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인생 2막

초라해질 수 있는 용기

오가든스(Ohgardens) 대표
오경아 가든 디자이너

김윤양 책임 편집위원 / 사진 김선미 / 장소협조 돈암동 밀리그램

인생 2막

초라해질 수 있는 용기

오가든스(Ohgardens) 대표
오경아 가든 디자이너

· 김윤양 책임 편집위원
사진 · 김선미
장소협조 · 돈암동 밀리그램

유난히 꽃나무를 잘 키우는 사람이 있다. 나무의사 우종용은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으로 ‘항상 관심 있게 나무를 지켜보며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다. ‘품 안에 두지 않고 거리를 두되, 늘 지켜보면서 나무가 필요로 하는 것들에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정원 디자이너로 인생 2막을 연 오경아 작가는 어떠했을까. 아마도 그녀 역시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지난 2005년, 인기 최정상의 MBC라디오 <지금은 라디오 시대>를 집필 중이던 오경아 작가는 16년간의 방송 생활을 그만두고 유학을 결심했다. 휴식이 필요했다면 유학까진 아니어도 됐고, 유학이 간절했다면 오랫동안 공부하고 싶은 분야였을 터. 그러나 둘 다 아니었다.
제가 일했던 8년 내내 청취율 1위를 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8년쯤 하다 보니 책상에 앉아 있는데 계속 같은 글을 쓰고 있더라고요. 앞으로 10년간 똑같은 일을 할 수 있을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지만 건강도 안 좋아지고 있었어요. 체력이 약해지니까 비염, 축농증 같은 질환들이 이전보다 증세가 더 심해지더라고요. 마음을 먹었다고 바로 그만둔 건 아니고요, 완전히 그만두기까지 5년이 걸렸어요. 쉬기로 결심하면서 그 시간 동안 뭘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문득 정원 일을 배우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송일 하랴 아이 둘 키우랴 바쁘게 살면서도 퇴근하면 꼭 정원에서 일하다가 해가 질 무렵에야 집안으로 들어가곤 했거든요. 알아보니 국내에선 어렵고 해외로 나가야겠더라고요. 그래서 부랴부랴 유학 준비를 했어요. 꼭 정원공부를 하려고 일을 그만뒀다기보다는 완벽하게 그만둘 계기가 필요했어요. 가든 디자인 분야가 얻어걸린 거죠.
그리고 부모님의 영향도 있었어요. 부모님이 두 분 다 50대에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워낙 지병이 있으셔서 합병증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술을 드시고 마당에서 쓰러지셔서 사고사에 가깝게 돌아가셨어요. 예순도 안 된 부모님 두 분을 다 잃고 나니 형제들에게 트라우마가 남았어요. 아무도 내일을 보장해줄 수 없다. 우리도 부모님처럼 단명할 수 있다… 내일을 모르는데 10년 후 계획이 무슨 의미가 있나. 오지 않은 미래의 잉여를 비축하기 위해 온갖 보험을 들며 현재를 너무 힘들게 살 필요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 오늘 하고 싶은 일을 하자. 무언가를 결심했을 때 즉시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초등, 중등 두 아이를 데리고 떠난 영국유학길. 흔쾌히 동의해준 남편이 있었고, 이번만큼은 다른 일을 해보겠다는 의지도 강했다. 영국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은 좌충우돌이었지만 공부는 재미있었다. 직업을 바꿀 마음으로 시작한 건 아닌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확고해졌다.
은행에 통장을 개설하러 갔는데 통장을 안 주더라고요. 서류를 다 줬는데 왜 통장을 안 주는 거야? 알고 보니 ‘bank account’라고 한 달에 한 번씩 거래 내역을 A4용지에 인쇄해 우편으로 보내주더라고요. 우리나라가 통장이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라고 해요. 또 기차표를 사면 자꾸 ‘싱글이냐’고 묻는 거예요. ‘기차표 사는데 그걸 왜 묻지?’했는데 편도인지 왕복인지 묻는 거더라고요(웃음). 애들 교육제도도 너무 달라서 애들이 뭘 공부하는 줄 모르겠더라고요. 다행히 제가 한국에서도 ‘집착은 한다, 케어는 하지 않는다’ 주의였어요. 위험한 것, 안전에 관련된 것은 꼼꼼히 챙겼지만, 그 외에는 제어를 거의 하지 않았어요. 한국에서는 바빠서 못했는데 영국에서는 제가 적응을 못하니까 아이들을 케어할 상황이 안 되는 거죠. 아이들이 한두 달 지내고 나서 ‘엄마 믿으면 안 되는구나’ 싶었는지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나가더라고요. 공부는 오히려 쉬웠어요. 배우고자 하는 분야가 확실하니까 헤매면서도 좋았어요. 그렇다 보니 생각보다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7년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돌아온 지 9년. 현재 오경아 작가는 한국에 정원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며 정원디자인 회사 ‘오가든스쿨’을 운영하고 그간 다수의 정원을 디자인했다. ‘오경아의 정원학교’를 운영하며 가드닝 강의를 하는 한편,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알기 쉽게 원예의 기술을 접할 수 있도록 가드닝 안내서 ≪정원의 발견≫을 비롯한 여러 저서를 펴내기도 했다.
