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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과학 ·

뇌과학자의 편지

어떤 기억이 마지막까지 남을까

· 뇌과학 ·

뇌과학자의 편지

어떤 기억이
마지막까지 남을까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

現 궁금한뇌연구소 대표
前 현대자동차그룹 전략기술본부 미래기술전략팀장
前 미국 Rutgers대학교 인지과학연구센터 연구원
독일 막스플랑크 뇌공학연구소 인간 지각·인지 및 행동 박사
독일 콘스탄츠 대학교 신경생물학 석사
tvN 알쓸신잡 시즌2, 어쩌다어른 등 다수 방송 출연
독일과학교육부 주관 과학경연대회 ‘사이언스슬램’ 2014년 우승
저서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 ≪뇌는 춤추고 싶다≫
≪십대, 미래를 과학하라!≫ (공저)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

  • 現 궁금한뇌연구소 대표
  • 前 현대자동차그룹 전략기술본부 미래기술전략팀장
  • 前 미국 Rutgers대학교 인지과학연구센터 연구원
  • 독일 막스플랑크 뇌공학연구소 인간 지각·인지 및 행동 박사
  • 독일 콘스탄츠 대학교 신경생물학 석사
  • tvN 알쓸신잡 시즌2, 어쩌다어른 등 다수 방송 출연
  • 독일과학교육부 주관 과학경연대회 ‘사이언스슬램’ 2014년 우승
  • 저서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 ≪뇌는 춤추고 싶다≫
  • ≪십대, 미래를 과학하라!≫ (공저)

태어나기 전의 일들을 우리의 뇌는 기억하고 있을까요?
시인 칼릴 지브란의 <광인 The madman> 중에 “다른 세상의 언어 The other language”라는 우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갓 태어난 아기는 태어나기 전 세상의 언어를 기억하지만 사람들은 아기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지요. 시간이 지나 아기가 이 세상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면 태어나기 전의 언어는 기억하지 못하게 됩니다.

정말로 아기는 태어나기 전의 기억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을까요? 흥미롭게도 이를 연구한 뇌 과학 논문이 있습니다. 2014년에 발표된 한 논문에서 캐나다 맥길대학교의 연구진들은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에 입양된 아이들의 뇌를 각각 중국어와 프랑스어가 모국어인 다른 사람들의 뇌와 비교했습니다. 이들의 뇌가 중국어를 들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았지요. 태어나자마자 프랑스로 입양된 아이들은 중국어를 어머니 뱃속에서 태아로 들은 기억밖에 없을 텐데, 신기하게도 이들의 뇌는 프랑스어보다는 중국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의 뇌와 비슷한 패턴으로 반응했습니다. 입양된 아이들은 프랑스에서 자라나 중국어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음에도 그들의 뇌 안 무의식 속에 태아 때 들었던 언어의 기억은 남아 있었던 것이죠.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몇 살 때까지 기억이 나나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의식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기는 만 2세에서 4세까지라고 합니다. 그 이전의 기억은 아무리 노력해도 떠올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요. 왜 그럴까요?
우리의 뇌는 한 가지 종류의 기억 시스템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기억 시스템을 지니고 있습니다. 먼저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을 분류할 수 있는데, 어린 아기 때는 장기 기억의 형성이 아직 발달하는 중입니다. 평균적으로 6개월 된 아기들의 경우는 어떤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을 가르쳐줘도 24시간 정도는 기억하지만 48시간 이후에는 기억하지 못하고, 9개월 된 아기들의 경우는 1개월 정도까지는 기억하지만, 3개월 이후에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요. 반면 20개월이 지난 아기들의 경우는 1년이 지나서도 가르쳐준 행동을 기억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잘 못 하는 이유는 그 시절에 장기 기억의 형성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기억의 분류는 ‘명시적 기억’과 ‘암묵적 기억’으로도 하는데, 명시적 기억 안에는 우리가 이야기로 표현할 수 있는 일화 기억이나 의미 기억, 자전적 기억이 포함되지요. 나는 누구였으며, 주변에 무엇이 있었고, 내가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언어적 개념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나이는 아마도 우리의 뇌가 세상을 언어로 인지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된 시기와 대략적으로 일치합니다. 다른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남들과 구분해 스스로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게 되는 시기라고도 하지요. 태아 때 들었던 소리나 음악처럼 무의식적으로는 뇌 안에 남아있지만 우리 스스로도 인지하거나 말로 표현할 수는 없기에 명시적 기억은 아닙니다.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기의 의식적인 기억은 자아, 그리고 언어의 발달과 관련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기억은 어떤 기억일까요? 바로 암묵적 기억입니다. 암묵적 기억 안에는 자전거를 타거나 수영을 하는 것처럼 우리 몸이 기억하는 ‘절차 기억’과 우리가 경험했던 아픔이나 행복처럼 감정과 느낌으로 남는 ‘정서 기억’이 포함되지요. 노년에 치매가 진행되어 자신이 누구인지도 망각하고 주변 가족들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어린 시절 좋아했던 노래와 음악은 기억합니다. 좋아하던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하기도 하고, 일어나서 춤을 추기도 하지요. 그리고 가족이 누구인지 기억하지는 못해도 그들과 공유했던 감정의 기억은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던 가족을 만나면 알아보지는 못해도 힘이 나고 밝아지며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요.
최근에 유튜브에 올라온 한 비디오에서는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걸린 한 할머니가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음악을 듣는 순간, 갑자기 자신이 젊은 시절 발레리나로 춤추던 동작들을 따라 합니다. 허공을 바라보는 듯 무디던 눈빛이 갑자기 변하더니 음악에 맞춰 발레리나의 우아한 손짓,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의 눈물 머금은 표정 연기까지 보여주지요. 우리의 뇌 안에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 있는 기억이 음악과 춤, 그리고 감정으로 표현되는 암묵적 기억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더없이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마지막까지 남는 기억은 한 사람의 뇌를 뛰어넘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함께 한 사람들과 다양한 기억들을 공유합니다. 내 안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일 수도 있지요. “기억해 줘 내가 어디에 있든, 슬픈 기타 소리 따라, 우린 함께 한다는 걸 언제까지나” 영화 <코코>에서처럼 내가 정말 사라지는 순간은 아무도 나를 기억해주지 않을 때일지 모릅니다. 진실한, 깊은 감정들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 그들의 뇌는 이 감정의 기억을 마지막까지 함께 가지고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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