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작가공감

단골식당

작가공감

단골식당

나승현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 KBS2FM <사랑하기 좋은 날 이금희입니다> 집필 중
  • 저서 ≪그 책, 있어요?≫(포북),
  • ≪혼자도 괜찮지만 오늘은 너와 같이≫(21세기북스)

나승현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 KBS2FM <사랑하기 좋은 날 이금희입니다> 집필 중
  • 저서 ≪그 책, 있어요?≫(포북),
  • ≪혼자도 괜찮지만 오늘은 너와 같이≫(21세기북스)
작가공감
‘그릴퀴진’에서의 한 컷 (사진_필자 제공)
지난해에 출간된 책에서 언급했던 단골식당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이 있었다. 나도 오랜만에 그 길을 지나오면서 그때 생각이 떠올라 그때 전한 이야기에 보태서 이후 상황을 전하고자 한다.
나는 매일 출근과 퇴근을 자전거로 하고 있다. 방배동에서 여의도까지 거리는 11km, 횡단보도 3회, 약 44분 정도 걸린다. 좀 늦었다 싶은 날에는 5분 정도 더 당길 수 있지만. KBS 본관에서 여의도 공원을 지나 한강을 따라 동작대교에서 우회전을 하면 구반포가 나온다. 접어드는 순간부터 나는 들를까 말까? 고민을 한다.
회사에서 집에 가는 길목에 육류와 주류를 파는 식당이 있다. 알게 된 건 2018년 7월 이충걸 GQ 전 편집장님 덕분이었고, 정을 붙이게 된 건 석 달 지나 10월경 지인들과 함께 들락거리면서이다. 사람 사이도 그렇고 식당도 횟수가 늘어야 내 집 내 사람 같은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많게는 평일 닷새 중에 서너 번, 매일 가다시피 하다 보니 학교 선후배처럼 사장님들과 편해졌다. 밝게 비추던 조명을 낮추고 삼삼오오 모인 우리는 달이 기울 때까지 술잔을 따르고 노래의 선곡을 바꾸고 유튜브를 보고 어린 시절을 고백하며 웃고 떠들었다. 구반포 초입 아파트 밀집 지역에 자리한 덕분에? 식당은 번화가 술집과 달리 아는 사람만 오는 곳이다. 그래서 손님들끼리도 얼굴을 보면 인사를 나눌 정도이다. 한번은 내가 좋아하는 곡을 틀었더니 (식당의 선곡권은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보통 내가 블루투스를 이용해서 조종하는 편이다.) 옆 테이블의 손님이 ‘꺄악’ 하고 탄성을 질렀다. “제가 너무 너무 너무 좋아하는 곡이에요.” 이로써 우리는 한 식구가 되었다. 쿠키를 구워 와서 나눠 먹고 와인을 따라주기도 했다.
자주 가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식당이 회사에서 집에 가는 길목에 있다는 점이었다. 회사에서 절반 이상 멀어져 오고 그만큼 집에 가까이 올 때 나는 사회적인 사람에서 개인적인 나로 서서히 변신해가는 마블 영화의 히어로가 되는 느낌이 든다. 가슴에 붙어있는 작가 타이틀을 가슴 부위부터 뜯어내기 시작하면 새파란 쫄쫄이가 큰 이니셜을 박고 드러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초능력을 발견하지 못한 정체성이 흔들리는 어떤 사람처럼. 직업인으로서의 내가 점점 벗겨지고 춤과 음악을 좋아하는 자유인으로서의 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한 번은 식당 운영자께서 회사 동료들과 먹고 나올 때 배웅하며 물었다. “평소 때와 다르시네요?”, 그 말을 듣고 알아차렸다. ‘그랬군요. 맞아요. 다르죠. 남자랑 올 때 여자랑 올 때, 회사 사람들과 올 때, 동료들 중에서도 가깝고 먼 사람과 올 때, 잘 보이고 싶은 사람과 잘 봐주는 사람과 올 때, 썸 타는 사람과 올 때 애인과 올 때, 저는 다르죠. 어떨 때는 발이 넓은 유명인이 되고 싶어 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식당 한쪽에서 조용히 있다 가는 무명의 손님이고 싶을 때가 있답니다.’
회사 근처보다 집 근처에서 만나는 사람이 있고, 집 근처보다 회사 근처에서 만나는 사람이 있다. 굳이 의도적으로 구분한 것은 아니지만 편하고 불편한 것은 자연스럽게 길을 만들어내는 것이니까.
같은 일을 하는 업계 사람이지만 동네에 같이 살거나 근처에서 만나면 대화의 주제가 달라진다. 안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듯 속마음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그토록 어려웠던 선배도 집 근처에서 만나 걸을 때는 팔짱도 자연스럽다.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고 단골 식당은 문을 닫았다. 사람들은 흩어지고 나는 매일 문 닫힌 가게 앞을 자전거로 지나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함께 있었다. 겨울바람이 가게 문을 세게 걷어차면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라 밖으로 뛰어나왔다. 애연가들은 담배를 태우고, 술에 취한 누군가는 내 자전거를 만지작거렸다. 나랑 죽이 잘 맞는 PD는 스피커폰을 열고 빨리 이 동네로 와서 한잔하자며 떼를 썼다. 곧 눈이 올 거라고. 둥글게 둥글게 뭉쳐서 눈사람이라도 되어 보자고. 아는 사람 다 불러와 한판 신나게 춤이라도 추자고 귀여운 소년처럼 말했다. 미용실 원장님도 오세요. 후배님도 놀러 오세요. 스타일리스트 언니도 빨리 마무리하시고요. 카톡 단톡방도 없이 그 순간에만 모였다가 사라지는 우리는 밤안개 같은 존재들이니까요.
매번 심심하고 때때로 외로운 사람들의 아지트였던 단골 가게는 언제쯤 문을 열게 될까? 그날이 오면 오래전 그랬듯이 늦은 밤 실례를 무릅쓰고 그들에게 문자를 보낼 것이다. “오늘 밤은 뭐 하시나요? 우리 쓰레빠 신고 만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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