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윤상호-PD

윤상호 KBS PD

  • <태왕사신기> <탐나는도다>
  • <사임당 빛의 일기> <이몽>
  • <바람과 구름과 비> <달이 뜨는 강>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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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의 전투가 가져다준 기적

KBS <달이 뜨는 강>

윤상호-PD

윤상호 KBS PD

  • <태왕사신기> <탐나는도다>
  • <사임당 빛의 일기> <이몽>
  • <바람과 구름과 비> <달이 뜨는 강> 연출
세월이 참도 빨리 흘렀다. 늘 데뷔한다는 맘으로 작품을 연출해왔는데, 그렇게 어언 20년이 흘러 어느덧 중견 감독이 되어버렸다. 연출했던 모든 작품들의 제작과정이 가슴속 머릿속에 아련하게 남아있어 지금은 추억 같지만, 다시 곱씹어 돌이켜보면 매번 피 튀기는 전투 현장이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그 상처와 흉터가 온 영혼에 덕지덕지하여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참전용사인 나에게, 2021년 다시금 새로운 전투경험으로 재무장시켜준 작품이 바로 지난 4월 종영한 KBS 사극 <달이 뜨는 강>이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좀 전해드릴까 한다.
망설임 없었던 도전, 다사다난했던 캐스팅
<달이 뜨는 강>은 평강과 온달 설화를 소재로 한 사극작품이다.
평소 한지훈 작가의 필력을 동경했던지라 전작 <바람과 구름과 비>를 마치자마자 피곤할 틈도 없이 바로 촬영준비단계로 들어갔었다. 그만큼 도전하고픈 작품이었다. 거기에다 요즘 참 핫한 강하늘 배우가 온달로 확정되었기에 맘이 꽤나 뿌듯했다. 매사 거침없이 빠르게 진행시키는 나로서는 더욱더 좋은 기세로 촬영준비에 돌입했고 대본 또한 고마우리만큼 이미 여덟 권이나 내 품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강하늘은 결국 온달이 아니었다. 코로나의 창궐로 영화계도 전체적으로 일정에 타격이 많아 강하늘 배우의 전작 스케줄이 심각하게 지연되며 <달이 뜨는 강>의 제작에도 전면적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평강 역할을 검토 중이던 손예진 씨도 아쉽게 놓쳐버린 터라 전면적인 주연 캐스팅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스태프들은 이미 다 모였고, 스튜디오에는 이미 커다란 고구려 편전과 제가회의장이 뼈대를 갖추고, 또한 미술적으로 가장 소중하게 여긴 온달의 초막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고사목이 빨리 날 촬영해 달라는 기세였다. 그러나 거론되던 모 방송사와의 편성은 흔들리기 시작하고 새로운 배우들을 캐스팅하기에 어려움이 생각보다 컸다. 사면초가가 그런 게 아닌가 싶더라. 그래도 이 정도는 늘 겪어왔던 풍파인지라 흔들림 없이 대안 수립에 돌입했다. 그래도 탄탄한 대본이 계속 뽑혀 나온다는 것이 큰 힘이었다. 다행히도 강하늘 배우가 멋지게 특별출연을 결정해 주어서 새로운 동력을 갖추었고, 곧이어 김소현 배우가 급기야 평강 역할에 확정되어 제작은 다시 훈풍을 받으며 본격 항해를 시작했다. 참 매력적인 우리 김소현 양, 아니 내 딸 같은 소현이는 진짜 평강 그 자체였다. 지금도 처음 사무실에서 만난 그날 그녀의 영롱한 눈동자가 생생하다. 곧이어 나에게는 그토록 애타게 염원하던 온달 역할의 아무개가 등장했었고 우리는 너무도 즐겁게 신나게 작품의 완성을 향해 달릴 수 있었다.
지금은 그의 이름을 쓰기에 조심스러운지라 아무개라고 표현을 하는 점 양해를 부탁드린다. 내가 후기요청을 받고 글을 쓰기로 수락한 이유는 바로 한 드라마 연출가가 겪었던 아찔한 경험담이 이 글을 읽으실 업계 관계자들이 유비무환의 자세를 갖추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였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학폭 사태는 드라마와 방송가에도 번졌고 그로 인해 촬영 종료를 2주 앞둔 <달이 뜨는 강>에도 큰 화마가 닥쳤다. 방영 도중 주연 남우의 분량을 거의 전편 재촬영한 작품이었으니 기네스북에 오를 만도 하다. 사건이 발생한 직후 제작사는 대형 제작사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심각한 부도의 위기에 직면했고 그건 그냥 허언이 아니라 진실이었다. 다행히 작품의 평과 시청률이 나쁘지 않아 제작사와 방송사의 전향적이면서도 공격적인 판단으로 방영을 전혀 미루지 않은 채 새로운 배우를 대체 캐스팅하여 작품을 무사히 완성했으니 하늘이 도왔다는 말이 이런 데 어울리지 않나 싶다.
위기 앞에서 한마음이 된 제작진
때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까마득했었다. 그 많은 기촬영 분량들을 다 날리고 다시 촬영해야 하다니… 이미 편집까지 완성된 상태였는데… 연출을 20년 넘게 한, 그래도 경험으로는 베테랑이라 자부하던 나에게 처음으로 멘붕을 느끼게 한 실제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사람의 대범함은 위기에 나타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평소 꽤나 작은 일까지도 예민하던 제작사 대표가 그렇게 냉정하고 이성적일 수가 없었다. 물론 다른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그날 나는 회의실에서 조용히 도시락 하나 까먹고 바로 편집실로 향했다. 당장 며칠 뒤 방영해야 할 분량을 꼼꼼히 체크해야 했으니까… 방송사의 요청대로 날려야 할 그림을 모았다. 그리고 이야기가 말이 되게끔 다시 재편집해야 했고 그러면서 또 죄 없는 장면들이 공연히 편집되어야 했다. 당장 한 주를 커버할 분량을 재편집하니 방송 2회 분량이 사라져버렸다. 