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여기 이 작가

글쓰기의 기꺼움에 대하여

KBS <오! 삼광빌라!> 윤경아 작가

신미경 편집위원 / 사진 김용철 / 장소협조 여의도 Appendix

여기 이 작가

글쓰기의 기꺼움에 대하여

KBS <오! 삼광빌라!>
윤경아 작가

· 신미경 편집위원
사진 · 김용철
장소협조 · 여의도 Appendix

의인법이었다.
“대본은 유기체라고 하잖아요. 나도 모르게 내가 만든 이 아이가 하나씩 옷을 입힐 때마다 나조차도 예상할 수 없는 아이로 성장을 해가면서 변모되고 스스로 진화되어 가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예요. 드라마 작가라면 누구나 느끼실 거예요.”
그녀가 작품 속 캐릭터에 얼마나 애정을 쏟고 있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드라마 종영 후 드라마 작가의 일상은 휴식의 연속일 거라고 막연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일상으로 금세 돌아간 윤경아 작가는 아내였고 엄마였다. 어제까지 치열하게 드라마 작가로 살았다면 오늘은 일상으로 돌아와 덤덤하게 살아내는 것 역시 그녀의 역할이었다. 주말 드라마 집필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그녀를 만났다

<오! 삼광빌라!> 종영 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처음에는 끝났다는 게 실감이 안 났어요. 드라마 작업할 때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바로 컴퓨터를 켜서 원고 쓰고 그랬기 때문에 다음 날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쓸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평소처럼 지냈는데,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드라마 속 캐릭터들과 이제는 만날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서운하고, 아쉽고, 그제야 그리운 마음이 들더군요.

<오! 삼광빌라!>에 대한 구상은 언제부터 하신 건가요?

1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사실 이전에 ‘삼광빌라 연애사건’이라는 미니시리즈를 구상해놓은 것이 있었거든요. 주말 드라마에 비해 호흡이 짧은 미니시리즈용 구성에 다양한 캐릭터를 추가해서 주말드라마용으로 확장해 나간 거죠. 이때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랄까 혈육이 아닌 사람들이 모인 그런 유사가족 이야기를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방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갔죠. 새로운 형태의 가족에 대한 생각은 어린 시절 산동네에 살았던 기억이 바탕이 됐어요. 지금이야 쉐어 하우스라는 근사한 말이 있지만, 그때는 그런 시절이 아니었어요. 형편상 한 집에 9가구가 모여 살면서 공동수도를 사용하고, 그러다 보니 네 집 내 집 할 것 없이 서로 드나들면서 살았죠. 그 덕분에 앞집에 누가 왜 우는지, 뒷집 할머니네 무슨 일이 있는지 다 알았거든요. 그때 기억을 해보면, 피가 섞여야만 가족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생각을 쭉 해왔고, 언젠가 그 시절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이번에 <오! 삼광빌라!> 대본을 쓰면서 그 일부분이 반영된 거고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라는 말을 들으니, 인연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전에는 운명 같은 인연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영원히 오래 갈 것만 같았던 인연도 내일 당장 이 사람과 이야기하다가 어긋나서 그게 마지막 만남이 될 수도 있고, 인연이라는 게 그런 거더라고요. 어쩌면 날씨와도 같이 종잡을 수 없는 게 인연인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인연에 너무 큰 의미를 둘 필요도 없고, 그때그때 만나는 사람에게 잘하고, 만나는 순간순간이 소중하다고 여기면 된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됐습니다. 어쩌면 인연 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있어서, 짧은 시간 동안 자주 만나다가 다시는 안 보게 되는 사람도 있고, 3개월, 6개월에 한 번씩 만나더라도 몇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요.

그동안 많은 드라마를 써오셨지만, 코로나 시기에 50부작 드라마가 좋은 반응을 얻고 또 무사히 끝났다는 게 참 대단한 일인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을 하는 동안 힘드셨던 점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저는 대본을 계속 써야 하니까 현장에 있지는 않았는데, 현장에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감독님이나 배우들 그리고 현장의 스태프들까지 매번 백여 명이 넘는 인원이 모여서 촬영을 하니까 혹시라도 일이 생기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는 마음이 늘 있었어요. 그래서 아침에 노트북을 켤 때마다 우리 제작진들 큰일 없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면서 대본을 쓰곤 했죠. 이번 드라마를 쓰면서 힘들었던 점은, 주말 드라마다 보니까 매회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게 힘들다면 힘들었는데, 그게 또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고 좋아하는 일이니까 기꺼이 감당했어요. 등장인물이 워낙 많은 작업이라서 남녀 주인공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가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쓰려고 했던 것도 생각이 나요. 등장하는 배역들이 저마다 나름의 무게를 가지고 연기할 수 있도록 배분하려고 했는데, 많은 분들이 다양한 캐릭터를 좋아해 주셔서 제 의도가 전달된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주말 드라마에는 정말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대사는 어떻게 풀어나가시나요?

