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지금 이 작품

당신과의 밥 한 끼는 소중하다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이윤희 작가

글·사진 김선미 편집자 / 장소 협조 홍대 카페 아올

지금 이 작품

당신과의 밥 한 끼는 소중하다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이윤희 작가

글·사진 · 김선미 편집자
장소 협조 · 홍대 카페 아올

‘밥 한번 먹자’는 인사가 이렇게 어색해질 줄 알았을까. 맛집 투어는커녕 소소하게 근황을 전하며 가볍게 나누는 한 끼 식사 약속도 쉽지만은 않은 요즘, 한 낭만 식객이 선사하는 밥 한 끼의 여정이 시청자들을 위로한다. 그리운 손맛, 상 위로 오가는 이야기, 그 안의 웃음과 눈물에, 화창한 어느 날 가벼운 옷차림으로 만나 오랜만에 나누는 밥 한 끼가 더욱 간절해지는 봄이다.
이런 교양 프로그램의 경우 한 제작사가 기획부터 책임지고 시작해 모든 회차를 오롯이 제작을 하는 건 드문 일이에요. KBS <한국인의 밥상>을 오래 했던 회사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팀장도 <한국인의 밥상> 출신이에요. 음식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는 팀에서 출발한 거죠.
2019년 5월 14일 첫 방송으로 출발해 지난 4월 23일 100회를 맞이한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이하 백반기행). 강지숙 작가가 파일럿부터 1년간 맡아 이끌어오던 것을 지난해 이윤희 작가가 이어받았고, 어느새 또 1년이 흘렀다. 2003년 KBS <이것이 인생이다>로 방송 일을 시작한 이윤희 작가는 KBS , <생로병사의 비밀>, 스카이트래블 <한식기행, 종부의 손맛>, EBS <아빠타 시즌 1,2>, <동남아 살아보기>, <싱어즈> 등 다양한 교양 프로그램을 두루 거쳤고, 지난해 다큐멘터리로는 최초로 넷플릭스와의 협업을 통해 오리지널 콘텐츠 <삼겹살 랩소디>를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다. 외국인들이 삼겹살에 열광하는 이유를 찾고 우리나라 불판 문화를 정립해본다는 색다른 접근이 유효했을 것이라는 이윤희 작가는 <백반기행>에서도 우리 안의 음식문화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백반기행>은 철저히 가성비가 핵심인 프로그램이에요. 저 식당에 가면 누가 가도 그 돈을 내고 저렇게 먹을 수 있는 거죠. 적당한 가성비에, 웬만하면 엄마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오래된 노포여야 하고, 맛은 기본이죠. 표면상으로는 허영만 선생님과 게스트가 주인공이지만 사실 주인공은 음식, 그리고 음식을 만드는 주인장이 되는 거예요. 김치찌개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나왔겠어요. 하지만 어디에서는 6개월 된 김치를, 또 어디에서는 10년 묵은지를 쓰죠. 어떤 고기가 들어가는지도 다 달라요. 앞다리를 매일 아침에 삼천 번을 쳐서 연하게 만든 미사태라는 게 있는데 그렇게 해서 내는 가게가 있단 말이죠. 결국 가장 많은 공을 들이는 건 음식이고 그 주인장의 캐릭터가 되는 거예요. 신념이 없으면 그게 안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또 한 가지 중요한 게 있다면, 허영만 선생님 입맛에 맞느냐 하는 거예요. 어쨌든 프리젠터는 허영만 선생님이니 이분이 맛있게 드실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하고, 혹은 입맛에 좀 안 맞는다 하더라도 왜 이 지역에서 이렇게 요리를 하는지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측면이 필요하더라고요. 이게 숙제기도 해요. 작가들이 하루에 7끼씩 먹어가면서 백반집을 찾고 섭외를 하는데, 섭외 자체도 어렵지만 지금도 허영만 선생님 입맛에 맞추는 부분이 어렵다고 해요.
전국 팔도의 맛집을 종이 위에 옮겨온 식객 허영만. 그 입맛을 맞추는 것이 어디 쉬울까. 이윤희 작가는 <백반기행>이 허영만이라는 사람으로 시작해서 허영만으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말했다.
일단 저희 방송에서 찾는 대부분의 백반 가게들은 한 번도 방송에 나가지 않은 가게들이에요. 우리는 필요 없어, 지금 단골들한테 잘하기도 바빠, 하시는 분들이죠. 프로그램 초반에 인지도가 없었을 때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해요. 일곱 번 가서 쫓겨나고 결국 못한 적도 있고요, 팀장님 한 분은 무릎까지 꿇었는데도 안 됐대요(웃음).
그런데 식당 주인분들 중에 ‘내가 다른 방송은 출연 안 하는데, 허영만 선생님께는 내 음식 한번 드시게 하고 평가받고 싶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실제로 찾아가면 되게 떨려 하시기도 하고 실수도 하고 그러세요. 그분들에겐 일생을 건 결과물을 평가 받는 일이다 보니 연예인들이 와서 그냥 맛있게 먹고 가는 것과는 다른 거죠. 그래서 섭외가 어렵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쉽기도 한 부분이 그런 거고요.