우스갯소리지만 그 덕에 <달이 뜨는 강>의 7, 8회는 전개가 매우 빠르다. 그리고 갑자기 툭 새로운 남주가 등장한다. 분량이 아쉽지만 제법 어색하지 않게… 중략하고, 향후 드라마를 마무리할 수 있는 분량을 최종 체크해보니, 어마어마하게 많은 장면이 새로 써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미 마지막 회 탈고를 앞둔 작가님과의 대책회의는 어쩌면 ‘웃펐고’ 참 쉬웠다. 그냥 길게 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 게 원칙이었고 재미는 둘째고 분량이 더 중요했다고 보면 <달이 뜨는 강>은 정말 한지훈 작가님이 대본을 참 잘 쓰셨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하여 이미 방송한 6회 분량은 VOD 서비스가 중단되어 사라져버렸고, 18회까지 촬영 및 편집까지 종료한 <달이 뜨는 강>은 그렇게 다시 새롭게 정비되어 7, 8회가 1, 2회인 것처럼 거의 라이브로 방영을 시작했다. 누군가 방영을 잠시 미룰 수는 없었냐 물을 수 있겠다. <달이 뜨는 강>은 국내 방송사와 시청자와의 약속도 있었지만 꼭 방영해야 할 해외 190개국과의 약속도 있었기에 방영을 미루면 그야말로 큰 댐이 무너지는 상황이었던 점을 알려드리고 싶다.
보통 요즘 드라마는 A, B팀 심지어 이런 경우 C팀까지의 병행으로 스태프들의 근로시간을 준수하며 진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장은 오로지 한 팀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점이 꼭 후기에 거론되어야 할 듯하다. 물론 특정 팀은 1.5팀의 규모로 편성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태프들은 이 위기의 상황 속에 흔쾌히 희생해 주셨다. 연출로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냥 이게 내 팔자려니 그냥 현장을 멈춤 없이 돌려야 할 수밖에 없었고, 나 이외에는 누구도 재촬영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없다는 걸 먼저 알았기에 오로지 홀로 연출을 해야 했다. 평소 소신이라면 한 작품에 연출이 두 명일 수 있나 싶다. 아무튼 무엇보다 위기의 공신은 진정 스태프들이었고 그런 천군만마를 옆에 둔 게 내 복이라 인정한다. 스태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KBS <달이 뜨는 강> 현장 (사진_필자 제공)
배우, 제작자, 시청자의 대동단결이 만들어낸 결과물
새로운 온달 나인우! 이 배우를 이야기하며 글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남주를 하루 만에 다시 캐스팅한 비결이라면 ‘그냥 지난번 그 잘생긴 친구 불러줘!’ 하고 제작 총괄에게 던졌고, 바로 그 친구를 꼬셔서 분장시키고 옷 입히고 생방송처럼 촬영을 시작한 추진력(?)이 그 답이다. 물론 방송사의 동의 하에…^^ 인우는 사랑스러운 온달이었다. 잘생기고 착하고 머리도 좋아 체력도 좋아 하루도 쉬지 않고 단 한 달 촬영으로 20부작 드라마 전편을 모두 촬영한 유일한 남주 배우로 기록에 남을 것이다. 어제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8kg 빠졌다며 웃더라. 잘생긴 아들 같은 사슴이다(사슴은 극 중 평강이 부른 온달의 별명이다). 아무튼 새 남주의 등장 이후 현장은 초특급 스피드로 모든 걸 소화해야 했다. 당장 채워야 할 방송분이 시급하여 무슨 장면인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 급하게 배우를 연기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착한 인우, 머리 좋은 인우가 너무 고마웠고 인우 또한 자기가 방송에 나가는 게 신기하다며 순수한 소년처럼 감탄하더라. 잘생기고 연기 잘하는 배우 미워하는 사람은 역시 없더라. 시작부터 인우가 잘해주어서 시청자들의 인기를 받았고, 또한 더욱 감동은 다시 찍는 고통에도 군소리 없이 쿨하게 감당하는 당찬 소현이! 모든 배우에게 귀감이 될 만한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래서인지 응원하는 열혈 팬들이 보내주신 정성스러운 응원과 함께 대동단결로 <달이 뜨는 강>은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완성되었고, 1부와 20부를, 2부와 19부를 재촬영과 본 촬영을 섞어 한 날 한 장소에서 찍어야 하는 해프닝도 늘 일상이었으니 오랜 세월 지나도 재촬영은 <달이 뜨는 강>이 세상에서 1등일 것이라 장담한다. 이 모든 일들을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면 그것 또한 옳다. 늘 새로 시작하고자 하는 소박한 내 소신이 더더욱 흔들리지 않도록 굳건히 잡아준 것이 바로 <달이 뜨는 강>이니까. 그래서 오늘도 난 새 작품 기획안과 대본을 책상에 올렸다.
꼭 보태고 싶은 한 말씀. 함께 경쟁하며 방영했어야 할 <조선구마사>가 겪은 사건을 너무도 안타깝게 생각하며 <달이 뜨는 강>은 방영을 마치고 유종의 미를 거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조선구마사>의 제작 관계자들, 스태프들 중에 오랜 지인들도 많다. 그들이 굳건한 마음으로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애정의 마음으로 응원해주시길 바랄 뿐이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의 드라마가 더욱 생존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 이제 또 새롭게 시작하려 하는 그냥 소박한 한 연출자가 대중 여러분께 읍소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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