대사를 특별히 수집한다거나 그러진 않는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 마음속에 축적이 되어 있을 것이고, 그게 바탕이 돼서 대사로 나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극 초반 대본에는 조금 모호한 형태로 대사를 써놓거든요. 그런 후 캐릭터에 맞는 배우가 선정되고 그 배우들이 연기를 시작하면, 오히려 캐릭터가 선명해지고 방향성이 잡혀서 대사가 저절로 나오는 경우가 있지요. 어떨 때는 내가 내 대본을 쓰고 있는데도, 대사가 안 떠오르고 안 써지고, 캐릭터가 전혀 안 움직이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 ‘참 이상하다. 왜 안 풀리지?’ 싶은데, 집중을 더 해보면, 답이 나와요. 그 캐릭터가 그런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은 거예요. 어느 정도 생명을 부여하게 되면 캐릭터가 스스로 진화를 하거든요. 인교진 씨가 연기한 ‘학세’라는 캐릭터가 그랬어요. 만정이(김선영 분)가 언니한테 대들고 막 대하는 부분에서 학세는 기본적으로 착하니까 무조건 만정이 편을 들 것만 같았거든요. 그런데 만정에게 ‘그럼 안 돼요. 언니에게 그러면 안 되죠’하고 완고하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이 부분은 저 스스로도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학세(인교진)가 기본적으로 착한 사람이지만, 만정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만정이가 잘못되는 걸 원치 않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런 대사가 저절로 나올 수 있었던 거죠.

마지막 회에서 삼광빌라 안주인 이순정(전인화 분)이 장편소설을 내고 소설가로 데뷔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혹시 작가 본인의 모습이 투영된 것은 아닌가 싶더라고요.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죠. 사실 이 부분에 대한 설정은 앞에서부터 깔아놓았던 설정이에요. 그런데 매회 다양하게 얽혀있는 등장 인물들에게 이야기를 부여하다 보니, 계속 밀려서 마지막에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됐죠. 순정 씨가 소설가가 되는 부분은 사실 꼭 쓰고 싶었어요. 주말 드라마에 나오는 평범한 아주머니이긴 하지만, 누구나 꿈이 있었던 시절이 있잖아요. 그래서 시청자들도 이순정이라는 캐릭터를 보면서 ‘아, 그래. 나는 꿈이 뭐였지?’ 하고 떠올려보는 계기가 되고, 지금이라도 다시 도전할 마음이 생기면 좋겠다…. 그런 생각으로 넣은 부분이에요.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글을 쓰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사람들이 결국은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고 하잖아요. ‘윤경아’에서 ‘윤경아 작가’가 될 수 있도록 글을 쓰게 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처음에는 우울함에서 글이 시작된 것 같아요. 일상이 막 바쁘고 그랬는데도 삶에 대한 우울함, 무의미함이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어린 시절 이야기를 그냥 막 써나갔어요. 산동네에 살았던 디테일한 기억 같은 것들을 그대로 묘사한 거죠. 그런데 어느 순간에 보니까 그게 드라마 대본의 형태더라고요. 대본 중에 사투리가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을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때 작가 지망생이었던 친구에게 원고를 보여주고 사투리가 ‘이대로 괜찮냐’고 물었더니, 사투리도 잘 썼고, 대본 자체도 재미있고 좋다고, 본격적으로 한번 해보라고 용기를 주더라고요. 다른 사람들보다 늦은 나이였거든요. 그런데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방송작가교육원을 찾아 등록을 하고 그렇게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왔네요.

앞으로 또 쓰고 싶은 드라마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드라마 끝나자마자 다른 드라마 쓸 생각을 해요. 시작은 ‘이게 이렇게 되면 어떨까?’ 하는 작은 생각에서 출발하죠. 생각의 단초 하나하나가 모여서 이야기가 되고, 드라마가 되는 게 아직도 너무 재미있고, 쓸 이야기가 무궁무진해요. 오늘 인터뷰가 끝나고 집에 가서 청소하고 저녁준비 하면서도 계속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숨 쉬듯이 할 거고, 결국엔 그 생각들이 드라마가 되리라고 믿어요.

윤경아 작가

데뷔작
2003 KBS 드라마시티 <윌리엄을 위하여>
2004 MBC 베스트극장 극본공모 가작<훈풍>
2005 KBS 드라마시티 <춘영>
2008 MBC 미니시리즈 극본공모 가작 <다중인격, 심재복>
2010 KBS 미니시리즈 <공부의 신>
2011~2012 KBS 미니시리즈 <브레인>
2013 MBC 미니시리즈 <메디컬 탑팀>
2015~2016 kbs 주말드라마 <부탁해요 엄마>
2017 KBS 미니시리즈 <완벽한 아내>
2017 KBS 8부작 <란제리 소녀시대>
2019 JTBC 미니시리즈 <열여덟의 순간>
2020 KBS 드라마스페셜 <고백하지 않는 이유>
2020~2021 KBS 주말드라마 <오! 삼광빌라!>

윤경아 작가

  • 데뷔작
  • 2003 KBS 드라마시티 <윌리엄을 위하여>
  • 2004 MBC 베스트극장 극본공모 가작<훈풍>
  • 2005 KBS 드라마시티 <춘영>
  • 2008 MBC 미니시리즈 극본공모 가작 <다중인격, 심재복>
  • 2010 KBS 미니시리즈 <공부의 신>
  • 2011~2012 KBS 미니시리즈 <브레인>
  • 2013 MBC 미니시리즈 <메디컬 탑팀>
  • 2015~2016 kbs 주말드라마 <부탁해요 엄마>
  • 2017 KBS 미니시리즈 <완벽한 아내>
  • 2017 KBS 8부작 <란제리 소녀시대>
  • 2019 JTBC 미니시리즈 <열여덟의 순간>
  • 2020~2021 KBS 주말드라마 <오! 삼광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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