아파트 브랜드 회사에서 정원디자인을 의뢰할 때도 있고, 상업공간의 정원을 디자인하기도, 또. 서울시에서 식물원을 만들려고 하는데 디자인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물을 때도 있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 의뢰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럼 건물과 정원의 관계부터 풀어주고, 정원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했으면 좋겠는지, 어떤 조형물이나 시설물을 설치하고, 식물은 어떻게 심을지 전반적인 디자인 작업을 합니다. 더 세분화시켜 설계하는 부분은 다른 설계팀과 함께하고 저는 디자인에만 집중하는 편이에요. 정원 일을 오래전부터 해온 분들은 많이 계신데 저처럼 디자인으로만 특화해서 영역을 확대한 분들은 많진 않아요. 이전에는 디자인을 따로 하지 않고 설계하는 팀이 디자인을 내놓다 보니 비슷한 디자인이 반복된다거나 특화된 디자인이 이뤄지지 않았던 거죠. 저는 디자인 할 때 사진을 찍어서 얼마나 예쁜 풍경을 만들어내나 이런 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보다 정원 안에 사계절을 담으려고 노력해요. 정원 안에서 생활하는 분들이 계절별로 식물이 계속 바뀌는 모습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길 바라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디자인을 하다 보니 점점 저만의 디자인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정원을 디자인하고 책을 쓰는 이유도 마찬가진데 정원 생활이 우리 삶 속에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정원을 좋아하면서 제 삶이 변했듯 우리 삶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오경아 대표의 가드닝 작업 (사진_인터뷰이 제공)
대학 졸업 후 가진 첫 직업이었던 라디오 작가, 그리고 30대 후반에 공부를 시작해 새롭게 시작한 정원 디자이너. 두 가지 일은 분명 전혀 다른 일이지만 오경아 작가에게 방송작가로 활동했던 경험은 정원 디자이너로의 삶에 큰 힘이 되었다.
방송작가들은 되게 창의적이고 변화에 대처가 빨라요. 그러니 다른 일을 한다면 누구보다 빨리 찾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고, 어느 곳에서도 본인의 일을 잘할 수 있는 그룹이죠. 스타트업을 해도 제일 잘할 걸요? 제가 영국으로 가기로 결심할 때 제일 힘들었던 게 있어요. 학비가 드니까 경제적인 것을 가장 고민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그 앞에 하나가 더 있더라고요. 그게 뭐였냐면 제가 초라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방송작가로 16년을 살았는데 ‘무직’이 되는 거잖아요. 영국으로 가더라도 작가로 살면서 누렸던 포지셔닝을 잃는 건데 그걸 내려놓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걸 내려놓지 않으면 새로운 일을 할 수 없어요. 끊임없이 로망으로만 가져가게 되겠죠. 물론 그걸 내려놓고 영국에 가서도 끊임없이 갈등이 되거든요. 영국에서 8시간 동안 잡초를 뽑다가 ‘내가 잡초 뽑으러 왔나’ 싶고요. 그런데 다시 시작되는 시간이 없으면 다른 게 만들어지지 않더라고요. 초라해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요. 그게 선행되면 나머지 경제적인 건 집을 팔건 돈을 빌리건 다 해결할 수 있어요. 만일 어느 순간 방송 일을 공무원처럼 하면서 이걸 그만두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진 마세요. 전 국민이 정규직일 필요는 없잖아요. 방송작가는 변신이 가능한 게 엄청난 특권인데 내려놓지 않으면 트랜스포머가 될 수 없어요. 얼마든지 다양한 영역에서 강점을 가질 수 있어요. 잠시 초라해질까 봐 걱정하지 마세요. 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일을 잃는 게 아니에요. 저는 방송작가들이 그런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딸들에게도 자신에게도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하고자 하는 일을 하면서 살자’고 주문을 외운다는 오경아 작가. 그녀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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