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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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의 반격:
아시아인 여성 혐오범죄와
미국의 미디어

이주영 미국 해외통신원

미시간 대학교 미국문화학과 강사
아시아인 혐오범죄
연일 미국과 한국의 뉴스에서는 아시아인에 향한 혐오범죄의 심각성을 다루고 있다. 특히 3월 16일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으로 한국계 미국인 그리고 한국인 이민 여성 4명이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은 한국 이민사회와 한국에서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시아 태평양계를 향한 증오를 멈춰라(Stop AAPI Hate)” 비영리 단체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가 집계한 정보에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 이후로 보고된 아시아인 혐오범죄는 이전보다 145% 증가하여 약 4천 건에 달하고 그중 아시아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남성에 비하여 2.3배 높게 보고되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아시아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높은 것일까? 1800년대 아시아인 여성을 상대로 한 혐오범죄를 조사했던 델라웨어대학교 진 펠처(Jean Pfaelzer) 교수부터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이후 아시아인 혐오범죄를 조사 중인 미시간대학교 멜리사 보르하(Melissa Borja) 교수까지 최근의 혐오범죄는 미국 사회에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제국주의로 인하여 아시아인 여성이 성적 대상화된 역사에 기반한다고 말한다. 과연 아시아인 여성은 미국의 미디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다루어져 왔으며, 2021년 미국 미디어의 역할은 무엇일까?
아시아인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미국의 법과 미디어
미국의 역사는 아시아인 여성을 인종적, 성적으로 타자화해왔다. 1875년 제정된 페이지 법(The Page Act)은 중국에서 이민을 오는 여성들은 미국에서 성매매에 종사할 것이며, 성병을 전파함에 더하여 혼혈의 탄생을 일으켜, 미국의 인종 질서 및 공중보건을 위협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중국인 여성들의 이민을 막았던 법안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시아인 여성들은 성적 대상인 동시에 혐오의 대상이 되어 법적 절차 없이 살해(lynching)되거나 화형을 당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상은 여과 없이 미국의 대중문화에 유입되어 아시아인 여성들이 성매매에 종사하는 인물로 또는 백인 남성의 소유물로 그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재현의 방식은 아시아·태평양전쟁에 미국이 개입하면서 미국은 아시아인 특히 아시아인 여성을 소유하는 동시에 구원하는 아버지적인 존재라는 사상(the white savior complex)이 더욱 가속화 및 통속화되었다. 그리하여 아시아인 여성은 백인 남성에게 성적으로 복종하고 순종적인 연꽃(the lotus blossom) 또는 위험한 요부(the dragon lady)를 상징하게 되었다.
1957년 영화 <사요나라 Sayonara>는 이러한 시대상을 보여준 작품으로 꼽힌다. 이 작품으로 미국 아카데미 역사상 아시아인 여성으로서 최초로 상을 수상한 우메키 미요시(Miyoshi Umeki)는 이후 이 오스카상을 버린 것으로 유명하다. 평론가들은 미국의 인종차별적인 할리우드에서 연기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순종적인 여성상을 그려야 했던 우메키 미요시의 반격이었으리라 추측한다.
의학 드라마 <뉴 암스테르담>이 보여 준 방송의 역할
지난 3월 30일 NBC 방송국의 의학드라마 <뉴 암스테르담 New Amsterdam>의 “피 땀 눈물 Blood, Sweat & Tears” 에피소드는 아시아인 혐오범죄를 드라마적 장치를 통하여 공론화하였고 NBC의 토론 프로그램을 통하여 비판하였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이후 실제 혐오범죄 피해자가 되었던 배우 크리스틴 장(Christine Chang)이 책임 프로듀서 데이빗 슐너(David Schulner)와 공동 책임 프로듀서 겸 방송작가 쉬린 라작(Y. Shireen Razack)과 협력하여 만든 이 에피소드는 병원에 입원한 필리핀계 여성 로즈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로즈의 담당의 가오 박사(크리스틴 장 분)는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 로즈를 치료하려 하지만, 그녀는 사람의 손이 스치기만 해도 소스라치며 이상 반응을 보인다. 가오 박사는 두 명의 백인 남성이 아시아인 로즈가 ‘바이러스’를 미국에 가져왔다며 신체 폭력을 가했음을 알게 된다. 가오 박사가 로즈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감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 또한 아시아인 혐오범죄의 대상이었던 경험 때문이다. 지난해, 한 남성이 길을 걷던 가오 박사의 팔을 잡고 그녀의 얼굴에 침을 뱉어 혐오범죄의 고통을 겪어야 했던 가오 박사. 그 남성은 아시아인 여성인 가오 박사를 마치 “아무것도 아닌 존재(I was nothing)”로 대했다.
로즈와 가오 박사의 대사는 아시아인 혐오범죄가 직업이나 신분 국가와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행해지고 있으며 특히 아시아인 여성들이 19세기와 마찬가지로 병적인 존재로 치부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아시아인 혐오범죄에 강력하게 대응하는 성명을 냈던 방탄소년단의 노래 제목 ‘피 땀 눈물’을 드라마 에피소드의 제목으로 정하며,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 작가, 프로듀서와 아시아인 아티스트가 중심이 되어 만든 이 드라마는, 미국의 미디어 역사상 중요한 방점을 찍었다.
2021년 4월 <뉴 암스테르담 - 스피커 시리즈> (사진_필자 제공)
2021년 아시아인이 만들어 가는 미국의 미디어
안타깝게도 아틀란타의 총격 사건 이후, 미국의 미디어는 혐오범죄의 문제점보다는 피해자들의 직업과 신분에 더욱 많은 시간과 공간을 할애했다. 미국의 미디어는 또 다시 아시아인 여성을 욕망의 대상이자 손쉽게 사라져도 되는 존재로 치부하기 위하여 그녀들을 성적화 그리고 병적화하려 하였다. 이러한 미디어의 성향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뉴 암스테르담>처럼 아시아인 배우, 작가, 프로듀서가 주도한 작품들을 통해서 우리의 이야기를 직접 전달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시아인 혐오범죄가 만연했던 이 시기에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이 작품을 쓰고 연출을 했으며 인종차별이 뿌리 깊은 미국으로의 이주와 생존을 기록한 작품 <미나리>의 역할은 여느 때보다 중요했다. 게다가 우메키 미요시 이후 63년 만에 아시아인 여성으로서 아카데미상을 거머쥔 배우 윤여정의 수상은 그동안 아시아인 여성들을 성적 및 병적 대상으로 그려왔던 미국 미디어의 변화를 예고하는 동시에 통쾌하고 유쾌한 반격이었다. 2021년 애플 TV+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를 시리즈로 선보일 계획이다. 그리고 그 드라마의 중심에는 배우 윤여정이 있다. 아시아인 여성 작가와 배우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질 이 드라마의 행보가 설레고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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