식객 허영만의 정수가 담겨있는 ‘백반일지’. 음식 그림과 더불어 주인장에 맞춰서, 식재료에 맞춰서 매번 다른 코멘트를 단다. (사진_인터뷰이 제공)

식객 허영만의 정수가 담겨있는 ‘백반일지’. 음식 그림과 더불어 주인장에 맞춰서,
식재료에 맞춰서 매번 다른 코멘트를 단다. (사진_인터뷰이 제공)
출연을 원하는 여배우들이 줄을 서 있다는 말에 팩트 체크를 부탁했더니, 사실이란다.
진짜 맞아요. 걸그룹들도 출연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이 오는 걸요. 저희 프로그램의 또 다른 큰 축은 게스트예요. 그동안 굉장히 다양한 연령대의 게스트분들이 출연해주셨는데 누가 와도 격의 없이 진심으로 대해주는 호스트 허영만의 매력이 빛을 발하는 거죠. 제작진들한테도 지금까지 하대 한번 하지 않으셨어요. 거기에 선생님이 기본적으로 갖고 계신 긍정, 위트가 참 멋져요. 지금도 넷플릭스를 보고 책을 보면서 공부를 하는 분이시거든요. 출연자분들이 촬영 끝나고 나면 너무 좋아하면서 다른 출연자를 소개해주시곤 합니다.
아무 준비도 필요 없고 편안하게 밥 한 끼 하고 가면 된다는 제작진의 말에 출연자들의 걱정도 잠시, 소박한 밥상을 가운데 두고 끊임없이 이야기가 오간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이윤희 작가가 느낀 밥 한 끼가 갖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
사실 음식 먹는 건 30분이면 거의 끝나죠. 그런데 한 식당에서 두 시간가량 찍거든요. 그렇게 서너 군데 식당을 가서 정말 많은 얘기가 오가죠. 열어두고 흘러가는 대로, 허영만 선생님이 진행자가 돼서 편안하게 얘기하는 거예요. 가장 원초적인 행위를 같이 하면서, 친구를 만드는 행위가 아닐까 싶어요.
예전에는 옆 테이블 손님들이랑 허영만 선생님이 이야기 주고받는 그 재미도 있었어요. 지금은 그걸 할 수가 없어서 아쉽긴 해요. 그런 상황에서 오고 가는 교감이 있잖아요. 이거 맛있어요, 이거 한번 시켜보세요, 후회 안 하실 거예요, 이런 경우도 많았는데 지금은 게스트와 나의 밥상만이 주가 되는… 그래서 주인장 캐릭터 같은 부분들에 좀 더 신경 쓰게 되는 점도 있긴 합니다.
2년간 100개의 지역에서 600여 개의 식당을 찾은 <백반기행>. 100회를 넘어선 기점에서 변주에 대한 고민을 피할 수 없다.
색다르고 맛있고 가성비가 좋은 집을 찾는 게 참 어렵긴 합니다. ‘이게 백반이야?’ 하실 지도 모르겠는데, 최근에 덕수궁 편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찾아갔어요. 이미 40년이 된 곳으로, 그 번화한 중심가에 오랜 시간 자리해온 노포인 거예요. 우리도 이제 파스타로 한 끼는 먹잖아요. 이탈리안 백반인 셈이죠. 경기도 광주는 외국인 노동자들, 특히 베트남분들이 많이 있는 곳이라 그분들이 많이 가는 베트남 쌀국수집을 촬영해보기로 했어요. 다문화시대에 이제 국내에 많이 계시기도 하고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굳이 쌀밥만 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우리 안에서 변주를 하려고 하고 있어요.
길어지는 코로나 여파에 휘청이는 수많은 식당들. 조금만 더 힘을 내어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나가 훗날 <백반기행>의 주인공이 되길 간절히 바라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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