 음반(보통 SP라고 불린다)은 보통 판매 5천 장 정도가 손익분기점이었으니 <크레이지 블루스>의 판매량은 손익분기점의 15배를 뛰어넘는 기록이었다. 이로써 흑인들을 위한 흑인 아티스트의 음반은 절대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편견은 보기 좋게 깨지고 말았다.
그러한 편견은 당시로서는 누구나 빠지기 쉬운 함정이었다. 1920년대는 약 300년 동안 유지되던 노예제가 끝난 지 불과 50여 년밖에 되지 않은 때였고 미국 남부 11개 주에서는 여전히 유색인들을 ‘합법적으로’ 차별하는 소위 ‘짐 크로 법’(Jim Crow law)이 시행되던 때였기 때문이다. 이 차별법을 피해 약 600만 명의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남부를 떠나 북부의 대도시에 도착했지만 당연히 그곳에도 존재하던 인종차별은 이들을 고립시켰고, 이들이 거주하는 공동체는 경제적으로 열악한 게토로 남아 있었으니 이들이 축음기와 음반을 살 것이라는 기대는 대부분의 음반 제작자였던 백인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달랐다. 흑인들을 위한 ‘언더그라운드’ 시장을 모험적으로 두드렸던 오케이 레코드가 <크레이지 블루스>를 히트시키자 블랙 스완, 파라마운트 등 같은 계열의 독립 음반사들이 연이어 등장했고 컬럼비아, 보컬리온, 브런즈윅, 빅터 레코드와 같은 메이저 음반사들은 ‘레이스 레코드(Race Records)’라는 별도의 카탈로그를 만들어 흑인음악 시장 공략에 뛰어들었다. 1920년대 통계를 보면 레이스 레코드의 연간 판매량은 무려 1천만 장에 이르렀는데 그것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한 사람당 음반 한 장씩을 구매한 셈이다. 이 점은 1920년대 미국 흑인들이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음악과 그것을 통한 보다 자유로운 삶에 대해 얼마나 뜨거운 열망을 갖고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올해 넷플릭스를 통해 배급된 영화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원제는 Ma Rainey’s Black Bottom, 조지 울프 감독)는 바로 이 시절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영화에서는 ‘핫 리듬 레코드’라는 가상의 음반사가 등장하지만, 실제 파라마운트 레코드가 1923년 마 레이니와 계약한 것은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블루스의 어머니’라고 불렸던 마 레이니(1886~1939)는 19세기 말 12마디 형식으로 정착된 블루스를 1902년부터 당시 보드빌이라고 불렀던 순회공연 무대에서 부르면서 남부 흑인 공동체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원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첫 녹음을 남긴 1923년 12월은 매미 스미스의 <크레이지 블루스>가 등장한 지 3년 반 뒤였고, 심지어 레이니의 코러스에서 노래하던 베시 스미스(1894~1937)보다도 열 달 늦은 녹음이었다. 마 레이니는 이제 곧 ‘블루스의 여제’라고 불리게 되는 베시 스미스에게 자신이 블루스를 가르쳐 주었다고 주장했고 그러한 주장은 법적 분쟁마저 일으켰는데 이러한 갈등은 ‘원조’로서 레이니가 갖고 있던 자부심, 스타로서의 자존감 하지만 레코드 업계가 자신을 너무 늦게 알아봤다는 불만, 흑인으로서의 근본적인 상처 등이 뒤엉킨 결과였다.
심지어 어거스트 윌슨이 대본을 쓴 1982년 연극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1927년, 그러니까 녹음 4년 차에 접어든 마 레이니(비올라 데이비스 扮)의 레코딩 세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미 40대의 나이에 접어든 레이니의 인기는 이제 끝물을 향해 가고 있었고, 그래서 자부심과 불안감이 뒤섞인 그녀의 심리는 녹음 현장에서 까탈스러운 돌발적 조건들을 요구했다. 음반 제작진은 이 퇴물 가수의 요구를 어디까지 들어줄지 계속 머리를 굴렸으며 밴드의 젊은 코넷 주자 레비 그린(故 채드윅 보즈먼)은 나이든 밴드 선배들의 음악, 인생 경험을 모두 무시하면서 별도로 자신의 밴드로 음반사와 계약하고 레이니의 조카를 유혹할 생각에만 몰두하고 있다.
가상의 인물 레비를 보면서 나는, 전혀 다른 캐릭터의 인물이지만, 루이 암스트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면 그는 스물두 살의 나이로 마 레이니의 녹음을 반주해 주었고 2년 뒤에는 베시 스미스의 녹음에서도 연주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과감한 즉흥연주는 대공황 이후 블루스의 여왕들이 사라지고 난 뒤 재즈란 이름으로 살아남아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영화 속 레비는 암스트롱과 같이 자신의 시대를 맞이하지 못한다. 그의 앞에 버티고 있던 완고한 인종차별과 그 속에서 어느덧 자라난 자기 파멸의 성향 때문이었다. 그는 영화 속의 인물이었지만 현실에서도 레비를 닮은 수많은 무명의 흑인 음악인들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그는 현실의 루이 암스트롱보다 더 현실적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1920년대와 함께 사라진 블루스의 여왕들 그리고 당시의 연주자들 앞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100년 뒤인 오늘날까지도 버티고 있는 인종차별의 빙벽임을 영화는 이야기해주고 있다. 제작은 덴젤 워싱턴, 음악은 브랜퍼드 마설리스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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